[고전으로 본 우리 교육] 혁신에 지친 학교교육 "인·의·예·지 마음씨 회복 필요"
[고전으로 본 우리 교육] 혁신에 지친 학교교육 "인·의·예·지 마음씨 회복 필요"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6.01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상영 용인 신봉고 진로전담교사/ k-havruta 창의·인성교육연구소장

맹자의 '인·의·예·지' 4단을 통해 바라 본 인간의 본성과 학교교육

[에듀인뉴스-명교학숙 공동기획] 학생들의 인성교육 방향 정립을 위해 고전(古典)을 활용한 교육이 떠오르고 있다. ‘명교학숙’은 이러한 교육계의 움직임을 리드하는 초·중등교사 연구모임으로 동·서양 인문고전을 탐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명교학숙과 함께 고전을 통해 우리 교육 현실을 조명하고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맹자(BC 372년 추정 ~ BC 289년 추정), 유가의 대표적 사상가로 인간의 성품은 본래부터 선한 것이라고 보는 성선설을 주장한다.(사진출처=네이버지식백과)
맹자(BC 372년 추정 ~ BC 289년 추정), 유가의 대표적 사상가로 인간의 성품은 본래부터 선한 것이라고 보는 성선설을 주장한다.(사진출처=네이버지식백과)

[에듀인뉴스] ‘맹자는 ‘사람의 선한 본성이 사회를 구한다’라는 인간 본성론을 통해 인간이란 본디 선한 마음을 품고 태어났으니 타인을 향해 모진 말과 모진 태도를 취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예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나 몰라라 하며 지나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달려가 어린아이를 구하고자 함이 지극히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런 행위를 하게 된 동기가 어린아이의 부모를 알기 때문이었겠는가? 칭찬을 듣고자 함이었겠는가? 아니면 모종의 대가를 바라서였겠는가?

맹자는 당연히 인간의 선한 본성에 의한 반사적 행위였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러한 행위의 원인을 ‘사람이 차마 타인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선한 마음’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망설임 없이 어린아이를 구하고자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덫이 여기저기 놓여 있으니 단지 ‘선한 마음으로’라는 생각으로 행동을 결정할 수가 없는 세상이다.

2017년 12월19일 개정되어 2018년 6월20일부터 시행된 ‘인성교육법’ 즉, ‘대한민국헌법’에 따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교육기본법’에 따른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인성교육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에서의 고민과 피로감이 더 늘어만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과 삶이 공존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어렵게 살아야만 했던 시절 못 먹고 못 입어도 나누어 먹는 것을 당연시 여겼던 시절들이 그립다. 마을 잔치가 있는 날에는 잔칫집에서 평소 먹어보지도 못했던 맛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워도 그 누가 눈치주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제삿날이면 으레 이웃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 없는 살림에도 풍성히 음식을 준비하시던 어머니, 음식이 식기 전에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어서였을까? 다음날 이른 아침 단잠을 깨우시며 이웃에게 음식배달을 강요하시던 어머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아침잠이 많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에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던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

오래된 과거의 일이었지만 그 감성이 아직도 남아있어서인지 요즘처럼 삶이 퍽퍽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며 타인의 작은 실수는 용납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자신의 실수는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떼를 쓰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세상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어릴 적 배움이란 오로지 학교와 집, 그리고 종종 예의범절에 대한 어머니의 잔소리가 전부였다. 숙제가 끝나면 쏜살같이 달려나가 논밭에서 막대 총싸움으로, 때론 삼삼오오 무리 지어 철사꾸러미와 회초리, 작은 냄비와 고추장으로 무장한 채 개천을 누비는 현장체험학습이 전부였다.

정말 개구리 올챙이 시절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도 개구리 올챙이 같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솜사탕 같은 달콤한 아쉬움들이 살포시 얹어진 행복으로 밀려왔다 사라지곤 한다.

이제 구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보니 깜빡깜빡 잊는 것들이 늘어난다. 아니 그저 잊고 싶은 것이 많아져 간다.

교사로서뿐만 아니라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보평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그 기능을 빼앗겨 버렸다. 더 빼앗길 것도 없을 만큼 처참하게 무너져가는 교육현장에서 오로지 교사의 길을 걷고자 노력하며 살아왔던, 교사의 자부심을 버릴 수 없어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상하며 성장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사가 교사로서 해야 할 일들은 축소되고 입지는 약해져 간다.

간혹 훈계라도 할라치면 “어쩌라고요?”, “그런데요?”, “왜요?”, “아닌데요?”, “그래서요?”라며 퉁명스럽게 따지듯이 말대꾸하며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려는 학생들을 만나면 상실감은 더욱 크게 밀려온다.

언젠가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이제 교육계에 발을 디딘 지 5년도 되지 않은 동료교사가 “부장님! 장학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무 힘들고 무서워요~”라며 아주 진지하게 질문하더란다.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혁신 "이제는 인·의·예·지 마음씨 회복할 때"

맹자는 ‘도덕적 감정’은 사람이 태아나면서부터 가진 인성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의 본성에서 나오는 4가지 마음씨를 4단(四端)이라 하였으며 이를 ‘인·의·예·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인(仁)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둘째, 의(義)란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의 착하지 못함을 미워함이요. 셋째, 예(禮)란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 겸손히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을 말함이요. 마지막으로 지(知)란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마음이라 했다.

보평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혁신에 눌려버린 인간의 선한 마음, 그리하여 나하고 처지가 다른 동료들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 옳지 못한 행동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정의감, 교사를 존중하며 공경하고자 하는 질서,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부족한 요즘이다.

따라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피곤하고 지쳐있는 학교 안에서 이제라도 형식적이며 시간 때우기 식으로 진행되는 교육 틀에서 벗어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의·예·지’의 마음씨를 회복, 사소한 것으로부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학교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지며 피로감에 지쳐 있기에는 너무 속상해 맹자의 ‘인·의·예·지’에 시선을 두며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농부가 척박한 논과 밭만을 탓하며 자기계발에 게을리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에게서 찾자고 다짐하며 가슴 찡한 어느 배우의 고백을 떠올려 본다.

“훌륭한 사람은 못되어도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김상영 용인 신봉고 진로전담교사, k-havruta 창의·인성교육연구소장
김상영 용인 신봉고 진로전담교사, k-havruta 창의·인성교육연구소장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저작권자 © 에듀인뉴스(Eduin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