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스패너와 망치와 줄 그리고 펜치, 니퍼 가득한 가방의 주인
산스크리트어를 알고 ‘자본론’을 읽은 ‘열 일곱 살’
... 그 아이와의 3년에 걸친 인연은 필연

[에듀인뉴스]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 사과나무를 심는 교사의 이야기.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이번 편은 상-하 두 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사진=픽사베이)

재혁이의 가방은 언제나 크고 무거워보였다.

신입생답지 않게 묵직한 가방 속이 늘 궁금했지만 책을 많이 갖고 다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갔었다.

교실에선 아이들과 어울리기 보단 선생님들과 어울리는 것이 편한 듯 늘 교사들 주위를 맴돌았고, 아침 자습시간에 <사회사상사> 책을 읽고 있을 때, 곁에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흘리듯, "그 책 재미있겠네요." 한 마디 하곤 빙긋 웃기도 하는 그런 아이였다.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1이 된 아이가, 마르크스와 베버와 뒤르켐이 쏟아져 나오는 책을 보고 재미있겠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다.

한 번은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했더니 특기사항에 ‘산스크리트어’라고 써 놓았길래, 허언증일까 아님 괴짜 천재일까 싶어 넌지시 그런 고어는 어디서 왜 배웠냐니까 고대 종교를 알고 싶고 그 경전을 읽으려니 필요해서 독학으로 배운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하는 학생이었다. 독특한 아이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차츰 알아 가리라 하던 차였다.

3월도 중순쯤 되어가는 어느 날 교실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반장이 쫓아내려 왔다. 싸움이 났다는 건데 장난 아니라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샘. 재혁이가 ‘커터칼’을 들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지만 일단 교실로 향했다.  

(사진=픽사베이)

교실에 이르자 재혁이는 잔뜩 밀어 최대한 날을 세운 칼을 들고 교실 문 앞에서 서슬이 파래져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재혁이의 분노의 대상은 우리 반 아이가 아니었던 모양이고 한차례 주먹다짐이 벌써 있었던 모양인지 한쪽 볼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재혁이의 분노를 유발한 아이를 떼어놓고 말리며 반장이 날 부르러 뛰어 내려온 참이었다.

종례를 하려고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고, 칼날을 들고 교실 문 쪽을 노려보던 아이는 문 쪽으로 향한 시선을 거두고 이번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살기에 찬 시선이 어떤 것인지 처음 느껴보았다. 정말 섬뜩하고 서늘해지는 눈빛이었다.

일단 아이의 분노를 진정시켜야 했고, 아이들의 두려움도 안정시켜야했다.

“재혁아, 네 자리로 들어가 앉거라.” 

“안 돼요. 그 자식 죽여버리고 저도 죽을 꺼에요!”

“무슨 일인지 알아야 너를 보내주던지 말던지 할테니, 지금은 일단 자리에 들어가 앉거라. 네가 지금 날 죽이고 교실 밖으로 나갈 것이 아니면!”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자 물러서긴 했으나 여전히 분노를 거두지 못하고 칼날을 뽑아든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이를 세워둔 채 일단 학급의 다른 아이들을 보내고 재혁이를 노려보았다.

일단 칼부터 내려놓자고 말을 시작했다. 아이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일단 칼은 거두었고, 아이들은 다 보낸 뒤 텅빈 교실에 둘이 남게 되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날 사건의 발단은 ‘빈 박스’였다. 매점에서 얻어온 커다란 박스를 뒤집어쓰고 장난을 하고 놀았는데 흥이 나 장난이 심해진 아이들이 재혁이의 박스를 심하게 망가뜨렸고 ‘자기 것’인 박스를 발로 밟아 뭉개버리자 분노를 참지 못한 재혁이가 결정적으로 박스를 밟은 아이에게 ‘내 것을 망가뜨렸으니 사과하라’ 했지만 그 아이는 사과하지 않았고 도리어 놀리고 욕을 했다는 것이다. 

재혁이는 화가 나서 끝까지 사과하라했고, 모욕까지 서슴지 않았던 다른 반 아이에게 칼을 들고 가서라도 사과를 받기위해 위협을 할 작정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필자가 마주쳤던 아이의 눈에선 단순히 사과나 받자는 사람의 눈빛치고는 섬뜩할 정도의 살기가 느껴졌던 것이었다.

“저를 한순간 모욕한 것까지도 참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잘못했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것도 모르는 무지는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죽여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도 떨리는 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재혁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넸던 것 같다.

그 아이를 찌르고 나면 너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설사 그 아이를 찔러서 가르친다고 치자. 넌 아까 화가 났을 때, 그 아이를 죽이고 너도 죽겠다고 했다. 네 말대로 그렇게 ‘무지한’ 아이를 죽이고 나서 네가 택할 죽음이 그만한 가치 있는 죽음이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사람은 한 번 나고 한 번 죽는다. 네가 열심히 공부하고 지금까지 생각해온 것들이 그렇게 무의미하게 던져버릴 만큼 받게 안 되는 죽음과 맞바꿀만한 것이냐.

아이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한 시간 남짓 대화를 하고는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고 편안해진 표정으로 귀가를 시킬 수 있었다.

아이를 보내고는 학교에서의 일을 이야기 해야겠다 싶어서 재혁이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아 선 생 니 임.”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재혁이 어머니의 음성은 발음도 부정확했고 소리도 작게 들렸다.

재혁이 어머니는 지체장애셨다. 지적장애는 아니시라고 하셨고, 몸도 거동이 불편하시고 안면근육도 자유롭지 못하셔서 말도 어눌하고 발음이 부정확하며 손발도 부자연스럽다고 하셨다. 재혁이 어머니에게 조심스럽지만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초등학교 때부터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는 밝고 잘 웃는 아이였고, 지금도 부모님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고 하셨다. 엄마와 대화도 많이 나누고 책읽기를 좋아해서 밖에 나가 놀기보다 집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데 옷이 찢어져 있고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있길래 무슨 일이냐 했더니 아이들이랑 싸웠고 별일 아니라고 말을 회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묻자, 끝내 털어놓은 이야기는 애들이 ‘너네엄마 병신’이 라고 한 말 때문에 죽도록 싸웠다는 이야기와, 여러 명 아이들과 싸우느라 엉망이 되어 들어왔던 모양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 날 재혁이는 무지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댔지만, 자신이 무시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면 견딜 수 없는 아이인 것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또래들보다 성숙해 보이고 책만 파고들어야 했던 것도 이해가 되었고, 간혹 또래들을 지적 우월감으로 압도할 때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터득한 재혁이 나름의 처세술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가방, 그 묵직한 가방 속 내용물이 무엇인지도 아이의 엄마를 통해 전해 들었다. 

(사진=픽사베이)

그 가방 속에 가득 든 스패너와 망치와 줄 그리고 펜치와 니퍼. 그런 연장들을 들고 다니는 것은 실제로 재혁이가 아이들을 해치거나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공격하거나 무시하는 아이들에게 꺼내 보이며 상대를 위협하기 위한, 혹은 싸움이 벌어졌을 때 나름대로 자신의 ‘호신용 장치’라서 들고 다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시며 재혁이 어머니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선새이임. 그래도 그런 연장 같은 거럴 실제 쓰 본 저근 업스미다. 아이가 거칠거나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이미다. 하지만 오늘 일은 정말 재송함미다.”

재혁이 어머니는 혹시나 담임교사가 자신의 아이를 문제아이로 낙인 찍을까싶어 염려스러움이 묻어나는 말로, 거듭 앞으로 절대 그런 일 없도록 가르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못난 어미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 아이를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어머니와 ‘다른’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기피하지 않고 돌봐 드리려한 착한 재혁이가 고마웠다. 그리고 그 아이가 그간 숱하게 받아왔을 상처가 공감되어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칼을 들고 ‘복수극’을 꿈꾸던 아이의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고, 어머니의 사랑어린 가르침 덕분에 1학년이 끝날 때까지 재혁이는 별다른 문제없이 2학년으로 진급을 할 수 있었다.

재혁이는 그렇게 1학년 초, 살벌하게(?) 통과의례를 거친 후 그런 일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무난하게 1학년을 마쳤다. 물론 그 무거운 가방은 늘상 아이의 필수품이었지만 무겁다고 귀찮아하는 법이 없었다.

인문계열을 선택했던 터라 2학년 때는 다른 반이 되었다가 고3이 되면서 다시 재혁이의 담임을 하게 되면서 재혁이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