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공립유치원 민간위탁?..."순리 지켜야 탈 나지 않는다"
[기고] 국공립유치원 민간위탁?..."순리 지켜야 탈 나지 않는다"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6.08 14:11
  • 댓글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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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숙 용인 신월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교사

"국공립유치원 40% 확대는 임용고시 확대로 이뤄야"
임용합격후 첫 발령지였던 송탄초등학교병설유치원 유아들과 졸업기념 사진.(사진제공=백현숙 교사)
임용합격 후 첫 발령지였던 송탄초등학교병설유치원 유아들과 졸업기념 사진.(사진제공=백현숙 교사)

[에듀인뉴스] 임용 고시 준비를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공립 병설 유치원에 근무한 지 4년째다. 20대 중반부터 계속된 낙방 끝에 잠시 꿈을 접고 두 아이를 키웠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시작, 30대 후반에 임용시험에 합격해 당당히 동네 엄마들의 부러움을 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사립유치원에서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관리자들이 왕처럼 군림했던 곳을 벗어난 것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몇 시간씩 차량운행을 하고, 수백 명이 사용하는 유치원 화장실을 청소하고, 아이들에게 색종이나 교구도 아껴 써야하고, 간식이나 식사도 마음껏 먹일 수 없는 유치원에서 난 교사인지 도우미인지 정체성을 잃어갈 때쯤 사직을 결심하고 원장님과 면담을 했다.

그런데 사직을 하면 원장님 표현으로 “유치원 업계에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바로 사립 원장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도는 교사 블랙리스트다. 할 수 없이 그렇게 어찌어찌 버티다 두 번의 유산으로 사직을 하였고 그렇게 사립유치원의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

올해 학기 초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립유치원들의 비리와 개학 연기 투쟁으로 국공립유치원에서는 사립유치원 유아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학부모들의 민원을 반영해 증반, 증설에 협조했다. 교육부에서는 해결책으로 올해 말까지 국공립유치원을 40%까지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학부모들과 공립유치원교사인 나에게도 희소식이다. 왜냐하면 공립유치원 교사 수가 늘면 우리도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공립유치원 교사가 된 기쁨도 잠시, 쏟아지는 과도한 행정업무에 비해 협조인력은 하나 없고, 사립이든 공립이든 학부모들은 여전히 유치원을 교육기관으로 생각하지 않고 돌봄으로 생각한다. 여전히 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고 공립에 가면 있다던 보조인력(하모니선생님)도 없다. 또한 유아들 정원도 만 5세 26명으로 아직 초등학년보다 많다.

하지만 그래도 난 만족한다. 여기서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예산을 모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하고 있어 더 이상 원장님 눈치를 보며 교재를 아끼거나 학부모에게 준비해달라고 말씀드릴 필요도 없고, 식사도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는 유아교육법 개정안 내용을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공립유치원을 40%까지 늘리려면 당연히 임용고시를 통과한 교사를 뽑는 것이 순리인 것을 교육부는 공립유치원을 민간에 위탁하고 기존 근무하던 사립 교사 중에 우수교사를 선발하겠다고 한다.

민간위탁과 사립우수교사의 선발기준은 무엇일까? 정부는 그동안 사립유치원 비리들을 경험해 보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걸까? 사립유치원에서 발생한 비리들이 공립에서도 일어날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일까?

기존의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 방법인 임용고시가 있는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위탁을 받으려는 과정에서, 또한 우수교사로 선택받기 위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대부분 사립유치원의 원장은 본인, 이사장은 남편, 교사는 아들이나 딸, 심지어 급식 담당은 부모님에 이르기까지 가족잔치다. 결국 공립유치원 교육시스템은 사립 원장들의 사유화가 될 것이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사립 탈출에 성공한 나는 다시 사립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위탁에 성공한 원장들은 자신의 가족과 지인부터 채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우수 교사의 선발기준이 될 것이고, 교육 서비스의 질이나 교육의 공공성 저하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임용고시라는 국가가 요구하는 높은 기준을 통과한 공립유치원 교사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사립과 공립의 상생을 위해서”라며 이번 유아교육법 개정안에 힘을 실어 주고 있지만 한때 사립유치원 교사였고 현재 공립교사인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상생은 민간에 위탁하고 우수교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이루는 게 아니다. 무엇이든 순리대로 가면 탈이 나지 않는 법이다.

누구나 아는 답을 왜 어렵게 풀어가려 하는가. 2020년 3월까지 국공립 40%를 만들 계획에 맞추어 연말에 유치원 임용고시 정원을 그만큼 많이 선발할 수 있도록 기대해본다.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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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 2019-06-11 17:19:19
공감합니다. 저도 그래서 8년동안다닌 유치원을 사직하고 임용준비중이랍니다.

전명아 2019-06-10 14:51:10
현장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선생님의 글 이네요~공감하고, 지지합니다!

데이지 2019-06-09 16:52:10
선생님의 말씀 백번 공감합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아름 2019-06-09 14:39:18
선생님의 용기 감사합니다.
유치원의 공공성을 지켜주세여

지수 2019-06-09 11:46:18
정상적인 국공립유치원확대를 바랍니다.
민간위탁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