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선 경기 양오중학교 수석교사

승자도 패자도 없는 보드게임 "모두가 참여하는 모둠수업 만들어"
수업을 성장시키고 싶다면?..."수업친구 맺고 수업나눔 해보세요"

수업친구와의 수업나눔은 내 수업을 거울로 비춰보는 작업이다. 수업친구는 내 수업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안전지대이며, 나의 수업고민을 깊이 성찰해주고 함께 성장해가는 제일 가까운 수업코치다. 수업자의 시선으로 수업을 바라봐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수업나눔의 기회를 수업성장의 디딤돌로 삼으려면 의미있는 장면을 놓치지 않는 수업보기의 안목과 진정성 있는 수업친구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더 좋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수고를 응원하고,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을 위해 ‘유희선의 수업 나눔’을 기획했다.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연구회 부회장. 수업이 즐거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2018년) 공저자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연구회 부회장. 수업이 즐거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2018년) 공저자

선생님은 '상큼', 학생은 '활기'...S 중학교 새내기 선생님의 '모둠활동'

교사라면 누구나 자신의 수업이 재미있길 바라며 기왕이면 의미도 찾을 수 있는 수업이길 원한다. 교사 혼자 너무 진지하면 학생들은 금세 지루해하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활동 위주의 수업으로 즐겁게만 진행하면 학생들은 그 수업에서 꼭 기억해야 할 배움은 잊어버리기에 십상이고,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공부는 안 하고 놀다 왔나 걱정하기도 한다.

특히 시험이 없는 자유학기제 기간에는 행여 배움을 소홀히 할까 노심초사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교사들은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연수도 많이 듣고 한 시간 한 시간 수업준비에 정성을 기울인다.

작년에 신규로 교직을 시작한 S 중학교의 사회 선생님 제안수업에 초대받아 수업 나눔까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S 중학교는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교사들의 수업에 대한 관심과 열의도 높을 뿐만 아니라 수업 나눔 공동체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같은 학년 수업친구 선생님들은 교실 뒤편에 포진하고 있다가 수업자와 학생들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며 메모하였고, 모둠의 역할 분담이나 소통 정도를 세심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수업이 끝나면 수업자에게 피드백해줄 지점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들이었다.

새내기 선생님의 사회수업은 6교시 오후수업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교사는 상큼하고 학생은 활기차게 시작되었다. 긴장하였을 선생님을 위해 학생들은 평소보다 더 우렁차게 선생님의 질문에 답했고, 멋진 유머를 날려 분위기를 살리기도 했다. 애써 근엄을 갖추었던 선생님도 어느새 무장해제 되어 살며시 웃음을 띤 가운데 전시학습 복습을 거쳐 본 수업이 전개되었다.

아이들에게 신기습곡산지가 나오는 2개의 영화 장면을 보여주며 공통점을 찾게 하는 장면.(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아이들에게 신기습곡산지가 나오는 2개의 영화 장면을 보여주며 공통점을 찾게 하는 장면.(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오늘의 수업 내용은 ‘산지 지형의 형성과정’이었고 선생님은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2개의 영화 장면을 화면에 띄우고 공통된 특징을 찾게 하였다. 영화 ‘Sound of music’에 나오는 ‘알프스 산’과 우리나라 영화 제목과 같은 ‘히말라야 산’은 둘 다 신기습곡산지로 매우 높고 험준한 산이다.

영상을 본 후 산의 모양과 형성 과정을 선생님과 학생이 발문하고 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과부도를 보며 세계적 산지 찾기 활동으로 들어갔다. 모둠원들은 ‘우랄산맥’ 발음만으로도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했으며 활동지에 제시된 문제들을 그림과 초성힌트의 열쇠를 연결해 ㅅㄱ(습곡), ㄷㅊ(단층), ㅎㅅ(화산)...이라고 풀어갔다.

선생님은 평소 모둠활동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모둠활동은 수업참여도를 높이며 즐겁게 협력하면서 배움을 만들어가는 좋은 수업방법임을 알고 있지만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임승차자가 생길 수 있다. 또 수업자가 담임을 맡는 1학년4반 수업에서 몇몇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거나 일부 학생들이 흥미 없어 하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점을 해소할 방안이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수업을 통해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안해낸 보드게임은 모둠원이 골고루 참여하며 수업에서 꼭 알아야 할 배움을 나누는 최고의 몰입기제로 작동했다.

보드게임은 모둠원이 돌아가며 주사위를 던지고 그때그때 보드에 나와 있는 질문에 답하고, 개념을 설명하며 도착지에 이르는 게임이다. 중간에 ‘보너스’ 코너도 있는데, 보너스를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보드 여백 주머니에 담겨있다. 정답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한쪽에 돌돌 말아 붙여두었다.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는 즐거운 배움, 이런 흥미진진한 수업도구를 만드느라 선생님은 얼마나 수고하였을까! 가슴이 찡해왔다.

(좌)지형 수업에서 꼭 알아야 할 배움을 재미로 녹여낸 보드게임판과 (우)보드게임판 주머니 속에 담긴 보너스 카드.(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좌)지형 수업에서 꼭 알아야 할 배움을 재미로 녹여낸 보드게임판과 (우)보드게임판 주머니 속에 담긴 보너스 카드.(사진=유희선 수석교사)

나의 수업을 돌아보게 하는 '수업나눔'..."수업 성장의 시작"

수업 나눔 협의회에서 알게 되었지만 오늘의 수업자와 같은 학년에 들어가는 같은 교과 선생님은 수업친구 입장에서 이미 수업에 도움 되는 좋은 사이트와 새로운 수업자료를 공유한다고 했다. 과학 선생님과는 앞으로 ‘지형’ 단원의 융합수업도 시도해보면 좋겠다는 제안도 오갔다.

같은 교과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응용하면 얼마든지 효과적인 수업방법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의 수업을 많이 참관해보는 게 중요하다. 수업을 참관하다 보면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왜 수업자의 수업을 보고 있는데 내 수업을 되돌아보게 되는 걸까? 그렇게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는 것부터 수업 성장의 시작이다.

우리가 수업친구를 맺고 수업을 나누는 것은 일회성 보여주기식의 수업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수업성장을 위해 내면의 힘을 충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