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편지] '타로 점성가' 재혁이가 '조윤희' 쌤에게
[제자의 편지] '타로 점성가' 재혁이가 '조윤희' 쌤에게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6.20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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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신뢰로 새 삶 준비할 기회 얻어
스패너 든 재혁인 어디에나..."다른 재혁에게도 기회 있기를"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조윤희 선생님께

강산도 바뀐다는 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창시절은 며칠 전의 일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선생님이 저에 대한 글을 쓰셨다고 들었을 때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저와의 기억이 선생님께 특별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저 역시 모처럼 그때의 일들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고통의 기억들은 게워 낼 수도 없고 삭아 없어지지도 않는 가시처럼 가슴에 걸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곤 합니다. 그것을 감히 건드릴 때면 아물었다고 생각하는 상처들이 입을 열어 울분을 토해내기도 합니다. 그런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통해 오래된 상처를 덮어버리고 우리가 마음에 박힌 가시를 건드리지 않은 채 새로이 발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그토록 힘을 준 많은 소중한 사람이 있고, 선생님 역시 그 가운데 한 분입니다.

저는 일단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아이들과 마주치면 그들을 손쉽게 문제아로 낙인찍고 마는 교사들을 경험하였습니다. 그와 달리 선생님은 저를 신뢰해 주셨고 덕분에 저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새 삶을 준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선생님이 저를 지켜보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저 역시 제 상황을 바꿀 만한 노력을 기울일 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언급하신 그 모든 일화들을 저 역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야간자습 시간에 학우들과 마주앉아 점을 칠 때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들 제 엉터리 점에 호응해 주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합니다. 아마도 으레 수험을 앞둔 학생들이 그렇듯 모두들 앞날을 내다볼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사실 지루한 야간자습을 잠시 미뤄둘 좋은 구실이 되기도 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엉뚱하게 보일 수 있었던 많은 일이 당시에는 얼마나 진지하게 느껴졌던지!

모의고사가 다가올 때마다 제가 학우들에게 나눠줄 초콜릿을 사는 데 얼마나 용돈을 썼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비용이 결코 헛되이 쓰인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학우들의 기억 속에 책상 위에 올려진 초콜릿 한 조각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들이 아닌 평범하지만 다른 중요한 하루하루의 삶들이야말로 이번 기회를 빌어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게는 선생님의 평소 수업이 좋은 기억을 많이 안겨 주었습니다. 사회문화 수업은 언제나 제가 자신 있게 질문에 대답하거나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진학에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시기보다는 논술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시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다른 방법을 찾아보셨던 덕분에 저는 진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기억하시는, 가방 속에 연장을 쟁여둔 ‘재혁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이따금 저는 제 인생의 분기점을 생각하곤 합니다. 이 사회가 고통에 대한 기억을, 정상성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을 미루어 볼 때 저는 지금보다 더 나쁜 삶을 살 수도 있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그 가운데 가장 나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입니다. 저는 이 사회의 다른 ‘재혁이’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 저는 그때의 다짐대로 역사학자가 되고자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제 가방은 여전히 무겁고 당분간 그 무게가 줄어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의 저는 더는 점을 보거나 스스로 점을 치지 않습니다. 미래를 아는 것보다는 미래를 맞이하는 방식이 삶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저는 더는 점을 칠 필요가 없으며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제자가.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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