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원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에듀인뉴스] 전북교육청이 자사고인 상산고에 대해 자격을 취소하자 사회적 갈등이 심하다. 아직 교육부의 승인 여부와 상산고가 예고한 행정소송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최종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어떤 결정이 이루어져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갈등양상을 보면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은 미흡하고, 교육의 질적 향상과 거리가 있으며, 두 당사자는 상식과 합리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다. 교육과 학교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한 삶과 공존적 가치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회적 가치이자 기관이라면 지금처럼 벌어지는 갈등 양상은 그에 맞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을 학문과 법령에 따라 객관적으로 쓰려고 한다. 그래야만 상산고 자사고 자격취소 문제를 사실적이고, 상식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전북교육청이나 자사고인 상산고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하려는 상황에서 벗어나 사실을 바로잡고 그 바탕위에 국민적 합의를 구하며 두 당사자 간에 대화를 촉구하기 위해서이다. 민주정부를 지키고 그 질을 고양하고자 하면 근거가 희박하거나 타당하지 않은데도 각자의 입장만 반복하는 사회적 갈등은 그만둬야 하기 때문이다.

상산고 학부모들이 전북교육청 앞에서 평가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2019.06.20.(사진=ytn 캡처)
상산고 학부모들이 전북교육청 앞에서 평가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2019.06.20.(사진=ytn 캡처)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 기준 점수 80점은 정당한가?

전북교육청이 재지정 기준점수를 80점으로 한 것은 합법적이다.

김승환 교육감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근거해 교육감의 권한을 행사했으며, 이에 대하여는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권고할 수 있지만 간섭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다른 시도교육청이 대부분 70점으로 했다고 해도 그것은 참고사항은 되지만 상산고에 적용할 의무사항은 아니다.

각 자사고 마다 교육과정이 다르며 학비도 다르다. 가령 광양제철고나 강원의 민사고, 울산의 현대청운고와 상산고의 교육과정은 다르다. 전국적 자사고라면 동일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법의 형평성 차원에서 이의는 제기할 수 있지만 교육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봐야 하는 특수성을 고려한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재지정 점수가 특수성을 과도하게 벗어난 90점이 되면 몰라도 상산고가 이전 평가에서 80점이 넘는 평가를 받았기에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사배자 전형) 만점을 4점으로 삼은 것이 정당한가?

전북교육청이 사배자전형 만점을 4점으로 정하고 1.6점을 부여한 행위는 부당하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부칙 제5조에 의하면 자사고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입학 정원의 10% 이상을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뽑아야 하지만 상산고처럼 자립형사립고에서 자사고로 지정된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비중을 올렸고, 상산고가 사배자전형지원을 의도적으로 막지 않았음에도 그 부분에 책임을 물어 2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1.6점으로 평가한 것은 법적 합리성과 사회적 상식에 어긋난다. 아무리 교육감의 권한이라도 법적 안정성이나 그 적용의 보편성을 고려하면 논란의 소지가 많고 근거가 박약하다.

더구나 상산고가 재지정 점수 80점에서 79.61을 얻었고 0.39점이 모자라 탈락한 상황에서는 전북교육청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측면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상산고는 사배자 전형에서 4점 만점에 1.6점을 얻었고 절반인 2점이라도 얻었다면 재지정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북교육청이 자사고의 문제를 개선하려고 했으면 먼저 자사고재지정과 관련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부칙 5조를 개정하려고 해야 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자의적으로 사배자 기준을 적용하였기에 그 의도와 관계없이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보거나 법의 확대해석에 가깝다.

앞으로 교육부의 승인이나 행정소송에서도 이 부분을 고려할 것이며 전북교육청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울 것이다.

(사진=ytn 캡처)
(사진=ytn 캡처)

▲자사고인 상산고는 교육의 형평성을 위반한 학교인가?

자사고인 상산고는 교육의 형평성을 어긴 학교라고 볼 수 없다.

학문적으로 형평성과 관련된 정의에 대해 맨 먼저 거론한 서구 사상가는 플라톤이었지만 그 의미가 오늘날과 매우 다르다. 그에게 있어 정의란 ‘계급사회에서 각 계급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거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법을 지키는 의미’였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형평성’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최초로 정립되었는데 그에 의하면 정의의 한 형태인 형평성은 ‘분배적 정의’이다. 즉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우하는 성질’이다.

분배적 정의는 정당한 불평등이나 합리적 차별을 내포한다. 상산고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측에서도 불평등과 차별만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정당한’과 ‘합리적’이라는 언어에 주목해야 한다. 즉 형평성은 선택의 자유를 주고 선택의 조건을 갖게 하는 ‘조건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 포함할 수 있지만 결과적 평등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헌법상 평등원칙도 이러한 형평의 관점에 입각해 있다. 즉 형평성은 ‘기회의 균등’이다.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졌다면 그 결과가 불평등해도 정의롭고 또한 합리적 차별이 이루어져도 부정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기회를 균등하게 하면 특권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그 기회를 균등하게 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다. 즉 국가와 사회마다 상대적이며 각 국가는 그 의미를 법령으로 총괄적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A라는 사회에서 기회가 형평하다는 경우와 B라는 사회에서 기회가 형평하다는 경우는 그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즉 그 사회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 ‘경제적 발전양상’, ‘사회문화적 배경’, ‘시민의식’ 등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국가는 형평성의 의미를 개략적이지만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그 의미를 헌법과 하위법령으로 명시한다.

우리나라 법령을 보면 자사고는 특권학교이지만 부당하지는 않다. 가령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특권을 지니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사고는 특권을 갖고 있지만 그 특권은 기회의 형평성을 어기지 않았다. 또 그 특권에 대해 도덕적으로는 비난할 수 있어도 법적으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자사고를 특권학교라고 비난하는 근거는 헌법 제31조 제1항(교육을 받을 권리)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에 의거해 균등한 교육이라는 헌법적 취지를 위반한 학교라고 본다.

전북의 상산고는 자사고 중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인데도 1인당 연간 학부모 부담금이 2017년에 1,089만원, 2018년에 1,203만원에 달했다. 같은 지역의 국립대학인 전북대학교의 2배가 넘는 지역 사립대 수준이니 서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국민정서상 특권학교이다. 그렇지만 자사고에 대해 학부모 부담금만으로는 특권학교라고 말할 수 없다.

헌법 제31조 제1항은 균등한 교육을 말하지만 또한 그 조문에서 ‘교육당사자의 (경제적)능력’을 인정한다. 더구나 헌법 제4조(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제10조(행복추구권), 제23조(재산권) 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고교선택권도 인정한다. 헌법 제31조 제2항(학습권), 교육 기본법 제3조(학습권), 교육기본법 제8조(의무교육)는 ‘국민의 능력에 따른 평생학습과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교육을 초등학교, 중학교로 한정’하여 제31조 제1항의 ‘균등한 교육’의 한계를 뚜렷하게 명시한다.

즉 자사고인 상산고는 기회의 평등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상산고를 특권학교라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상산고는 정당하다.

상산고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하는 측에서는 그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했다면 먼저 법적 개정을 서둘렀어야 했다. 현행 자사고 관련 법령을 그대로 두고 더구나 그 법이 헌법에 기초한 것임에도 상산고에 대해 비난을 하는 행위는 민주적이지 않다.

민주주의란 법치주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북교육청이 자사고 재지정점수를 80점으로 한 것도 인정할 수 있으며, 상산고의 사배자 전형기준점수의 부당성에 대한 항변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전북교육청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유리한 측면만 인용하여 상산고가 무슨 범죄 집단인 마냥 말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상산고를 무조건 옹호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전북교육청이 자사고 자격취소 과정에서 행한 여러 공적인 절차가 법리적으로 민주적 절차에 어긋난 점을 지적한다.

(사진=ytn 캡처)
(사진=ytn 캡처)

▲우선 선발권 폐지, 그래도 자사고 없어져야 하나?

작년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자사고의 특혜였던 ‘우선선발권’을 폐지하고 근본적으로 자사고든 일반고든 선택하라고 판시한 것은 헌법적인 형평성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 쟁점에서 밝혔다시피 형평성은 ‘기회의 균등’이다. 지금까지 고입진학에서 국민에게 기회를 불균등하게 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하게 기회를 균등하게 해주기 위해 우선선발권을 없애야 한다. 더구나 자사고와 일반고의 동일지역에서의 복수지원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불행하게도 한국의 정부와 교육은 자사고에 대해 우선선발권을 허용했기 때문에 부당한 차별을 했고 그 차별은 이제 끝나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상산고는 승복하기 어렵겠지만 상산고가 주장하는 사배자 전형의 부당성과 같은 맥락이다.

상산고의 지금 자사고 존치 주장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려면 우선선발권 폐지와 동일지역 일반고 지원 금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상산고의 우선 선발권 폐지가 마치 상산고의 등록금이나 대학진학률이나 고유의 교육과정을 근거로 한다면 그 이야기는 전혀 사실에 맞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들로 국민을 선동하고 상산고에 대한 적대적 분노를 자아내는 행위는 공감하기 어렵다.

자사고의 우선선발권과 동일지역 일반고 지원금지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헌법에서 정한 기회균등의 원리가 상산고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지켜져야 할 법적 규정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기 때문이다.

▲입시 중심 교육, 자사고 없으면 달라지나?

자사고를 모두 없애도 지금의 한국 교육에서 입시중심교육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교육계 일각에서는 또는 상산고를 포함한 자사고 폐지와 관련해 크게 착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입시중심교육이 이루어지는 원인은 국가교육과정의 탓이 아니다. 더구나 상산고의 자사고 자격을 폐지하면 일반고 학력이 향상된다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

이는 서구 선진교육국가와 우리의 교육제도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그 원인은 교육 외부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구조 때문이다.

그 사례로 전북교육청이 교육의 롤 모델로 삼았던 독일의 경우에 소득분배지표인 지니계수와 팔마지수가 우리와 비슷한데 그 나라의 교육과정이나 구조가 우리와 다르게 경쟁을 줄이고 있지만 그 배경은 입시중심교육과 무관하다.

독일의 경우에 우리로 따지면 노사정 협약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루어졌고, 또한 독일의 오랜 문화적 전통인 ‘유기체적 사회론’이 사회적 가치관으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독일의 일반 중등학교인 김나지움도 독일식의 특권학교이다.

교육과정의 변화로 입시중심교육이 사라진다는 주장은 무지의 소산이고 핀란드, 영국, 스웨덴 등 어떤 선진교육제도도 그렇게 해서 입시중심교육을 없애지 못했다. 지금 한국의 교육문제를 국민적 공감대를 갖고 해결하려면 시장에 나도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 자사고는 입시중심교육에서 수혜자이지만 그것이 교육과정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협약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시민의식의 낮음과 문화적 배경차이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하에서도 노사정 협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독일은 그 협약을 바탕으로 교육경쟁을 줄였다. 또한 중소기업에서 강소형 중소기업이 우리나라는 부재하지만 독일은 세계적인 강소형 중소기업국가이다.

입시중심교육과 자사고는 교육과정상으로 무관하다. 이런 논리로 입시와 자사고를 보니까 우리사회에서 생산적 공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사회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지금은 부족하지만 사회적 협약을 끌어낼 정도로 시민의식을 키우려면 무엇이 교육과정에서 선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력의 강화이다. 진보든 보수든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그런 실질적인 개혁을 단행하지 않고 집단적 목소리만 높이니 교육개혁이 헛돌고 있다.

전주 상산고 총동창회와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15일 오전 전북교육청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어 자사고 재지정 평가지표 시정을 촉구했다.(사진=상산고 총동창회)
전주 상산고 총동창회와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15일 오전 전북교육청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어 자사고 재지정 평가지표 시정을 촉구했다.(사진=상산고 총동창회)

▲상산고의 자사고 자격을 박탈하면 지역격차를 심화할 우려가 있는가?

자사고인 상산고를 폐지하면 지역격차 우려가 있다고 하는데 전국적 규모의 자사고인 상산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만약 상산고가 전국적 규모가 아니라 지역적 규모선발단위라면 그래도 부차적이나 장기적으로 고려할 만한 주장이다.

지역격차는 각 지역 간에 이루어지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인데 문명적 발전과정에서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그 격차가 커지면 사회적 갈등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는 조정해야 할 현상이다. 지금 상산고 학생의 과반수는 지역에서 중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에서 지역격차의 원인은 지역개발의 방식에 따른 결과이다. ‘성장거점개발방식’이라는 지역격차를 용인하는 방식의 지역개발방식을 택했고 이런 방식은 우리만이 아니라 일본, 독일 등 후발자본주의국가는 모두 했던 방식이다.

가까운 곳인 중국에서도 그렇게 했다. 지금 중국을 가본 사람이라면 동부와 서부지역의 개발적 차이에 대해 누구나 다 안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이루어진 우리와 인접한 동쪽의 개발에 대해 이제 시진핑 정부가 본격적으로 서쪽으로 개발을 확장하고 있다.

지역인재거론은 자사고인 상산고의 존치와 무관하다.

노무현 정부는 지역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개발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하였다. 행정수도 건설 및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지역 의견을 바탕으로 하는 상향식 개발이었고 이런 점은 이명박 및 박근혜 정부도 피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도 그렇게 하고 있다. 또한 세계사적으로도 독일이나 일본도 이러한 균형개발의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중국도 지금은 국가주도로 하방적 개발을 강행하지만 앞으로 이처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사고인 상산고를 폐지하면 지역격차가 벌어진다고? 거의 근거가 없다. 지역격차가 자사고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논리는 개발독재의 논리와 비슷하다. 지역격차와 전국적인 규모의 자사고와는 무관하다.

전북의 재정자립도가 17개 시·도 중에서 16위나 꼴찌를 차지한 것은 자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기반시설의 취약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인 측면인 재활, 돌봄, 교육과 문화적인 측면인 오락과 휴양시설은 다른 규모의 시도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재정자립도를 기준으로 하는 전남, 강원, 충북, 충남과 비교하면 앞서기도 한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려면 전라북도교육청의 교육재정을 봐야 한다. 즉 중앙정부에서 지원되는 교부금과 교육 지방채 및 시도전입금으로 이루어지는 수입과 경상경비와 특수목적비의 지출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자사고라는 중요한 교육현안을 망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전북교육청과 상산고는 대화해야 한다"

전북교육청은 상산고 등 자사고 문제에 대해 도덕적 선민의식을 갖고, 자사고가 특권학교라고 규정하고 교육개혁을 도모했지만 진영논리를 우선시한 점에서 성급하고 그 과정도 동의하기 어렵다.

정말 자사고의 문제점을 지적해서 교육을 바꾸겠다고 하면 그동안의 자사고 운영 실태에 대해 사실적 자료를 갖고 법령개정을 우선시해야 했으며 국민과 소통하려고 해야 했다. 또한 자사고가 국가재정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운영했던 긍정적인 점에 대해서도 깊게 성찰했어야 한다.

그런데 법령개정도 없었고 국민과 소통하지도 않았다. 오직 특권과 비특권의 이분법으로 자사고를 재단하고 상산고의 도덕성을 비난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육이 갖는 이중적 성격인 즉슨 교육과 학교가 학벌사회에서 당대와 후대에까지 끼치는 영향력, 진보 보수를 떠나 특권학교로 자식을 보내는 아이러니한 현실, 나아가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존본능을 무시했기에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절차적 정당성은 그 의도의 선함만큼이나 중요하고 민주주의는 의도를 보지 않고 절차적 정당성을 본다. 민주주의가 그 의도까지 고려해야 하는 완벽한 제도라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제도이지만 그것이 최소한 개인적 권력에 의존하는 전체주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산고의 손만을 들어줄 수 없다. 상산고의 교육과정은 자사고의 수월성이라는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살렸다고 보기 어렵다.

수학중심이라고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자사고를 만든 것은 그리고 자율형 사립고로 개칭한 것은 국가교육과정의 범위를 벗어나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획기적으로 추진하라는 의도였다. 최소한 그 학생의 수준이 중학교에서 상위권 학생이기 때문에 각 교과에서 고급심화과정을 대폭 개설하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상산고의 교육과정은 지금의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그렇게 보기 어렵고, 그렇게 운영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산고가 입시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 문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상산고가 자사고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자사고가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전북교육청이 옳다’거나 ‘상산고가 피해를 본다’가 아니라 지금 전북교육청과 상산고간의 갈등에 담긴 교육과 학교의 모습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원칙이나 과정의 정당성이다. 기본원칙의 정당성과 과정의 타당성을 지키는 사회, 그 사회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로서 옳기 때문이다.

다시 전북교육청과 상산고의 대화를 촉구한다. 단 한 번 만나서 해결할 사안도 아니다. 지금 교육부로 공이 넘어갔다고 해서 만남을 그만둘 것이 아니라 그와 무관하게 만나서 진지하게 지금 가능한 것들을 해나가야 한다. 제도가 맞지 않으면 바로 잡고 제도적 집행과정이 잘못되었으면 고치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맞추어 가면 그때 한국의 교육은 그렇게 바라던 서구의 선진교육학교처럼 되어 있을 것이다.

박제원 전북 전주 완산고 교사
박제원 전북 전주 완산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