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 경기 광성초 교사

맹자의 네 가지 선한 본성의 단서를 통해 교육현장을 말하다

[에듀인뉴스-명교학숙 공동기획] 학생들의 인성교육 방향 정립을 위해 고전(古典)을 활용한 교육이 떠오르고 있다. ‘명교학숙’은 이러한 교육계의 움직임을 리드하는 초·중등교사 연구모임으로 동·서양 인문고전을 탐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명교학숙과 함께 고전을 통해 우리 교육 현실을 조명하고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맹자(BC 372년 추정 ~ BC 289년 추정)
맹자(BC 372년 추정~BC 289년 추정)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端)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端)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맹자’ 공손추 상편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는 인간에게는 도덕적으로 선한 본성이 있으며, 그 본성을 인의예지로 규정했다. 그 본성이 생활 속에서 마음으로 드러나는데 그것들이 바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마음을 간직(存心)하고 남김없이 실현(盡心)하면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기르고(養性) 알게 되며(知性), 이는 하늘을 섬기는 길(事天)이요, 이해하는 길(知天)이라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가 추락하고 학생의 인권만 중시되는 현실에 있어 교실은 붕괴하고 교사는 의욕을 잃었다. 이러한 현상을 전적으로 정치적인 색채나 교육 행정적인 측면에서 보기에는 너무 극단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느낌이다.

교육이라는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행위에 있어 교육의 대상인 학생을 분석하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떤 처방도 무효하다.

학생도 사람이고 학부모와 교사도 사람이다. 맹자께서는 본디 사람은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데, 학교와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선한 본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맹자의 네 가지 인간 본성에 빗대 본 우리 학생들의 실태

맹자께서 말씀하신 인간의 착한 본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들의 실태를 네 가지 본성의 단서 측면에서 볼 것 같으면 이렇다.

네 가지 마음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인데, 혼란과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행동을 보면 다른 이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친구가 어떻게 느끼고, 어떠한 불쾌감과 아픔을 겪게 되는지 생각조차 안 한다.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지 다른 이의 감정에는 무관심하다. 물론 거기에는 교사의 감정도 포함된다.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이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잘못된 생각과 행동의 학생들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모양새이다. 이런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대부분 잘못과 잘함을 결정하는 기준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 또한 그 기준이 가정의 부모나 매체를 통해 습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혹은 공경하는 마음에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허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학생들이 교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라. 아무리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지만 학교 내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학생의 말투와 태도에서 교사는 자괴감을 느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의 언행을 닮고, 성장하면서 주위의 친구들과 교사의 영향을 받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의 기준이 생길 것이다.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다 보니 교사의 도덕적 기준보다는 부모의 도덕적 기준이나 또래집단의 기준을 따르게 된다. 이는 교사의 도덕적 기준과 학생들의 기준과의 괴리로 나타나게 된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부끄러움도 없고, 반성도 없이 교사 앞에서 그토록 당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사회 공동체와 연계해 교육계에 퍼진 병을 고쳐야 한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사람이 부여받은 선한 도덕적 본성을 문제와 혼란을 일으키는 학생들에게 회복해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병은 예방이 제일이다. 병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 환자는 병원에 가야 되고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를 받은 사람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지금 교육현장에서는 매우 위급하고 위험한 병의 증상이 나타났으나 이를 치료할 방법이나 처방전이 전무하다. 치료 대상인 문제 학생을 분석하고 그들의 행동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와 접근 없이는 지금의 어떤 교육적 처방도 무효하다.

모든 문제 행동은 학생 개인을 포함한 가정, 학교,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고 관리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토털서비스가 필요해진 것이다.

지역마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토털서비스센터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 시설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경우 머리와 마음에 병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에 맞게 해당 학년의 정규 교육과정을 가르칠 교사, 문제적 행동을 분석하고 접근할 상담전문가, 시설과 교육활동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경찰관, 심리치료사, 정신과 전문의, 법률전문가 등 다양하고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하다.

교육이 실패했다거나 교육을 포기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지금의 교육 현실을 인정하고, 가식과 체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서두를 때이다.

정치인은 표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고, 교육 행정가들은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있으면 입을 닫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일선에서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교사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암울한 현실은 더욱더 심화해 결국 사회적 비용 증대와 사회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새로운 시도에 있어 정치적 노선, 색깔, 소속은 장애물이 될 수 없다. 모든 교육단체와 교사들이 힘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이러한 노력과 시도가 선한 본성과 마음에 상처받은 학생들을 회복시켜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또한 감히 이러한 길이 하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길(知天)이요, 섬기는 길(事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영삼 경기 광성초 교사
유영삼 경기 광성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