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용인고등학교 교사

김동현 경기 용인고 교사
김동현 경기 용인고 교사

[에듀인뉴스]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 문제를 살펴볼 때, 이 문제의 중심에 지역의 교육과 자치, 학교 교육과정의 다양성과 자율성, 다양성 교육 파괴의 문제 등이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현재 자사고는 전국단위 자사고와 광역단위 자사고로 운영되고 있다. 먼저 상산고와 같은 전국단위 자사고는 전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다. 전국단위 자사고는 서울의 하나고, 경기의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 인천의 인천하늘고, 강원 횡성의 민족사관고, 충남 천안의 북일고, 울산의 현대청운고, 전남 광양의 광양제철고, 경북 김천의 김천고, 그리고 태풍의 눈이 된 전북 전주의 상산고가 있다.

그밖에 광역단위 자사고 이른바 지역 자사고는 지역마다 존재하는데 이번에 재지정에서 탈락한 안산 동산고나 부산 해운대고도 광역단위 자사고다.

상산고 문제가 다른 학교들에 비해 더 주목받는 데는 상산고 이사장이 우리나라 사학에서 갖는 상징성과 1기 자사고로서의 위상 그리고 전국 단위 모집의 자사고다 보니 전국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부의 기조는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본연의 기능을 잃었다면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시민사회단체는 이들 학교를 각각 ‘특권학교’로 규정하고 ‘차별교육’이라며 즉각 폐지를 요구해왔다.

반대 측에서는 ‘자율권’ 혹은 시장 논리에 따라 경쟁력 있는 학교에 대한 ‘선택권’이라는 명목으로 자사고 폐지에 대해 일제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에서 시험적으로 실시한 자사고 정책을 같은 당 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폐지했다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자사고는 대부분 좋은 입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선발 효과 인지, 학교의 교육과정 덕분인지 알기 어렵다. 다만, 자사고에 선발된 학생들이 각 중학교 내신의 상위 5% 이내 학생이라는 점(실은 더 높다), 자사고의 지필 평가와 면접을 통과하여 뽑힌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대단히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자사고에 다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각 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하는 학생들이 모두 한 학교에 모여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들 자사고의 입시 결과가 좋지 않은 편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입시 결과는 선발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고등학교 교사 입장에서 볼 때, 이 정도 성적의 학생들이 일반고에 진학해도 결과는 거의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왜 일반고에 진학하는 것보다 훨씬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자사고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이 문제의 핵심에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라 할 수 있는 ‘학연주의’가 깔려 있다. 고교를 중심으로 서로가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라미드의 꼭대기 자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학연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미 고교부터 맺어진 학연 네트워크는 대학교의 네트워크만큼 강고하다. 일부 대학에 특정 고교 출신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상과 그들끼리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까?

이를 '엘리트의 초집중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집중화는 다원성을 해친다. 집중화는 중심과 주변을 만들고 주변을 소외시킨다. 이 때문에 중심부에 집중된 이들은 의견의 다양성과 다름 혹은 차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한 사회의 민주성이 다양성과 차이 그리고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에서 지켜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특정 고등학교들을 중심으로 엘리트가 집중되는 것은 우려할만한 사항이다.

서울, 수도권의 공간적 집중화만을 집중화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공간적 집중화를 피하고자 지방에도 명문고등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이 공간적 집중화만을 생각한 발상이라 할 것이다.

지방살리기라는 명목 아래 지방에 있는 자사고들을 이른바 ‘지역의 명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 대한민국의 지형을 놓고 살펴볼 때 오히려 허구에 가깝다.

엘리트의 집중화와 공간의 집중화가 한국 사회의 중첩된 문제라는 것을 지적한 이는 최장집 교수였다. 이 중첩된 문제를 따로따로 하나씩 풀어내야 함에도 이 두 문제가 마치 하나로 붙어 있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교육 개혁 역시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 주장의 맞고 틀림에 대해 검증하는 것을 떠나 한 번쯤 깊이 생각할 문제다.

전주 상산고 교문에 부착된 현수막.(사진=지성배 기자)
전주 상산고 교문에 부착된 현수막.(사진=지성배 기자)

상산고가 지역에 위치한 전국단위 자사고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답은 그들의 말을 빌릴 수밖에 없다. 그들이 주장했던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노력이다.

‘미래의 지도자’란 민주 시민의 자질 없이는 불가능한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다원성을 포기한 엘리트들의 초집중화와 동질 집단화는 학생들에게 다원성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한 것인가. 그 결과가 가공할 만한 비율의 의대 합격자 배출인가.

의대를 많이 보내는 것 그리고 재수생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그 학교의 결과라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백번 양보해서 의대를 많이 보내는 일종의 의학 전문 교육과정을 운영했다고 한다면 그 교육과정 상의 특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산고의 교육과정이 그런 개성 있는 교육과정을 구현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오히려 자사고의 부담에서 벗어난 지금, 중앙의 엘리트에 대응해서 지방의 엘리트를 육성하기 위해 지역의 학생들을 배려하면서, 지역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그 지역 사회와 호흡하면서, 그 지역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지역의 문화와 사회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면 참된 의미의 ‘지역 명문’학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산고를 비롯한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자사고 문제는 결국 엘리트의 초집중화로 인한 다양성 확보의 실패라는 문제와 지역 사회 문화와 교류하지 않고 수도권의 지방 식민화에 일조한 것 아닐까 의심하는 정도로 거칠게 말하고 싶다.

그들은 지역에 있지만, 사실은 지역 속 작은 수도권이 아니었을까? 이로 인한 지역 내 차별과 특권의식이, 만에 하나라도, 학생들에게 부지불식간에 교육되었다면 이것 또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