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상 전북 상산고등학교 학부모

이윤상 상산고 학부모
이윤상 상산고 학부모

나는 왜 아이를 상산고에 보냈는가

아이가 상산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주위에 계신 분들이 비결이 뭐냐고 궁금해 했다. 아마도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했나보다. 나는 주저 없이 ‘용기’라고 이야기 한다. 수시전형과 학생부 전형 등 대학입시 전형에 내신 비중이 높은데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만 모여 있는 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상산고는 특별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합격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아이는 중학교 전 과목 A를 받았지만 전교 1, 2등은 아니었다. 그런 아이가 어떻게 상산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까?

상산고등학교에 지원하려면 담임선생님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대학진학 내신에도 불리하고 경쟁도 치열한데 왜 상산고에 보내려고 하세요?”라고 물으셨다.

저희는 아이를 명문대학에 보내려고 상산고에 보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 속에 배우는 것이 있었으면 합니다.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과 함께 더 높은 비전과 더 넓은 세계를 꿈꾸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선생님은 추천서를 써 주셨다.

아이는 평생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려니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3일 밤을 새웠다. 그렇게 일주일을 하루 3시간씩 쪽잠을 자며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접수 마감 3시간 전에 접수를 완료했다. 면접까지 마치고 최종합격이 확정되자 아이가 어리둥절했다. 스스로 일주일 넘게 잠을 설치며 집중한 것도 처음이었고, 그 결과가 합격이라는 것에서도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성장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상산고 기숙사..."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모두 가족"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 긴장해서 덜덜 떨며 캐리어 손잡이를 잡는 아이를 보고 엄마의 마음은 찢어졌다. 집 떠나 기숙사에서 보내는 첫 날은 어떠했을까?

상산고 기숙사는 한 방에 5명이 함께 생활한다. 같은 학년이지만 각기 다른 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 한 방을 사용한다. 한 방에 서울, 경기,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아이들이 함께 생활한다.

상산고 기숙사에는 대한민국의 큰 병폐라는 지역감정이 있을 수 없다.

5명이 생활하다보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어떻게 갈등을 해소할까? 방마다 아이들끼리 규율을 정한다. 아이들끼리 세수하는 시간, 샤워하는 시간도 협의해서 정한다. 한 학기마다 룸메이트가 바뀌니 졸업할 때 쯤 되면 아이들은 형제처럼 가까워진다.

아이들만 형제처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도 가까워진다. 집이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가 아프면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 전주에 사는 같은 반 엄마에게 부탁하면 엄마는 자기 자식처럼 달려가 병원에도 데려간다. 아이들이 교정에서 어른을 만나면 하나 같이 인사를 한다. 모두 자기 부모처럼 느끼는 정이 자라기 때문이다.

경쟁으로 시기와 질투?..."협력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

상산고 하면 공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입학해서 3월 첫 모의고사를 보면 아이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문제 하나 틀렸는데 전교 등수가 80등 가까이 떨어졌다. 아이에게 성적, 등수 신경 쓰지 말고 재미있게 학교 생활하라는 말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때의 충격으로 중간고사를 보기 전 일반고로 전학 가는 친구들도 있다. 아이들은 떠나는 친구를 위해 조촐한 송별회를 열어준다.

중간고사 마치고 기말고사를 볼 때쯤이면 아이들은 자기 등수에 약간은 무덤덤해지려 한다. 아이가 친구를 경쟁상대로 생각할 텐데 어떻게 하지라는 물음도 사라진다. 어느 날 아이가 문제를 풀다 끙끙대자, 친구가 쓰윽 다가오더니 “얌마, 이건 이렇게 푸는 거야”라며 알려준다. 다음에는 자기가 아는 거 친구에게 가르쳐 준다. 이렇게 서로 협력하며 경쟁하는 모습이 상산고의 학풍이다.

학교 운동장에 모여 축구하는 상산고 학생들의 모습.(사진=지성배 기자)
학교 운동장에 모여 축구하는 상산고 학생들의 모습.(사진=지성배 기자)

아이의 적성을 찾아줄 수많은 특강과 동아리 활동

상산고에서는 수많은 특강이 진행된다. 특강을 보면 대학교에서 다루는 주제다. 특강 선생님은 외부 강사가 아니라 교과목 선생님이다. 그렇다면 왜 대학에서나 다루는 주제로 특강을 할까. 아이들의 수준이 되어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재 공부하는 교과목이 더 심화하면 이러이러한 분야까지 활용 폭이 넓혀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흥미를 갖고 공부하게 된다. 요즘 의대 사관학교 이야기를 하는 모양인데 오히려 자연과학과 이공계 특강도 다양하게 진행된다.

120여 개의 동아리 활동은 오히려 대학 동아리보다 활기차다. 연극·영화 동아리, 만화 동아리, 힙합·댄스 동아리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며 청소년기 에너지를 발산한다. 직업·적성 특강은 부모님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지는데, 전문 강사를 모시는 것보다 격이 없는 정보교류가 가능하다.

어느 날 아이가 진학 전공을 뭐로 할까 고민이 된다고 했다. 과학자가 꿈 아니었냐고 하니, 선택지가 넓어졌단다. 아이들은 미대가면 좋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자유전공하면 어떨까?” 하니 “아하!”하며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입시 문제는 전국 공통! ..."오히려 성적으로 차별없는 상산고"

선배 학부모의 이야기를 빌리면 2학년이 되면 내려놓은 줄 알았던 입시와 내신의 압박이 몰려온다. 이건 상산고 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산고 선생님들은 아이를 성적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성적과 무관하게 동등하게 아이를 대한다. 성적이 떨어져 선생님으로부터 무시 받는 일은 없다. 세심하게 아이들을 보살피는 선생님은 부모의 마음으로 헤아린다.

한 학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일들을 사진과 글로 모아 책으로 엮어 아이들에게 주신 선생님은 지금 교감 선생님이 되셨다. 그 책을 받아든 아이들은 눈물바다가 되어 선생님을 얼싸 안는다. 선생님으로 때로는 부모님으로 아이들을 돌보신다. 상산고등학교의 사제지간은 그렇게 정이 쌓인다.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지만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고 협력하고 존중하는 친구들이 있어 청춘을 불태운다.

학원으로 아이들을 실어나른다고요?..."아이고, 김승환 교육감님"

상산고 교정에 들어서면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 기분이 좋다. 입시 스트레스에 쪼들린 아이들과 다른 점이 신기하다. 졸업생의 70%가 의대에 진학하는 기형적인 학교라며,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대형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아이들을 서울 대치동 학원으로 실어 나른다는, 전라북도 교육감의 말씀에 실소가 나온다.

토요일 교정을 둘러보면 교육감님 말씀대로라면 열심히 공부만 해야 할 아이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열심히 축구하고 농구하며 뛰어 논다. 학교 앞에 대형 버스가 줄서는 날은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갈 때, 각 지역 별로 부모님들이 셔틀버스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상산고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만들어 진다고 하는데 실상은 학교 수행 평가와 프로젝트를 준비하다보면 학원 숙제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학원 다니는 것이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상산고는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학원에 갈 수는 있다. 그런데 학원에서 늦게 끝나 기숙사 입실시간을 놓치면 벌점이 부과되어 입실이 어렵다. 기숙사는 12시가 되면 일괄 소등한다. 잠이 모자라면 다음 날 수업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도 성숙, 부모도 성숙..."상산의 전인교육"

상산고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기 삶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 어려움도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과정 속에서 성숙해져 간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해하던 부모도 한 학기가 지나면 철든 부모가 된다. 아이는 아이답게 현실에 충실하며 내일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비전과 희망을 쌓아 간다.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 평가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불거져 불안할 만하지만, 오히려 상산고 진학을 용기 있게 선택한 후회는 없다. “내 아이가 달라졌다” 그것이 상산이 지닌 전인교육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