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범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서울대학교 교수

'선별적 폐지'가 현재까지 잠정적 결론

[에듀인뉴스] 지난 6월20일 전북교육청이 상산고의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 재지정 평가 탈락을 발표하면서 자사고의 존폐 논란이 다시 점화되었다. 이미 2014-15년에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진보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한 차례 논란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자사고 재지정 여부에 대한 교육부 장관의 권한이 ‘협의’에서 ‘동의’로 강화되었다. 지난 정부는 진보 교육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자사고 유지를 주장하면 보수가 되고,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면 진보가 된다. 심지어 자사고 이슈는 단순한 편 가르기를 넘어 이분법적인 선악 논리로 포장되기도 한다.

진보의 입장에서 자사고는 귀족학교, 사교육의 주범, 입시 기관화,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이고, 보수의 입장에서는 자사고가 수월성 교육과 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표방한다고 생각한다. 중간 지점의 타협이 있을 수 없는 극단적인 대립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표된 각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결과를 보면, 자사고 폐지나 유지가 아니라 일부 자사고의 선별적 폐지가 잠정적 결론이다.

자사고 전체를 폐지하려면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고쳐서 자사고의 불안정한 법적 근거마저 없애버리면 되는데, 교육부가 시행령을 고치지 않고 개별 교육청의 평가에 맡겨놓았으니 선별적 폐지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진보 교육감과 달리 보수 교육감은 자사고를 폐지할 이유가 없고, 어떤 지역은 자사고가 지역 교육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등 지역마다 자사고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는 한 자사고 전면 폐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평가 결과와 남은 절차는?

올해 평가 결과 민족사관고, 대구 계성고, 현대청운고, 천안 북일고,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김천고는 자사고 지위를 5년 더 유지하게 되었고, 부산 해운대고, 안산 동산고, 전주 상산고는 자사고 지정이 취소되었다.

이 세 학교의 탈락 사유도 동일하지 않아 보인다. 오는 10일로 예정된 서울시교육청의 13개 자사고(경희고, 동성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중동고, 중앙고, 한가람고, 한대부고, 이대부고, 이화여고, 하나고) 재지정 평가 결과가 아직 남아 있고, 인천교육청도 인천포스코고의 재지정 여부를 곧 발표할 듯하다. 재지정된 학교나 탈락한 학교나 각 고등학교는 그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이렇게 올해 24개 자사고에 대한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가 마무리되면 탈락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교육청의 청문 절차가 진행되고, 그 이후에 교육부 장관의 동의 여부에 따라 재지정 여부가 확정된다.

교육부장관이 동의하면 상산고처럼 재지정이 취소된 학교는 예고한 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교육부장관이 동의하지 않으면 교육감이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예고하고 있으니, 최종적인 재지정 여부는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상급법원에서 확정될 것이다.

아마도 교육청이 소송을 제기하기보다는 재지정에서 탈락한 고등학교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리라 생각한다. 탈락 학교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법적 판단의 기준은 해당 교육청의 평가 기준과 평가 과정의 공정성, 교육청 간 형평성이 될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

특히 상산고는 평가 결과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의 동의/부동의 결정에서부터 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가는 동안 재지정이 취소된 자사고는 그야말로 어정쩡한 상황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이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이다.

해당 학교 학생들도 피해자이고, 당장 올해 고입에서 탈락 학교에 지원하려는 중학생도 잠재적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교육청과 탈락 학교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고입 환경이 매우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올해로 끝나는 게 아니다. 어쩌면 내년에는 피해 학생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전체 자사고 42개 가운데 올해 24개교가 평가 대상이었으니, 내년에도 16개교가 평가를 받는다.

군산 중앙고와 대구 경일여고는 이미 교육청에 자사고 지정취소를 요청했으므로 사실상 일반고 전환이 예정되어 있다.

자사고를 만든 사람도 어른이고 없애려는 사람도 어른인데, 어른들의 생각이 서로 달라서 학생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현실이 내년에도 반복된다.

'태풍의 눈'...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의 핵심은 이미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상산고와 함께, 서울 지역 13개 자사고 중에서 일반고로 전환되는 학교가 몇 개가 될지, 그리고 하나고의 재지정 여부라고 생각한다.

상산고(전북교육청), 서울 자사고와 하나고(서울교육청)가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의 키워드라는 뜻이다. 상산고가 키워드가 된 이유는 이미 알려져 있듯이 재지정 기준 점수를 80점으로 상향시킨 전북교육청의 ‘특별한 대우’와 감점 기준을 비롯한 평가의 공정성 논란 때문이다.

특히 고입 선발 시기와 자사고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학생의 일반고 지원 기회를 두고 상산고를 비롯한 전국단위 자사고들이 작년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상산고는 자사고의 아이콘이 되었고, 상산고에 엄청난 사재를 출연한 상산고 이사장의 헌신과 전북교육감의 진보적 교육관이 충돌하여 전국적인 이슈로 진화했다.

서울 자사고가 관심의 초점이 된 까닭은 자사고 폐지 논란이 서울에서 처음 제기되었고, 전국 42개 자사고 중에서 22개가 서울에 있고 올해 평가 대상인 24개 자사고 중에서도 13개가 서울 자사고이기 때문이다.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된 자립형사립고는 민사고, 상산고,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 현대청운고, 해운대고 밖에 없었는데,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고교다양화300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서울에도 광역단위 자율형사립고가 대폭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2014-15년에 자사고 재지정 권한을 둘러싼 서울시 교육청과 교육부의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처럼 자사고 폐지는 사실상 서울 이슈로 시작되었다. 자사고 폐지 이슈를 처음 제기한 서울시교육감의 의지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서울에서도 재지정 탈락 고등학교가 여럿 생기리라 예상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달 27일 열린 2기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교육부가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뜻을 내비쳤다.(사진=서울시교육청)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지난달 27일 열린 2기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교육부가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뜻을 내비쳤다.(사진=서울시교육청)

결과 발표 전부터 서울시교육감이 권한쟁의심판을 거론하며 교육부를 압박하는 이유도, 자사고 학부모들이 시위에 나서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만약 하나고를 포함해 13개 고등학교가 모두 재지정에 탈락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리고 탈락한 학교가 소송에 나선다면, 올해 서울의 고교 입시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와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어느 고교를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교육 당국에 대한 분노로 이어질 것이다.

올해 서울 자사고 평가 결과는 내년도에 재지정 평가를 받는 서울의 9개 자사고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되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기류는 외고와 국제고까지도 존폐를 예단하기 어려운 회오리바람 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현 정부가 자사고, 국제고, 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공약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발표는 향후 일반고 전환 정책뿐만 아니라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 같은 다른 교육 정책들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하나고의 재지정 여부에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한 가지는 이미 알려져 있듯이 그동안 하나고와 서울시 교육청이 여러 번 감사와 시정 권고 불이행이라는 과거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고와 상산고의 형평성 때문이다.

하나고의 교육은 수시모집에 특화되어 있고, 상산고의 교육은 정시모집에 특화되어 있는데, 두 학교 모두 재지정에서 탈락한다면 탈락 사유는 자사고 교육과정이나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감의 의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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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폐지나 유지의 명분과 근거는 타당할까

지금의 상황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난무하고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진영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귀족학교 혹은 특권학교, 사교육 유발, 일반고 황폐화, 입시기관으로의 전락이라는 비난이 정말 자사고 폐지의 명분이 될 수 있을지, 수월성 교육과 다양성이 자사고 유지의 명분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객관적 증거에 근거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의대에 많이 보내기 때문에 상산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므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소수 특권 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의미로 생각되지만, 상산고가 아무리 공대와 자연대를 보내려고 유도해도 의대에 지원하겠다는 학생의(혹은 학부모의) 선택을 막을 도리가 없으므로 의대 진학이 자사고 재지정 거부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갈 수만 있다면 일반고 학생도, 과학고와 영재고 학생도 의대에 가려고 한다.

귀족학교란 단순히 부자가 다니는 학교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부터 일반고 3학년 학생이 무상교육을 받고 있고, 무상교육은 점차 전면적으로 확대된다. 그런데 자사고 학생은 등록금만 1년에 약 400~600만원을 내야 한다. 자사고에 다니면 학교에 따라 기숙사비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한 추가 비용이 일반고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

등록금만 비교했을 때 자사고가 귀족학교라면 우리나라에는 귀족이 너무 많이 산다. 서울 강북 자사고와 강남의 일반고 학부모 중 누가 더 귀족일까.

사실 학부모가 아이를 자사고에 보내고 싶은 이유는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도 있겠지만, 아이를 선별된 소수 그룹의 일원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일상의 언어로 다시 표현한다면, 공부 잘하는 부자 집의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내신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자사고에 보낸다는 뜻이다. 그리고 ‘좋은’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한다면 학업 포기자가 많은 일반고에 다니는 것보다 수능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 사회에서 짧은 역사를 가진 자사고가 학연을 형성해 우리 사회에서 특권 그룹을 형성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강남 일반고에 비해 강북 자사고가 특권 계급이나 사회적 엘리트를 만들어내는 학교인지도 의문이다.

강북 자사고가 사라지면 강남 학교의 주가만 높아질 수도 있다. 자사고가 사라져도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풍선 효과처럼 또 다른 인연을 특목고나 강남 지역에서 찾아낼 것이다.

더구나 사회에서 소수 엘리트 그룹이 만들어지는 장치는 학연만이 아니고, 오히려 학연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귀족학교란 미래에 소수의 특권계급이 형성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 일반고의 상대적 열패감을 표현하는 용어인지도 모른다.

자사고가 공부 잘하는 부유한 집 학생을 싹쓸이하고, 일반고에는 공부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학생이 늘어간다. 그러므로 일반고를 살리려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일반고에 갈 수 있도록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자사고가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인지 아닌지는 여러 주장이 분분하다.

아마 일반고 황폐화에 자사고만이 아니라 영재고와 특목고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어쩌면 특성화고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학생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는 일반고 자신일 수도 있고, 학생에게 공부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어주지 못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일 수도 있으며, 학생의 가정환경이나 학생 자신의 적성이 일반고 공부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이 주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자사고는 공범일 수는 있어도 주범은 아닌 듯하다.

자사고 폐지 주장은 공부를 잘하는 일반고 학생과 공부를 못하는 일반고 학생 모두의 학업 능력을 높이려는 정부, 교육청, 학교의 노력이 선행되어 자사고보다 좋은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들을 일반고 학생도 수강할 수 있을 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일반고를 살리려는 정부와 교육청과 학교가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자사고를 폐지한 뒤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일반고에 입학했는데 정작 학생은 학교 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에 의지해 수능 준비를 한다면, 자사고가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를 상실한다.

그리고 일반고 황폐화의 원인을 잘못 파악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자사고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혁신학교에 배정되었을 때 그 학생은 3년 뒤에 학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졸업할까.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비난은 자사고에 들어가려고 사교육을 많이 받거나 자사고 학생이 일반고보다 더 많은 사교육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에게 사교육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학교는 영재고와 과학고지만, 사교육을 유발한다고 이 두 학교를 폐지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자사고 입시는 내신과 면접 아니면 추첨이다. 특히 서울 자사고는 입학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다. 자사고에 가려고 내신 사교육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중학교 내신을 잘 받기 위한 사교육은 자사고 입학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사고 학생과 일반고 학생의 사교육비는 아마도 공부하겠다는 학생의 의지와 학부모의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학교 수업의 질에 대한 판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사교육비 유발을 판단하려면 객관적인 데이터와 면밀한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

자사고가 입시기관으로 전락했다면, 입시기관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고교는 어디일까. 이렇듯 우리는 허수아비 게임을 하듯이 자사고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화살을 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을 하고 있을까

만약 수월성 교육이 수능 점수를 높이는 교육이라면 어떤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을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다. 선발 효과도 있겠지만, 학교 교육이 수능 점수를 올리는데 최적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반고 교육도 수능 점수를 높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자사고가 일반고처럼 수능 대비 수업에 집중한다면, 자사고의 존재 이유는 없다. 자사고 교육의 차별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능 성적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수월성 교육의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수능 대비 오지선다형 문제풀이에서 벗어나 학생의 호기심과 지식 활용능력을 키우고 자기주도적인 학업태도와 협업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수월성에 가깝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을 하고 있고, 어떤 자사고는 그렇지 않다.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갖춰서 일반고에게 본보기가 되는 자사고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학교도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사고 재지정 여부는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일괄 결정되지 않고 자사고가 일반고와 차별되는 수월성 교육을 하고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런 자사고가 없다면 일반고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지정을 취소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선별적 폐지가 잠정적 결론인데, 문제는 그 선별 과정과 결과의 타당성이다.

자사고가 없어지면 일반고 교육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일반고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전보다 늘어났다면, 다시 학업을 시작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교사가 공부 (잘)하는 학생이 없어서 못 가르치겠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자사고를 폐지하거나 유지하려면 명분과 합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재평가 논란에서는 폐지든 유지든 수긍할 수 있는 명분과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학생의 혼란을 막기 위해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대구교육감의 설명이 차라리 솔직하게 들린다.

정말로 자사고 폐지를 원한다면, 그럴 근거와 명분도 필요하고, 동시에 자사고 폐지 이후 고등학교 체제는 어떻게 재편되고, 정부와 교육청은 더 좋은 학교 교육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투자할지, 고교교육의 큰 그림과 실행계획이 같이 제시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도 교육청에도 고교 교육의 비전과 전략과 투자계획은 없어 보인다. 남아 있는 서울시교육청 발표에 이 부분이 담겨 있기를 기대한다. 남 탓만 해서는 일반고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

다수의 자사고가 정말로 뛰어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건학이념에 따라 차별화된 학생을 길러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수의 자사고가 일반고와 차별화되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 종속된 우리 교육의 모순과 질곡의 원인을 자사고에 투사하여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잊어버린다면, 자사고 평가는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모든 학교에게 자사고만큼의 자율권을 주고 자사고보다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정책적 결정은 왜 그리 요원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지레 포기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굳이 강남으로 이사하지 않더라도, 자사고나 특목고에 보내지 않더라도, 일반고에서 좋은 교육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면, 고교 무상교육이 시작된 마당에 매분기 100만원이 넘는 학비를 내고 자사고와 특목고에 자녀를 보낼 필요가 없다.

일반고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자사고는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그래서 자사고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사고보다 더 좋은 일반고 교육을 다양하게 학생맞춤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은 어렵고, 재지정 취소는 쉽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찜찜한 뒷맛...평가 방법을 바꾸는 것은 어떤가

자사고 문제는 정치적 이슈가 되었고, 교육청도 정치화되었다. 지방선거 이후 당선된 교육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교육청의 주요 정책이 바뀌고 사람도 달라진다. 이제는 교육부처럼 교육청도 정치 바람을 탄다.

현 교육감은 자사고를 없애고, 다음 교육감은 자사고를 다시 살리며, 그 다음 교육감은 또 다시 없애는 상황이 반복되면 학생과 학부모는 사라지고 정치만 남는다. 그러면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러 사교육을 찾는다.

교육 자치의 방향을 역행할 수는 없지만, 교육 정책의 안정성을 담보할 묘안도 함께 찾아야 한다. 각 교육청마다 다른 평가 기준과 배점, 재지정 기준점을 적용해도 개별 교육감의 법적인 권한이므로 타당하다고 여겨야 할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교육청별 평가에서 '교육청연합' 평가로 바꾸고, 평가과정을 전면 공개하며, 청문 절차를 평가과정에 포함하면 어떨까.

뭔가를 결정했지만,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결정 이후에는 무엇이 달라질지 알 수 없을 때, 뒷맛은 찜찜하게 오래 간다.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교바사)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