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 이겨내고, 약소국에겐 갑질한 베트남, 깔볼 상대 아냐"

베트남 "자신들 살상한 나라에 투자 유치하는 실리 추구 나라"
"강대국에겐 투쟁, 약소국에겐 갑질하는 '이중성'에 주목해야"

휴직 후 반년, 120권 책 읽어..."입력이 충분해야 출력 잘 된다"
서울시교육청 글쓰기 의무화정책..."방식 퇴행적, 실적 거양용"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아프리카TV에 ‘철구형2’, ‘BJ감스트’, ‘대도서관’ 등의 BJ가 있다면 교육계 SNS에는 권재원 교사가 있다. 페이스북 등 SNS에 개인 포스팅을 남기면 어마어마한 수에 달하는 ‘좋아요’와 댓글이 달리는 권 교사가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를 출간했다.

20여권이 넘는 책을 써온 권 교사는 왜 베트남사를 쓰며 ‘반전이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썼을까.

“베트남 하면 가난하고 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강대국들과 싸워 많은 승리를 했고, 이웃 약소국에는 제국의 얼굴로 갑질을 했던 나라다. 깔볼 만한 상대가 아니다.”

몽골제국과 청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프랑스의 식민지배도 스스로 이겨낸 독립정신과 함께 자신들보다 약한 나라는 아래로 내려다보는 중화주의의 얼굴을 한 베트남의 이중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권 교사는 "베트남은 자신들의 정책오류를 시인하고 나라의 방향을 바꾼 나라, 자신들을 살상한 나라에 사과와 배상보다는 투자를 유치하는 나라, 길고 찬란한 역사를 가진 잠재력이 높은 나라”라며 “우리에게 미국, 중국, 일본만큼 중요한 나라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너무 빈약해 주제별로 책을 쓰다 보니 20권이 넘었다고 말한다. 간접적으로라도 사회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 책을 썼다는 설명이다. 

올해 무급휴직을 하고 책 읽기와 글쓰기에 몰입했다는 권 교사를 만나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글쓰기 교육 정책에 대한 그의 시선도 함께 따라가 보았다. 아래는 권재원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 저자와의 일문일답.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 저자 권재원.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 저자 권재원.

▲올해 학교를 휴직했다. 어느덧 절반의 시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지냈나

매일 두 시간 독서, 세 시간 집필, 두 시간 운동, 한 시간 일본어 공부, 한 시간 피아노 연습으로 보낸다. 합치면 매일 아홉시간 노동을 하는 셈이다. 직무를 쉴 뿐, 실제로 쉬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동안 읽은 책이 120권, 작성한 원고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1600매 정도니 내가 봐도 너무 과로하는 게 아닌가 살짝 걱정된다.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를 출판했다. 축구 감독 박항서, 여행지 다낭으로 더욱 친숙한 베트남인데. 베트남사를 펴낸 이유가 있다면

베트남은 갈수록 우리에게 중요해질 나라다. 이미 중국의 성장 동력이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우리나라 기업이 베트남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현재 베트남에 투자한 외국 자본 중 한국 자본이 가장 많다. 또 결혼, 취업 등을 위해 우리나라로 이주한 베트남 사람들도 20만명이나 된다.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정작 교육과정에서 베트남에 대해 제대로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는 많지 않다. 단지 전쟁, 저렴한 관광지, 박항서 감독, 대중매체를 통해 파편적으로 얻은 정보뿐이다. 이미 베트남은 우리에게 미국, 중국, 일본 만큼이나 중요한 나라다. 제대로 배워야 한다.

▲베트남 역사가 500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월남전 빼고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베트남사 를 쓰게 된 베트남의 매력은 무엇인가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국가이면서도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이며,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민족적으로도 유사점이 많은 나라다. 그런데도 너무 알려진 것이 적고, 가난하고 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화유산과 지혜를 간직한 나라이며, 베트남 사람들 역시 여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베트남이 저렴한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베트남을 깔보고 얕잡아보는 모습들을 본다. 청소년이라도 그런 잘못된 생각을 고쳤으면 한다.

▲‘반전이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관심을 끈다. 베트남사의 ‘반전’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베트남의 이미지는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 억압과 전쟁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라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그 사이에서 굳세게 싸워 버텼다는 이미지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실제로 동남아시아의 패권 국가로 제국주의적 성향까지 드러냈던 나라다. 역사도 우리나라보다 길다. 몽골제국, 명제국, 청제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내놓으라 하는 강대국들과 싸워 모두 이기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이웃 나라에는 제국의 얼굴을 하고 갑질을 많이 하기도 했다.

베트남에 패한 프랑스군 포로들.(사진제공=권재원)
베트남에 패한 프랑스군 포로들.(사진제공=권재원)

▲대부분 베트남을 약소국으로 알고 있는데, 설명을 들으니 우리가 베트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베트남사에서 가장 주목할 점을 꼽는다면.

베트남은 중국과 인접한 나라로 1000년이나 중국의 지배를 받은 아픈 역사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싸워 독립했으며, 이 독립 정신을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세계를 정복한 몽골제국의 세차례 침공을 모두 격파했고, 전성기 청나라의 침공도 격파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 역시 싸워서 물리쳤다. 이런 강인한 독립정신 이면에는 주변 다른 나라, 민족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중화주의의 다른 얼굴이 있었다. 이 이중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베트남의 강점과 약점이 모두 있다.

▲베트남사를 쓰며 우리나라가 본받았으면 하는 게 있다면. 귀감이 될 만한 베트남 역사의 장면을 소개해달라

도이머이 정책의 도입 과정이다. 도이머이 정책은 베트남 공산당이 자신들의 정책 오류를 깨끗하게 시인하고 나라의 방향을 바꾼 용기 있는 결단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과거 자신들을 무참히 살상했던 우리나라, 미국, 일본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과거사에 대한 사과니 배상이니 하는 것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안하냐? 그럼 투자하라.” 이런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줏대 없이 구는 것도 아니다. ‘과거는 잊지 않았으나, 구태여 배상 따위를 요구하지는 않겠다. 우린 약자가 아니라 강자니까’라는 이런 인상을 준다.

그래서 오히려 더 두렵게 느껴진다. 실리를 위해 명분을 감출 수 있는 사람이 명분을 크게 외치는 사람보다 더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20만에 달하는 국내 거주 베트남인들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국가적으로 취해야 할 정책이나 자세가 있다면

국내 거주 베트남인의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주한 베트남인들은 결혼이민이 아니라 대부분 노동 이민이다. 베트남 노동자는 다른 동남아시아 노동자보다 근면성실하고 한국 문화에 적응을 잘하는 우수한 인력이다.

이들을 쓰다 버리는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말고 동료이자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 그들이 정착하건 돌아가건 여기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장차 우리나라와 베트남 관계의 밑거름이 된다. 말로만 앞으로 베트남이 중요하다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길 바란다.

▲베트남 2세가 많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베트남 학생들은 자신들을 소수자, 약자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베트남 정체성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신경 쓰고 배려하는 것을 다소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지를 가지고 지키려 할 때 필요한 교육 자료 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어밖에 구사하지 못하거나 베트남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베트남 교육 당국과 협력하여 이 학생들을 위한 베트남어, 베트남 역사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도 개설하면 좋을 것 같다.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 표지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 표지

▲이번 책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베트남을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중년층 이상은 베트남을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만 떠올린다. 젊은 층은 베트남을 관광지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어쩌면 우리나라보다도 더 길고 찬란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이며 이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는 잠재력이 높은 나라다.

성실하고 긍지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적국과 과거사 등을 따지는 대신 쿨 하게 관계를 개선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진정 무서운 나라이기도 하다. 이 작은 책은 그 주위를 환기하는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다.

▲책 출판을 많이 했다. 지금까지 몇 권이나 펴냈는가. 출판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가 있다면.

정확히 말하면 책 출판이 아니라 글쓰기에 열심이다. 몇 권인지는 안 세 봐서 모르겠다. 공저까지 포함하면 일단 스무 권은 넘는 것 같다.

내가 출판하는 이유는 교실 바깥에서 사회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대부분 사람이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시간에 배운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게다가 사회 교과서 역시 너무 많은 범위를 주마간산으로 다룬다. 각각 책 한권씩이라야 할 내용을 한두 쪽에 몰아넣기 일쑤다. 그래서 그 각각의 책 한권을 썼다.

직접 수업은 못 해도 간접적으로라도 사회 수업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국민 사회 교사라 표현하고 싶다.

▲서울시교육청의 중학교 책 쓰기 의무화 프로젝트를 어떻게 생각하나

교육은 교사가 하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자유로운 만남 속에 창조적인 수업이 만들어진다. 아무리 그 내용이 좋고 취지가 좋아도 그것이 관철되는 방식이 구태의연하면 그 수업은 구태의연한 것이 된다. 국정교과서가 구린 까닭은 친일, 독재 미화 같은 게 아니고 국정이라는 방식 자체가 퇴행적이고 반민주적인 것이다.

연극, 책 쓰기 등 서울교육청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체 학교에 의무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게 창조적이건 진보적이건 상관없다. 그게 관철되는 방식이 퇴행적이다. 이런 식의 사업을 교육 혁신에서 제일 먼저 덜어내야 할 ‘실적거양용 사업’이라고 한다.

▲책을 쓰고는 싶은데 어려워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다작 경험자로서 책 쓰기를 시도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해 달라.

입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출력이 안 된다. 책은 아주 긴 글이다. 즉 먼저 글을 써야 하며,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하려면 많이 경험해야 한다. 직접 체험하는 것도 좋고, 독서와 검색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도 좋다.

특히 독서는 직접 체험의 범위를 아득하게 넘는,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경험의 보고다. 좋은 글을 많이 읽지 않고 글을 쓸 수 없다. 단 수동적으로 읽지 말고 글쓴이와 대화하며 읽어야 한다. 때로는 대결하는 자세로도 읽고. 그렇게 입력이 충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넘치며 글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