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 부산 주감초등학교 교사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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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에 대해 많은 논의와 진전된 형태의 수업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AI를 주제로 하는 교과서를 개발 중이고, 부산시교육청은 AI기반교육 가이드북을 편찬해 일선 학교에 보급했다.

특히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문재인 대통령 내방 직후 알려진 이른바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 발언은 AI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불을 붙였다.

이미 일선 학교에서는 AI스피커, AI비서(구글 어시스턴트, 시리) 등을 활용해 영어나 음악 수업에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시교육청은 AI도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관 중 하나다.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교육감 지휘아래 AI를 활용한 영어교육을 추진 중이며,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학생이 AI와 대화하며 영어회화를 연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하반기 시범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플랫폼은 AI가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잘못된 발음이나 문법적 오류를 수정해주는 형태이며, 나아가 학습자 관리 기능을 통해 학생의 수준에 맞는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

여기에 교육부는 지난 5일 인공지능과 1:1 대화 연습 기능을 갖춘 영어말하기 연습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는대로 내년부터 시범학교를 대상으로 보급하고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AI가 불러올 교육 현장의 변화는 혁신이 될 것이 분명하다. 완벽에 가까운 자기주도적 학습이 구현될 것이며 동일 시간 내 여러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학습 진단, 교수, 분석, 환류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적 목적을 경도한 교육이 되지 않도록 정교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영어교사를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

영어교육의 목표는 학습자들의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위해서는 언어적 정확성과 유창성 모두를 필요로 한다. 영어 교사는 언어적 정확성과 유창성을 길러주기 위해 수업 중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대화에 참여하는데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교실 상황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수업이 시작되며 선생님이 어제 겪은 일을 이야기 한 뒤)

김 교사: Min-ho, Would you tell me what you did yesterday?

민호: (머뭇거리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김 교사: (밝게 웃으며) Oh. I’m great. Thank you. (느린 속도로 또박또박) What did you do yesterday?

민호: (한국어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김 교사: 예를 들자면, ‘I went to the library’, ‘I played with my friend’,...

민호: 아! Chicken! I eat Chicken.

김 교사: Oh! You (강조하며) ‘ate’ chicken yesterday. Good job Min-ho!

영어교사는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는데 조금 더 쉬운 문장(단문)으로 바꾸며 속도 같은 반언어적인 요소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또 필요한 경우 학습자 수준에 맞게 한국어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문법적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정해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했다.

교사는 학생의 문법적 오류를 수정하고 과거형 시제표현을 알려주었지만 표면적으로는 학생과의 만남에서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친교적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적 상황(Autentic situation)속에서 자연스럽게 담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EFL학습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현재의 AI가 위의 영어교사 만큼 다양한 언어 교수 전략을 사용하며 학습자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AI기술과 자연어 처리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가능하겠지만 현재로써는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물론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문법적 오류나 발음을 교정하는 정도의 교육으로 이용되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형태의 교육을 AI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오래전 교육공학자들은 Computer Assisted Learning을 통해 정해진 알고리즘과 데이터에 의해 학습자의 수준과 요구에 맞춘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고안해냈다. 학습자 주도성과 인터랙티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제한적 형태의 AI교육’은 Computer Assisted Learning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데이터의 축적을 통한 학습화와 정교화는 AI기반 영어교육의 가장 큰 특장점이라 하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빅데이터를 축적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의 문제, 축적된 데이터에 의존해야만 하며 의외의 반응에 적절히 응답하지 못하는 문제, 영어 욕설 등 악성 데이터로부터 AI가 잘못 학습하게 될 수 있는 문제 등 딥러닝 기술의 태생적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08년,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렌지를 오륀지로 발음해야 한다는 말을 남겨 논란을 낳았다.
지난 2008년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렌지를 오륀지로 발음해야 한다는 말을 남겨 논란을 낳았다.

어쩐지 ‘오륀지’ 영어교육이 생각나는 이유

지난 4일자 에듀인뉴스의 <"영어 선생님은 AI"...내년부터 초등 영어 말하기 학습프로그램 도입> 뉴스를 읽으며 어쩐지 MB정부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경숙 위원장의 ‘오렌지가 아니라 오륀지로 발음해야 한다’는 발언이 떠올랐다.

초등 영어 말하기 학습프로그램에 AI를 어떻게 도입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인공지능이 발음과 문법적 오류를 수정해주는 기능이 핵심이라는 기사의 내용은 아쉬움이 남는다.

영어 발음과 표현방식은 국가마다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이라 하더라도 인종과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오륀지’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발음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 뿐 아니라, 영어교육의 정책방향이 영어 의사소통능력 보다 전형적인 미국 동부의 백인스러운 발음을 조형하는 데 초점을 둔 것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당장 언어설정을 미국(영어)로 설정하고 구글 어시스턴트나 아이폰의 시리를 호출하고 영어로 질문해보라. 우리의 한국식 영어 발음 중 일부를 듣지 못하는 오류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몰려오는 민망함은 질문한 자의 몫일뿐이다.

혹자는 제대로 발음하기 위해 여러 번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음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화는 의미구성의 과정이고 사소한 오류나 발음의 부정확성은 교정하며 들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앞서 김 교사처럼 의미 있고 맥락적인 담화 상황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어학습을 해야 한다는 점인데 학생들이 정확히 발음하기도 어려운 ‘ㅇㅓㅗ륀지(Orange)’, ‘ㅍ후렌ㄷ즐리(Friendly)’ 연습이 영어 말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진 않을까 우려된다.

차라리 ‘읽기’ 영역에서 학생이 학습했거나 궁금해 하는 단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예문을 만들어 보여주거나, ‘쓰기’ 영역에서 문법적으로 교정된 더 좋은 문장을 추천해주거나 다음에 쓸 단어의 예시를 보여주는 방식에 적용된다면 좋을 것이다.

정작 인공지능이 필요한 영역은

개인적으로 인공지능에 의한 교육혁신은 영어 발음 교정이 아니라 학습자에 대한 데이터 축적과 수준별 학습 지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실에서 다양한 수준의 다인수 학습자를 동시에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니,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업계(?) 관계자라면 모두가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매 학기마다 나이스에 수행평가 결과를 입력하지만 학년이 바뀌면 리셋된다. 도대체 왜 이런 평가를 하고 있는가 자괴감이 들고 한심한 생각이 든다.

AI기반의 학습자 관리 플랫폼에서라면 학습자의 학습 이력과 평가결과가 축적되고 통계적 기법을 통해 정확한 학습 수준과 결손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AI는 부진학생이 일정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학습 자료를 제공한다. 학부모에게는 학생의 도달정도를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교사는 학급 전체의 학습 성취도를 분석해 교수학습 전략을 수정하거나 보충학습을 실시할 수 있다. 정작 AI가 도입되어야 하는 곳은 학생들의 성적과 각종 데이터를 입력해야 할 나이스 시스템이다.

인공지능 교육이 정착되기 위한 과제는

지금의 AI를 이용한 교육이 걸음마 단계라면 가까운 미래에는 더 능동적이며 효율적인 AI선생님이 등장할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공지능 교육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윤리적’ 측면에서 AI와 학생이 만나는 장면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AI리터러시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아래는 역사 공부를 하는 학생을 가정해 방금 전 내가 직접 대화한 내용이다.

구글 어시스턴트에게 위안부에 대해 묻자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사진=이성철 교사)
구글 어시스턴트에게 위안부에 대해 묻자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사진=이성철 교사)

나: 위안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AI: 어떻게 하면 더 신날까 늘 고민이죠. 마음대로 고르세요. 공짜입니다.

위와 같은 충격적인 대답이 제시된 까닭이 무엇일까?

‘위안부’라는 용어에 대한 텍스트마이닝 오류이거나, 빅데이터의 ‘위안부’에 대한 정보가 극우주의자들의 용어들과 레퍼런스 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그럭저럭 들어맞는 아무 말이나 제시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학습 상황에서 이런 응답이 제시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참고로 ‘성노예’라는 표현으로 질문했을 때는 건조한 온라인 검색 결과만 제시헸다.

AI는 일부 대답하기 어려운 정치적, 외교적, 역사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온라인의 검색결과로 제시하며 빠져나가는 영민함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음은 ‘난민’ 문제에 대해 ‘구글 어시스턴트’와 대화한 내용이다.

나: 우리나라가 난민을 더 받아도 될까?

AI: (온라인 검색자료 제시) 첫번째 자료 <이들이 과연 난민인가?>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즈, 두번째 자료 <한국 난민법 5년전 시행...> 한겨레

첫번째로 제시된 자료는 정체가 불분명한 언론사인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즈의 뉴스로 한겨레의 분석기사보다 앞선다.

그런데 해당 정보를 읽어보면, ‘난민의 입국은 인권주의자들의 감상주의다’ 등 상당히 극우주의적이고 편향된 논조의 뉴스, 아니 뉴스라고 하기엔 저널리즘의 기본조차 갖추지 않은 논설이었다.

물론 난민 문제에 대해 다소 허용적 입장인 한겨레의 뉴스를 두 번째로 추천하긴 했지만, 홈페이지에 언론사 발행 정보조차 없는 곳의 자료를 우선 추천했다는 사실은 매우 경악스럽다.

교실에서 AI를 이용해 수업하는데 위에 나온 위안부 대화나 신뢰성이 떨어지는 정보가 마구 쏟아지는 상황을 떠올리니 아찔하기만 하다. 지금 현재로서는 AI비서나 스피커 활용 시 의견이나 논쟁적 사안보다는 단순 지식이나 사실에 대해서만 물어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이 역시 믿을만한지는 의문이다.

물론 AI기술이 발달하고,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반영된다면 위와 같은 과도기적 문제는 해결되고 후속세대의 AI가 교사만큼이나 학생의 사고력을 자극할 질문이나 자료를 던져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AI가 제시하는 정보가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따져보는 비판적 교육이 필요하다. AI역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학습한 결과를 내놓는 ‘구성된’ 알고리즘에 불과하다. AI가 어떤 데이터를 수집했는지, 추천하거나 제시한 정보에 문제가 없는지 따져볼 수 있는 비판적 사고능력이 미래 학습자에게 요구될 것이다.

또 거대한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어떻게 디지털 미디어와 정보를 추천하는가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개인의 신념을 고착화하고 극단화 시키게 될지 모르는 필터버블(Filter Bubble)현상 등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AI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을 것이며, 교사들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마지막까지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의심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의 인간다운 권한이다.

이성철 부산 주감초등학교 교사
이성철 부산 주감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