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세한대 초빙교수, 전 함평교육장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의 차이 : 교육내용, 수업방법, 평가 측면에서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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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의 교사가 아닌 교수입니다. 대학교수와 초·중·고 교사는 다릅니다. 이제까지 교사들은 여러분을 지도하시면서 배운 것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는 보충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교수는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에게 공부하도록 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닙니다. 대학에서 학습은 여러분 자신의 책임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지식의 샘으로 안내할 뿐 많이 마시든지 약간 목만 축이든지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그러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고, 학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한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교수들은 학생들의 학력 결과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학생들이 낙제를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학생의 책임입니다.”

[에듀인뉴스] 초·중등 교사와 대학 교수 간 차이를 표현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로, 미국 휴스턴대 철학과 교수이며 작가인 케이스 파슨즈(Keith M. Parsons)의 말이다.

그가 담당하는 철학 강의 첫 시간에 안내하는 내용으로 ‘신입생들이 알아야 할 대학(Message to My Freshman Students)’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 허핑턴포스트(The Huffington Post)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 내용이기도 하다.

파슨즈 교수는 학생들에게 대학 공부에서 학생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초·중·고 시기에는 학생 못지않게 교사의 지도 노력, 평가를 통한 확인 그리고 학업성취 결과에 대한 교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은 분명 차이가 많다.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넘어 고등학교까지는 거의 100퍼센트 학생들이 진학하지만, 대학 진학은 선택적이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려면 입시를 거쳐 수학능력을 인정받아야 하고, 거액의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

교육내용 면에서 초·중등교육은 미래 성인사회 생활에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지식을 교육과정과 교과목으로 체계화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제시하지만 대학교육에서는 개별 학생의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전공과정과 그에 따른 교과목을 선택하여 수업을 받는다.

학습의 결과에 대해서는 파슨즈 교수가 강조한 바와 같이 대학에서는 학생 자신에게 책임이 있고, 초·중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최고 수준의 학력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 즉 기초·기본학력 정도는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교사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교사를 지원하는 학교, 교육청 나아가 국가가 일정 수준에 해당하는 기초·기본학력 보장의 책임을 교사들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성인교육 방식인 자기주도 학습을 초·중등교육에 적용하기는 무리

교육내용 결정과 교육결과에 대한 책임이 초·중등학교에서는 교사에게 있으며, 대학에서는 학생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은 성인교육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말콤 노울즈(Malcom S. Knowles)가 반세기 전인 1968년에 발표한 논문 ‘아동교육학에서 성인교육학으로’(Andragogy, not pedagogy)와 1970년에 발간한 저서 ‘현대 성인교육: 성인교육학과 아동교육학 비교’(The modern practice of adult education: Andragogy versus pedagogy)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미래의 사회생활에 필요하다고 인정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교과지식을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아동·청소년 대상의 전통적인 학교교육 방식이 기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진 성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성인교육에서는 교육내용을 교사가 결정하기보다는 학습자가 선택하고,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기보다 학습을 지원해 주는 멘토가 되어야 하며, 학습방법도 교사의 설명식보다는 학습자의 기존 지식과 경험을 활용한 토론 등 참여식이 바람직하고, 나아가 교육결과에 대해서도 교사가 아닌 학습자 자신이 평가하여 학습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노울즈는 성인교육학의 실천원리로 자기주도 학습을 들고 있다. 그가 1975년에 발간한 저서 ‘자기주도 학습: 학습자와 교수자를 위한 가이드’(Self-directed learning: A guide for learners and teachers)에서 자기주도 학습(self-directed learning)을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교육의 실천원리인 교사주도 학습(teacher-directed learning)과 대비시켜 정리했다.

이 책에서 그는 경험이 풍부한 성인일지라도 기초·기본 지식이 부족할 경우나 학습할 내용에 대해 생소한 경우에 교사주도의 설명식 학습이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마찬가지 논리로 초·중등학생일지라도 충분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면 토론이나 프로젝트 등 참여식 학습이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더 구체적으로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역량의 조건 9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자신이 독자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확신 ▲학습이 필요한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 ▲교사를 촉진자 또는 컨설턴트로 여기면서 그들을 인적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학습목표 달성 여부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 등이다.

최근 대학과 성인교육기관에서 적용될 수 있는 자기주도 학습 방법들이 학생중심 수업이나 배움중심 수업의 명칭으로 기초와 기본학력을 확립해야 할 단계인 초·중·고교에 무비판적으로 도입되고 있어 그 적용 과정과 효과에 의문이 든다.

지식이 힘이라고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학교 지식은 쓸모없고 대신 미래 핵심 역량이 중요하다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그리고 스스로 배우면서 실제 생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21세기 사회에 대비하여 학교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는 교사가 가르치지 말고 학생이 자기주도적으로 토의와 토론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고증학생들이, 심지어 어린 초등학생들일지라도 충분한 기본지식을 갖춘 대학생들이나 성인들처럼 수준 높은 토론을 하면서 배워야 할 지식을 제대로 배울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교육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초·중등학교 학생들의 기초·기본학력 실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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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력 보장 체제 구축과 교사의 수업 주도성 살리기

초·중등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임져야 할 필수 지식인 기초·기본학력을 우리의 학교에서는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수업 중에 교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교과서를 읽어도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의 학년에서 배워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그들을 평가하고 확인해 책임지고 보충해 주어야 하는 의무를 포기해 버리는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

최근 기초·기본학력 저하의 증거는 국내외 통계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6년 11월 29일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에서 발표한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2학년 대상의 TIMSS 2015 결과에서 수학과 과학 성취도 국제 순위는 약간 하락했고, 기초수준 미달 학생 비율은 약간 높아졌다.

곧바로 2016년 12월 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PISA 2015 결과에서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만 15세 학생들의 국어, 수학, 과학 성취도 국제 순위는 급격하게 추락했고, 기초수준 미달 학생 비율은 대폭 증가했다.

발표 예정일인 2018년 11월 30일보다 4개월이나 늦춰 지난 3월 28일 발표한 2018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추이와 마찬가지로 대폭 증가하였다.

지속적인 기초학력 부진학생 증가 현상에 대해 정부에서는 심각하게 대처하는 분위기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발표 시기를 4개월이나 늦춘 이유를 기초학력 증진 대책 수립과 동시에 발표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것에서 그 심각성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가 밝힌 구체적인 대책은 기초학력 진단 및 평가 체제 구축, 기초학력보장법 제정 등이다. 일제고사 유형으로 흐르기 쉬운 초1~고1까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진단고사 실시와 각 교육청·학교·교사에게 법적 부담을 주는 기초학력 보장법 제정에 대한 대상 집단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대책의 수용 여부 등에 논란이 있지만 교육부는 계속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책에 있어 이전에 강조했던 역량중심 교육을 강화한다거나 토론·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수업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특이하다고 여겨진다.

기초학력 부진으로 수업에서 소외되고 있는 수많은 불쌍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평생교육 시대에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교육에 적용될 수 있는 교육내용과 수업방법 그리고 평가방식이 보다 최신의 이론으로, 보다 멋진 표현으로 보일지라도 초·중등학생들에게 적합한 교육내용과 수업 그리고 평가 방식에 충실해야 한다.

국가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목, 교사 주도의 수업, 전문가인 교사의 다양한 평가 방식 적용에 내실을 기해야 한다.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교바사)와 함께 합니다.

김승호 세한대 초빙교수, 전 함평교육장
김승호 세한대 초빙교수, 전 함평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