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진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연구위원

정국진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연구위원
정국진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연구위원

[에듀인뉴스] 전북 상산고를 시작으로 재지정 탈락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평가한 ‘1기 자사고’ 24개교 중 11개교가 재지정에서 탈락하면서 자사고 설립 취지인 ‘수월성 교육’1)을 포기할 것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 수월성 교육은 ‘귀족교육’, 영재교육이나 엘리트 교육과는 다른 개념이다. 평준화의 틀을 유지하되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의 잠재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도 보편성 교육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정부가 ‘자사고 죽이기’를 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재지정에서 통과한 13개교가 있다. 정부의 대선 공약 이행은 자사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립고로의 전환을 단계적으로 유도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없애는 것과 ‘단계적 전환 유도’는 다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취지에 충실하지 못한 자사고는 정리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번 재지정 심사에서 여전히 자사고로 남은 학교들에게 비결이 달리 있을 리 없다. 자사고의 설립 취지에 충실했던 것 말고는 말이다.

정부가 자사고를 없앤다는 것이 우선적 정책 목표였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자사고 재지정 기준 점수를 일괄 상향 조정하면 될 일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도리어 박근혜 정부 때를 보자. 기준 점수를 낮췄다. 어느 고등학교든 쉽게 받을 수 있는 60점으로 말이다. 이 하향조정이야말로 자사고를 수월성 교육이라는 본래의 목표 대신 ‘귀족학교화’를 유도하는 것, 진정한 ‘자사고 죽이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반발은 확실히 과열되어 있다. 학교가 폐교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그저 자사고는 일반 사립고로 전환될 뿐이다. 그리고 일반 사립고로서도 일정한 틀 내에서 학교의 자율성은 여전히 보장된다.

억울해 하는 상산고..."김승환의 선택은 전북도민의 선택"

반드시 자사고 이어야만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사고 재지정 탈락은 쉽게 말하면 ‘귀족학교화’된 자사고를 일반계 사립고로 전환해 귀족 색깔을 빼겠다는 것이다. 탈락한 학교 측은 반발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월성 교육보다는 귀족학교 교육을 한 것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

다만 상산고는 유독 억울함을 표현하고 있다. 박한 점수를 받은 ‘사회통합전형 지표’는 의무 아닌 권고사항일 뿐이라고 말한다. 재지정 기준 점수를 타 시도 교육청보다 10점 높이 설정한 것에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랬는데도 불과 0.39점 미달한 79.61점으로 탈락했으니 안타까울 만도 하다. 5년 전 평가에서는 80.8점을 받았으니 그때와 비교해 점수가 크게 하락한 것도 아니었다.

김승환 교육감.(사진=sbs 캡처)
김승환 교육감.(사진=sbs 캡처)

결국 여론의 화살은 김승환 전북교육감으로 향했다. 재지정 기준 점수를 홀로 높여 잡은 것도, 권고안이었던 사회통합전형 충원율 10%를 기준으로 평가지표를 삼으려 했던 것도 김 교육감이었다.

하지만 김 교육감의 결정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다. 김 교육감은 작년 지방선거 당선을 통해 12년 재임 3선 교육감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2010년부터 그는 3번의 선거 때마다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자사고 탈락자를 도내 평준화 일반고교로 재배정해서 두 번의 입학 기회를 주는 것은 특혜라고까지 했다. 그를 선택한 전북도민이 그의 자사고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몰랐을 리 없다.

그나마 사회통합전형 평가지표는 5년 중 마지막 한 해만 10%, 나머지 4년간은 3%를 기준점으로 평가위원회에서 완화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니 이번 상산고 재지정 탈락은 전북도민의 선택으로 존중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청문 절차를 거친 뒤 교육부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어 뒤집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여전히 높은 자사고 폐지 여론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자사고를 ‘귀족학교’로 인식하고 그 시정을 바라고 있다. 2017년 6월 CBS-리얼미터 조사는 자사고 폐지에 절반 넘는 국민들이 찬성했음을 보여준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작년 8~9월 전국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에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3배 높았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 나온 여론조사 결과도 같은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 KBS-한국리서치의 6월말 조사는 자사고 확대·유지 또는 축소·폐지 여론이 각각 37%와 52%로 나왔다.

CBS-한국리서치의 7월초 조사는 자사고가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물었는데 결과는 그렇다 25%, 아니다 59%로 나온 것이다.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도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응답이 42.3%를 차지했다.(2017년 조사) 자사고에 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는 이유다.

정부는 2020년 이후 의견 수렴 및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자사고를 비롯한 교육 제도 전반을 확정할 예정이다. 중장기 교육계획을 설계할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도 예정돼 있다.

국민 모두의 관심사이자 흔히 ‘백년지대계’로 표현되면서도 조변석개(朝變夕改)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 교육 정책이다. 4차 산업혁명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바뀐 시대상에 걸맞게 ‘완전히 새로운 교육 정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자사고 재지정 논란을 기회로 삼자

‘국가교육위원회’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새로운 교육 정책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때 자사고 역시 그 운명이 어떤 형태로든 결정될 것이다. 국민 여론과 교원들의 입장이 썩 우호적이지 않긴 하다. 말 그대로 국민에 의해서 자사고 제도는 그 운명을 다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 자사고의 역할이 중요하다. ‘귀족학교’인지 ‘수월성 교육의 산실’인지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한다. 이번에 통과한 13개교와 내년 이후 재지정 평가를 받는 17개교에게 자사고 제도의 향후 운명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