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주·경기 등서 같은 문제 출제..."문제집은 안 되고, 교과서는 되고"
교사들 "교과서 등 전재 금지 규정 없어도 비윤리적, 비합리적 처사"
문제 유출도 결국 입시 때문..."절대평가 도입, 수능 정시 폐지해야"

각 교육청은 학업성적관리지침을 통해 시험 출제에 대한 지침을 규정하고 있다.(경기도, 경북 제외)
각 교육청은 학업성적관리지침을 통해 시험 출제에 대한 지침을 규정하고 있다.(경기도, 경북 제외)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성적 상위권 학생에게만 출제 예상 문제를 알려 준 의혹에 휩싸인 광주 A고교에서는 지난 8일부터 특별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고에서는 지난 4월 중간고사 수학시험 21개 문항 중 18개가 EBS 수능교재 그대로 출제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에듀인뉴스> 취재 결과 경기도 B고교에서는 수학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똑같이 시험에 출제하고, 학생들에게 사전에 문제 등을 짚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은 교과서 그대로 출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세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시험문제를 사전에 알려주고 그대로 출제했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문제집과 교과서에서 같은 문제가 나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교과서에서 같은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일까.

각 시도교육청은 시험 출제와 관련한 내용을 학업성적지침으로 관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홈페이지에서 학업성적관리지침을 확인한 결과 서울과 인천, 대전, 대구, 울산, 부산, 광주, 세종, 강원, 충북, 충남, 경남, 전북, 전남, 제주도의 경우 시판되는 참고서 등의 문제 전재 또는 일부 변경과 전년도 출제 문제 그대로 출제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와 경북은 문항의 유형 및 형태는 단위학교 교과협의회에서 결정하고 학업성적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학교장의 결재로 마무리하도록 되어 있어 출제와 관리에 대한 권한과 감독은 단위학교에 있다.

경기도교육청 강동호 장학사는 “학교의 교과협의회, 시험출제위원회의 등 동의가 있으면 교과서 등에서 같은 문제가 출제돼도 문제 없다”며 "시험 출제와 관련한 사항은 학교의 권한과 책임"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같은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교사들은 '비윤리적 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이혁규 군포고 교사는 “교과서든 문제지든 똑같은 문제를 그대로 시험에 출제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평가는 단순 암기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닌 사고력과 응용력, 융합력 등을 보는 것”이라며 “지필평가라고 해서 똑같은 문제를 내는 것은 평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미라 경기 늘푸른고 교사 역시 “사범대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시험 문제를 똑같이 내지 말라는 것”이라며 “대부분 교사가 안 된다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문제를 사전에 짚어주는 것은 대상이 일부 학생이든 전체 학생이든 그 자체로 문제”라며 “교사의 기본적인 직업윤리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성윤 대구 심인중고 교사는 “지필평가의 경우 지침이 없다고 똑같이 문제를 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평가의 공정성, 변별력 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변별력 없는 문제를 낸 것 자체가 평가의 기본 요소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교육청에서 '시험 출제 시 금지 시항'을 지침으로 제공하는 것에는 의견이 갈렸다.

이혁규 교사는 “수포자가 생기더라도 난이도를 낮춰줘야지 같은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안 된다”며 “관할청 차원에서 '교과서 등과 같은 문제 출제는 안 된다' 등 개괄적 지침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사의 출제 및 평가 등이 포함된 교육과정 자율권은 필요하다"면서도 "그 자율권은 어디까지나 국가 교육과정 테두리 안에서의 자율이지 전체의 틀을 움직이는 자율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성윤 교사는 추가적인 지침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국가주도식 입시정책을 따라온 교육청의 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 교사는 “지침이 없어서 안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묵인해 온 일부 교육청의 잘못이 크다”며 “새로운 지침을 만들기 보다는 현재 있는 지침에 대한 현장 적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문제는 입시제도에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현행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1등급 학생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 성적과 관련한 부정이 일어날 개연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

정성윤 교사는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와 교과교실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며 “현행 9등급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수능과 학생부교과전형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미라 교사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도 “대학입시는 대학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 교사는 “고교에서는 졸업 자격 여부만 따지고 대학별 고사 형식 등으로 대학이 입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학이 입시를 스스로 책임져야 고교교육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또 “이 같은 사건은 한 두명 교사의 일탈로 생긴 문제"라며 "대부분 교사들은 출제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전체 교사를 매도하지 않아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