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비영리활동가, 글로벌청년재단 준비위원장

상생과 공존의 길, 노자의 도덕경에서 배워라

[에듀인뉴스-명교학숙 공동기획] 학생들의 인성교육 방향 정립을 위해 고전(古典)을 활용한 교육이 떠오르고 있다. ‘명교학숙’은 이러한 교육계의 움직임을 리드하는 초·중등교사 연구모임으로 동·서양 인문고전을 탐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명교학숙과 함께 고전을 통해 우리 교육 현실을 조명하고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노자(老子)의 도덕경( 道德經)을 추천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읽어야 할 책이라기보다 늘 가까운 곳에 두고 수시로 봐야 할 삶의 지침서로 삼았으면 하는 책이다.

중국 고대의 사상가이며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중기부터 넓은 영토와 강력한 군대를 지닌 강국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패자(覇者)라 했다.

제(齊)의 환공(桓公), 진(晉)의 문공(文公), 초(楚)의 장왕(莊王), 오(吳)의 합려(闔閭), 월(越)의 구천(勾踐) 등 춘추 5패 중 하나인 초나라에서 노자가 태어났지만 출생과 사망 시기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BC 770년 주 왕조가 뤄양(洛陽)으로 천도하기 이전의 시대를 서주시대라고 하고, 그 이후를 동주시대라고라고 하는데, 이는 춘추(春秋) 시대와 전국(戰國) 시대로 나눠진다.

노자의 도덕경 제작 시기는 기원전 4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약 5,000자, 81장으로 되어 있으며, 상편 37장의 내용을 도경(道經), 하편 44장의 내용을 덕경(德經)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하늘과 인간, 천자와 제후,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 구도가 서서히 무너져서 새로운 질서 체제의 건립이 시도된다. 그 논의의 중심 주제는 구질서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를 정립할 것인지가 화두였다.

노자는 새로운 질서를 정립에 있어서 공자나 묵자처럼 인위적으로 형성된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통일시키는 통치 방식을 경계했다. 이는 이데올로기가 만든 기준이 사회를 억압하거나 차별화하게 되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도덕경 제2장에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그 자체가 추함이 있다는 뜻이다.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좋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대목에서 숨어있다.

노자는 도덕경을 통해서 특정한 문화 체계로 통일하는 방식을 버리고 갈등의 요소도 없는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도덕경 전 장에 걸쳐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즉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것을 도(道)라 부르고 이 도를 따르는 것으로 인간 세계의 질서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이는 추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알면 이는 좋지 않다./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해주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뤄주며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 이것이 세계의 항상 그러한 모습이다./

자연의 이런 원칙을 본받아 성인은 무위하는 일을 하며, 불언의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자신이 시작하도록 했다고 하지 않고, 잘 살게 해주고도/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되 그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룬 공 위에 자리 잡지 않는다.

天下皆知 美之爲美

皆知 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 無爲之事

行 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 도덕경 2장에서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노자의 도덕경이 나온 지 약 2400년이 지난 2019년 지금의 시대 대한민국은 모습은 어떤가?

상생과 공존, 협치와 협력을 겉으로는 외치면서 자신들만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면서 분열과 갈등이 오히려 증폭되고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치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권력의 주체만 다를 뿐, 자신의 정치이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분별하고 구분지어 무자비한 폭압의 시대는 여전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혹은 권력을 빼기 위한 암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싸움은 정치에만 머물지 않고 경제, 문화, 역사, 교육 등 모든 영역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그런 폭주를 막을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가. 이를 일시적으로나마 멈출 단초(端初)가 노자의 도덕경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적어도 교육문제에서부터라고 상생과 공존의 틀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특정 이념과 목표에만 경도되지 않은 협치와 협력을 통해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길 소망해 본다.

최진식 교수는 노자 강의에서 '공부하는 내가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내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하고, 이 기본적인 자세를 노자는 자율이라고 했다'고 소개한다. 남에게 들은 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신의 길을 잃고 삶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공부를 멈추고 생각을 시작해야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너무 규정된 생각과 가치, 이념에 경도되지 말하는 충고이기도 하다.

각자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유희하는 주체적 삶을 존중할 때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 것이며 자유로워질 것이며 평등해지는 것이다. 극단의 시대, 대결의 시대, 협오의 시대에서는 자유도 평화도 평등도 신기루처럼 살아지고 만다.

일시적으로 승자의 축배는 들지 모르지만 역사는 반복되듯 새로운 승자에 의해 제압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제 포장되어 대량생산된 이념만 다시 강요받은 개인의 주체적 삶이 살아진 시대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른 어리석은 일들을 끊어내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시대다. 포용국가 라는 추상적인 구호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 선언과 맞는 명확한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 편만 포용하는 시대를 청산하고 모두가 함께하는 진정한 포용을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그래야 자유와 평등, 평화가 공존하고 상생하면서 모두가 자신이 가진 고유의 역량을 발휘하는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래야 언제나 낮은 대로 흐르는 물처럼 만물을 모두 포용하는 시대가 열린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낮은 데를 찾아가 사는 자세, 심연을 닮은 마음, 사람됨을 갖춘 사귐, 믿음직한 말, 정의로운 다스림, 힘을 다한 섬김, 때를 가린 움직임./

겨루는 일이 없으니 나무람받을 일도 없습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 노자의 도덕경 8장에서

이 시대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한가지는 특정 이념과 가치로 구분된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과 방식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가 누구든 우리 사회는 이를 포용하고 지원하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관하는 과도한 경쟁을 걷어 내야 하며,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강요하는 교육시스템의 폭주를 당장 멈춰야 한다.

틀에 갇힌 교육시스템, 특정 이념과 기득권만을 위한 교육실험은 폐기되어야 한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할 우리 학생들을 더 이상 실험실 속의 개구리처럼 만들어 서는 안된다.

자신만의 가치와 생각,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무한한 자유를 선물해야 한다. 낡은 교육시스템, 공장같은 학교와 교실, 지나친 경쟁과 학벌사회만 지향하는 입시제도에서 해방시켜야한다.

미시적인 교육논쟁이나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유무상생(有無相生)하는 관점으로 교육체제를 전환해야 한다. 일반고, 특목고, 자사고로 구분 짓는 논쟁이 아닌, 입시를 위한 점수 따는 방법과 방식의 논쟁이 아닌, 가르치고 기르는 근본적인 문제,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선생님의 고민과 생각에 다가설 수 있는 교육체제를 만들 수 있는 일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학교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를 옭아매는 과도한 규제정책을 과감히 철폐하고 신나는 오늘과 내일의 꿈이 쌓여 행복한 미래가 열리는 교육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리기 위해서는 교육의 본질은 뒷전이고 힘의 논리로 정치의 논리로 이념의 논리로 대립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물처럼 겨루는 일이 없이 함께 상생해 흘러가야 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이는 단순하고 명쾌한 원리를 알면서도 문제는 이를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욕망과 사욕을 공공적 가치나 대의로 포장해서 모두에게 강요한다. 자기 안에 꽉 차 있는 욕심을 모두에게 발산한다. 자신의 잘못을 살피거나 인정해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더 힘을 빼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더 가까이하며, 그 속에서 상생하고 협치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아무 쓸 때 없는 대결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모두에게 주체적인 삶을 선물하는 상생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교육이 그 선두에 서길 바란다. 교육 지도자가 그렇게하기 위해서 먼저 자기비움을 실천해야 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그게 지도자가 취할 최고의 덕목이고 구분과 분별이 없는 무위의 삶, 자연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두가 주체적 삶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늘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에 대해 늘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매사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변화에 깨어 있는 사람이 나는 좋다. 바람을 느끼고 비 내리는 날에 우수에 젖기도 하고 별 보기에 설렘이 있는 사람이 좋다. 일에 관한 이야기보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에 감동 받는 그런 사람이 좋다.

주체적인 삶은 곧 자기다운 삶이다. 일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일에 익숙해지는 것은 자기다움을 내려놓은 일이다. 똑같은 일도 창조적일 수 있고, 주체적일 수 있다. 이는 얼마나 일을 자기답게 내재화하는 것에 달려 있다. 얼마나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는냐에 죄우된다. 매일 일어나는 일을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결론을 내리면 얼마나 슬프지 않나.

- 마음을 깨우는 생각 여행 <생각쉼표> 중에서

모든 일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답을 찾는데 너무 시간 낭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정답도 일종에 규정짓는 일이다. 어떤 틀에 가두는 일이다. 모두에게 하나의 기준을 강요하는 일이다.

우리 교육은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하는 정책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일방적으로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고, 교사들에게 그 일을 강요해 왔다. 그러는 사이에 학생과 교사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은 박탈되고 어느새 규격화된 교실에서 죽은 교육을 끊임없이 반복해 오고 있다. 족쇄로 길들어진 코끼리처럼 주체적인 삶을 향해 한치 앞도 못 나가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교육혁신은 제도의 틀을 깨고 학생과 교사가 스스로 주체적 삶을 살아갈 것을 선언하는 일이다.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고 그 주체는 교사이고 학교, 학생, 학부모이다. 늦었지만 일방적인 교육을 강요하는 갈등의 시대, 이념의 시대를 종결시킬 그런 학생과 학부모, 그런 교사와 학교가 나오길 기대한다.

정호영 비영리활동가, 글로벌청년재단 준비위원장
정호영 비영리활동가, 글로벌청년재단 준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