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를 위한 교육과정 개선 방향은?

문서 상 수업 언제까지?..."17주 수업 시수 현실상 불가능"
교육과정 취지 퇴색한 창제 단위 수 감축 필요

일반고 진학 후 취업하고 싶어요...."직업교육과정 일반고 도입해야"
교육과정 다양화와 학습 심화과정 함께 움직여야

[에듀인뉴스] 대학입시와 그에 따른 교과 패권주의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학생이 중심이 되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책임 있게 이수하는 고교학점제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이해하는, 현장을 고려하는, 현장을 움직이게 할 실질적인 교육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정미라 경기 성남 늘푸른고 교사
정미라 경기 성남 늘푸른고 교사

첫째, 수업시수는 현행 17주에서 15, 16주로 감축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많은 문서 업무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수업시수도 문서 업무를 과중하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지 않는 지금도 학기당 전 교과에서 17주 수업을 채우기란 쉽지 않다. 학교 상황에 따라 14주에서 15주 정도 실제 수업이 이루어지고, 부족한 2~3주는 학교에서 수업을 보충하는 시간을 마련하여 운영하든가 문서상으로만 수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문서 상의 수업의 역사는 길고 보편적이다.

두 개 이상의 학교가 협력하는 공동 교육과정 운영의 경우 문서상의 수업은 더 많이 이루어진다. 학교마다 주어진 여건이 다르고 이에 따라 학사운영이 다르기 때문에 수업시수 17주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결국 학교 시간표 담당 교사나 공동교육과정 담당교사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문서상의 수업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담당교사는 가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교육청에 17주 수업시수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고 의견을 제시해도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교육부에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부에서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결국 담당교사는 불편한 마음으로 문서 상 수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문서 상 업무인지 궁금한 지점이다.

실제 이광우 외(2018) 연구에서도 설문조사 대상학교가 고교학점제 연구, 선도학교만이 아닌 578개 학교의 교사 대상이었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지 않은 학교의 교사들도 수업시수 감축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공강 발생, 시험기간 연장, 학교 밖 학점 이수로 학기당 17주의 수업시수를 운영하기란 더 어려워진다고 한다. 즉 문서 상 수업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업시수 감축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할 것이 있다. 현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도 학교마다 상황이 매우 다르다. 학교 사정에 따라서 실제수업이 15주 혹은 16주가 이루어지는 학교가 있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는 전공에 따라 NCS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25주 이상의 수업시수가 이루어지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고교학점제 체제가 되면 교육과정 다양화에 따라 학교 간 여건의 차이가 더 많아진다. 단일한 수업시수 기준으로는 모든 학교의 상황을 맞추기 어렵다.

따라서 모든 학교의 원활한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14주 혹은 15주로 최소 수업시수 기준을 마련하든지 혹은 학교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수업시수를 운영할 수 있도록 수업시수 범위를 설정해주는 법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둘째, 단위 수 증감 지침은 모든 과목이 평등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선택과목의 기본 단위 수를 5단위로 제시하면서 일반선택 과목은 2단위 내에서, 진로선택과목은 3단위 내에서 증감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교가 수능을 준비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기초교과군을 교육과정 지침에서 정한 50% 초과 금지 규정의 최대치인 50%까지 편제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 6단위를 제외한 국어, 영어, 수학 단위 수는 180단위 중 84단위로 편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많은 경우 1학년에서 3학년까지 국어, 영어, 수학은 주로 5단위 이상의 필수과목으로 선정되고, 그 외 과목은 5단위 이하 때로는 학기당 2단위나 1단위로도 편제된다. 즉, 교육과정 단위 수 편제에 있어서도 과목 간 불평등이 만연하다.

또한 대부분 개발된 교과서는 5단위를 기준으로 집필되기 때문에 선택과목의 단위 증감에 따라 2단위부터 8단위까지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서도 감당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현재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중 교육과정 다양화가 잘 반영된 학교의 경우 모든 과목에 대해 학기당 과목 이수단위를 3단위로 운영한다. 학기당 30단위 10개 과목이 운영된다. 즉 교육과정 다양화를 잘 구현하면 과목 간 평등성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 체제가 구축된다하더라도 학교에 따라 교육과정 다양화가 잘 구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교육과정 다양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과목 간 단위 수를 캐나다, 미국과 같이 동일하게 설정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경우는 1학점을 110시간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1학점은 주당 1시간 수업이고, 모든 과목은 한 학기당 5학점으로 일주일에 5시간 수업을 운영한다. 즉, 모든 과목을 평등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한다. 따라서 과목의 중요성은 국가나 사회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교과서 개발과 연계에서도 단위수를 일정하게 맞추어 주는 것이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에 적합하다.

셋째, 창의적체험활동(창체)의 단위수를 감축해야 한다.

현재 창체는 총 24단위로 학기당 4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으로 운영되는데 자율활동은 자치·적응활동, 창의주제활동으로, 동아리활동은 예술·체육활동, 학술문화활동, 실습노작활동, 청소년단체활동 등으로, 봉사활동은 이웃돕기활동, 환경보호활동, 캠페인활동으로, 진로활동은 자기이해활동, 진로탐색활동, 진로설계활동 등으로 구성한다(2015, 교육부).

창체는 평가가 없고 비교과활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교가 자치적으로 구성하여 운영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많은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취지대로 실시하지 않고 동영상 시청, 감상문 쓰기, 각종 계기교육을 위한 요식행위나 페이퍼 상의 활동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고3의 경우 창체는 비공식적인 자기주도 학습시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원수급을 위한 교사의 수업시수 조절용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도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창체는 조정이 필요하다.

창체의 봉사활동은 개인별 봉사활동을 제외한 학교에서 전체, 혹은 학급별로 수업시간에 이루어지는 봉사활동을 의미한다. 그동안 이 시간은 학교 청소시간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시·도 교육청에서는 학교환경미화활동으로 운영하는 것을 지양하는 지침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실제적으로 학교 학생 전체가 한꺼번에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학급별로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단 봉사활동은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운영하기보다 개인별 봉사활동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진로활동은 1학년의 경우 진로상담교사가 배치되어 주당 10시간의 수업시수를 부여받아 지도하고 있지만, 2, 3학년의 경우는 시수가 부족한 교과 담당교사가 수업을 운영한다. 그러나 진로지도 전문성 부족과 학습자료 개발의 어려움으로 역시 자기주도학습이나 독서활동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구의 경우, 1학기만 진로 교과를 운영하고 있고, 1학년에서 3학년까지 개인별 진로 계획서를 작성하고 상담교사가 컨설팅 하는 형태의 교과 외 활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진로교과는 전학년에 걸쳐 1학기만 운영하고, 자치·적응활동, 창의주제활동으로 운영되는 자율활동도 1학기만 운영한다면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홀동은 주 2단위로 감축해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넷째, 일반고등학교는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추가하여야 한다.

특성화고등학교를 제외하면 일반고등학교, 특수목적 고등학교, 자율형사립고 혹은 자율형공립고의 경우 대학진학만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6조의 31호에 따르면 일반고는 특정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반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고등학교이다. 따라서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도 대학진학을 위한 교육과정만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고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운영하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교육과정에서 소외된다. 그리고 때로는 부적응학생이 된다. 물론 직업교육기관 위탁학생제도가 있긴 하지만 학교와 분리되어 타 기관에 위탁을 가는 형태로만 운영된다. 그리고 현재 일반고등학교에서 특성화고등학교로의 전학이 불가하다.

캐나다의 경우 고등학교 체제는 일반고 한 가지만 존재한다. 그리고 일반고 교육과정은 종합대학 진학, 전문대학 진학, 취업 준비의 세 가지 과정에 따라 교과를 운영한다. 그리고 취업 준비 학생의 경우 학교 밖 전문교육기관이나 지역의 전문대학과 연계하여 직업을 탐색하고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2019, 김성천, 민일홍, 정미라).

일반고에 진학 후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도 존재한다. 따라서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직업 기술능력과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역량을 신장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일반고에 추가로 편성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고교학점제형 교육과정은 다양화와 함께 학습의 심화과정을 반영해야 한다.

즉 교과 내 과목의 위계성을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배움도 중요하지만 배움을 점진적으로 심화해 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현재 2015 개정교육과정은 2009 개정교육과정에 비해 과목의 위계성이 줄어들었다. I, Ⅱ로 제공되는 과목이 아닌 경우 과목의 위계성이 약하고, 실제 학교의 선택에 따라 교육과정에서 여러 학년에 걸쳐 다양하게 편제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경우 영어 과목은 각 학년별로 9학년 영어, 10학년 영어, 11학년 영어, 12학년 영어로 필수과목으로 운영한다. 그리고 그 외 다양한 영어 과목이 존재한다.

즉, 다양한 배움과 배움의 심화과정을 모두 고려하는 교육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도 배움의 심화과정을 고려하여 과목을 개발하고 편제할 필요가 있다.

정미라 경기 성남 늘푸른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