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자사고 폐지는 개인의 탄생과 집단의 진화 파괴
선택의 자유와 다양성 보장하라
‘평등’과 ‘차별 없는’ 교육은 우리를 후퇴 시켜

지난 12일 종영한 JTBC  슈퍼밴드 프로그램.(사진=JTBC)
지난 12일 종영한 JTBC 슈퍼밴드 프로그램.(사진=JTBC)

[에듀인뉴스] TV를 그다지 보지 않지만 최근 가장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슈퍼밴드’ 가히 천재들의 향연이었다.

각자 재주가 출중한 1인 아티스트들이 모여, 출연하는 사람들끼리 밴드를 만들고 자신들의 기량에 타인의 기량을 얹어 소그룹의 기량을 뽐내며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천재성과 예술성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진행 방식은 ‘서바이벌식’이어서 경쟁 끝에 살아남는 팀이 최종 우승을 할 수 있었기에, 팀으로 혹은 개인으로 살고 죽는 그야말로 치열하고도 살벌한 경쟁이 불꽃을 튀겼다.

치열한 경쟁이 심해질수록 그 경쟁을 헤치고 나온 승자들의 스토리는 감동 그 자체였고, 관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실력과 품격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했고 그 프로그램을 격상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시청자들은 다음 회의 경쟁을 기다렸고 종영을 아쉬워했다.

경쟁의 결실은 아름답고 풍성했다. 경쟁이 없는 세상은 없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경쟁', 공정한 사회로 가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관문!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회는 공정해진다. 공정한 경쟁이 사라진다면 선발의 기준은 인맥과 지연과 혈연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자사고를 포함 특목고(이후 자사고로 표기)는 경쟁을 우선 원칙으로 하는 학교인 만큼 자사고의 존립은 결국 치열한 경쟁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모든 사람에게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질 것이며,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에 따라 그 결실을 누릴 수 있는 공정한 장이 열리는 것이다. 공정한 기준을 전제로 한 경쟁에서 사람들은 정의와 페어플레이를 배운다.

‘A 매치’ 세계 경기에서 우승하거나 메달을 따는 선수들에게서 삭막한 인성을 느끼는가? 아니 따뜻한 인성을 위해 일부러 경기에서 져주기라도 해야 할까?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경쟁이 치열하면 인간성이 삭막해지고 인성이 파괴된다는 그릇된 편견을 갖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결과 가장 좋은 제품이 시장에서 선택받고, 그로 인해 소비자의 효용과 편익이 극대화되며 기술은 진화한다. 공정한 기준에 따라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상품일수록 시장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는 상품은 언제나 ‘최고’이다.

이처럼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할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듯, 교육 수요자도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자유를 가지길 바라는 것이 왜 문제란 말인가!

당연히 능력이 있고 우수한 자질을 갖춘 유능한 학생은 더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아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양질인 경쟁의 장을 바랄 것이다.

부모로부터 유리한 접근 경쟁력을 물려받은 사람만이 자사고에 가는 것은 불공평하니 아예 접근을 차단하라?

경제력과 지위가 있는 부모의 자녀라 해서 모두가 자사고를 가지는 않는다. 성급한 일반화로 마치 우리 사회의 경쟁을 통한 공정함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한 주장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상위법 무시로 국민의 기본권(자유권) 침해하지 말라

개인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국민은 누구나 기본권인 이 행복추구권을 지킬 자격이 있다. 이는 분명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다.

그러나 자사고의 폐지로 그런 경쟁의 장을 임의로 박탈하고 아예 없애버린다면 이는 헌법마저 보장하는 개인의 최대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

자사고 폐지, 이것은 명백히 개인의 기본권 침해이다.

학생 개인 선택의 자유를 빼앗고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모델로 주구장창 내세우는 독일과 핀란드를 살펴보자. 독일에서 학부모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의 이야기로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나 모두 치열한 경쟁이 기본이라 했다.

초등 4학년 학생을 같은 선생님이 관찰하고, 대학진학이 가능한 능력의 학생은 김나지움(인문계 중고교과정)으로, 그렇지 않은 학생은 직업학교로 진로를 결정한다고 한다. 물론 학부모은 일체 관여 할 수 없으며, 경쟁에 의해 진로와 진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평등한 공교육의 모델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라인 핀란드의 경우에도 중학교까지는 모든 학교가 평등한 교육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지만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선 경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경쟁이 치열해도 본인이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있어 그러한 학교 선택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마치 핀란드는 선택의 자유가 필요 없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최근 핀란드의 경우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평등한 공교육, 쏟아붓는 듯 퍼주는 국가 지원에도 불구하고, 고용과 사회 정책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많은 젊은이가 노동 시장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청년을 위한 OECD 행동 계획(OECD‘s Action Plan for Youth)‘에서 나온 평가의 일부에 따르면 현재 핀란드 젊은이의 3분의 1이 실업 수당을 받고 있으며 이는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실업 수당은 도리어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핀란드] OECD. 핀란드 대학 입학 기준과 청년 지원을 낮추도록 권고, https://yle.fi/uutiset/osasto/news/oecd_finland_should_revamp_uni_admission_criteria_student_benefits/10770970)

굳이 이런 나라의 시스템도 부러워하며 닮아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자사고의 존립이냐 폐지냐를 결정함에 있어, 자사고를 없애자면서도 자신들의 자녀는 그 학교를 보낸 사람들의 이율배반적 행동이 적절하지 않으니 존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옳지 않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자사고가 일부 파행적 교육과정 운영으로 인해 목적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으니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동일선상에 있는 오류라고 여겨진다.

폐지냐 존립이냐를 결정함에 있어 일부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문제의 논점은 ‘선택의 자유’ 문제이며, 다양성 확보를 위한 ‘기회의 보장’이어야 한다.

‘국가 백년지대계’ 결정을 ‘국민’의 뜻을 물어?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정책을 확정 짓기 위한 절차에 ‘국민의 여론’을 좀 더 수렴하는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정책 결정자의 진술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교육 전문가는 다 필요 없다는 것일까. 어째서 시민들의 여론을 들어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결정하는 교육 문제를 확정 지으려고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발언이었다.

의학, 법률, 정치, 경제 등등 모든 영역에 전문가가 필요하듯 교육에서도 전문가가 판단하고 전문가의 의견이 존중되는 것이 마땅할 텐데 어째서 저런 중차대한 정책을 결정하면서 ‘국민적 정서’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여론을 물어 교육의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일 상대적 박탈감으로 배 아픈 정서를 일상으로 삼는 시민이 자사고 폐지를 결정하는 데 목소리를 크게 높이면 그 목소리대로 국가의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결정이 된다는 것인가.

북한 영재교육의 산실이라 불리는 '평양 제1중학교와 학생들'.(사진=통일부 블로그)
북한 영재교육의 산실이라 불리는 '평양 제1중학교와 학생들'.(사진=통일부 블로그)

‘온 인민이 평등’하다고 부르짖는 북한에서조차도 수월성 교육은 하고 있다. 북한의 과학 영재학교에서 세계수학 올림피아드의 수위를 석권한 학생이 얼마 전 우리나라에 방송에 나와 본인의 재능과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보았다.

어디든 영재는 있고 그러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아이들은 그 재능이 살아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그러한 아이들끼리 모여 더 큰물에서 경쟁하게 해주어야 한다.

평등 지상주의인 북한에서조차도 능력이 있는 탁월한 학생은 따로 뽑아서 그들끼리 교육하고 유학도 보내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조차도 본인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하는 수월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 체제가 존재하는데 자유대한민국에서 개성과 우월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시스템을 억압하고 파괴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것인지!

일반계교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하기 위한 투자를 늘리고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일반계고 학생들의 교육 수준도 하루아침에 향상될 거라 믿는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키가 작은 어린아이의 키를 키우겠다고 틀에 넣어 몸을 잡아당기자는 발상과 다르지 않아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개개인의 능력이 다 다르게 태어나는 학생들을 학교 현장에서 가르쳐 보지 않은 인간들의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발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르게 태어나고 그에 따라 각자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자사고 존립, 이는 개인의 선택 자유 문제이고, 다양성 확보를 위한 기회의 보장 문제이다. 정말 이 중요한 문제를 확정 지으려면 직접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묻거나 교육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혜로운 정부가 되길 바란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