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서울 경기고 교사

⑦ [대입 전형] ‘수능 시험’ 없애고 ‘살맛나는 배움’ 누리게 돕자

​오늘날 교육 기관과 단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에 관련한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 교육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 희망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좀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에듀인뉴스>는 “교육의 뜻을 제대로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 운영 틀이 지닌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서울 경기고 교사)과 함께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김두루한의 배움 혁명’ 연재를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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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학년도 수능 체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눈길’

“(교육부)2018년도에 진행된 대입 공론화 결과에 따라 분모를 최대한 키워 정시모집 선발 인원을 한껏 늘려야 한다.”

“(대학)우수한 학생 선발과 학생 충원이라는 생존의 문제에 비추어 수시모집 선발인원을 늘려야 한다. 정시모집 선발인원을 늘리면 정원을 모두 충원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추가모집을 한다고 해도 많은 대학은 정원 손실을 피하지 못한다.”

“(고등학교)고교학점제, 2015 개정 교육과정, 학생부 성취평가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2025학년도부터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평가가 달라지는데 수능을 유지한다고?”

“(학부모)1993년에 수능이 실시된 뒤로 정부 따라 바뀌는 수능 체제를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하나요?”

“(학생)재수생, 특목고나 서울 강남 같은 지역이 더 유리하고 더욱이 가장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는 2022 수능 체제를 왜 강요하나요? 과연 참다운 대학수학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요?” 

[에듀인뉴스] ‘수능’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 모집, 어떻게 봐야 할까

현행 대입 전형 정시 모집에서는 ‘수능점수 결정론’이 적용된다. 문제는 대학 간 프로그램 경쟁은 없이 이미 수능으로 서열이 매겨진 학생들을 최상위부터 뽑아가게 돼 있는 구조란 점이다. 국립대학인 서울대나 서울 주요 사립대의 경우 대학서열에 따라 우수한 학생들을 수능 성적으로 가를 수 있고 선점하게 된다.

그래서 정작 학생들이 겪는 ‘수능’은 부담이 크다. 교과서 개념을 익히고 적용 학습과 실전 학습으로 이어지는 수능 특강이나 수능 완성의 교재를 꼼꼼히 풀어야 한다. 평소 수업 시간 등에서 다룰 때 학생부 교과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도 이미 출제된 문제나 좀 더 어려운 모의고사를 여러 번 풀며 문제 푸는 요령을 힘써 익힌다. 점수를 올려야 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애쓴다. 

대입 전형 혁신은 수능을 폐지하고 ‘학생부 교과 전형’도 폐지해야

하지만 수능의 본래 취지는 학생이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가를 진단하는 것이 아닌가?

현재의 수능 틀(체제)이 지닌 문제는 학생을 줄 세워 대학에 배치하는 도구로 쓰이며 학생들의 적성이나 특성이 빠진 채로 그들의 창조성을 잠재우는 데 있다.

‘학생들이 수능에 매달리는 한 입시지옥에서 해방될 수 없고, 수능용 학원과외가 있는 한 공교육 정상화는 요원하다’(교육의 틀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영식, 2010) 고 말했듯 줄 세우기 목적의 ‘수능’은 없애야 한다.

한편으로 ‘국가주도 수능’까지 치르고 나서 형식에 치우친 12번째 시험을 치르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고교 재학생들이 1학년에서 3학년 1학기까지 무려 10번의 시험을 치른 결과를 반영한 ‘학생부 수시 교과 전형’이나 ‘학생부 종합의 교과 반영’도 폐지해야 한다.

학생들도 한탕주의 정기고사를 두 달마다 치르면서 참다운 배움을 누릴 수 없으니 절망감에 살기 싫어한다.

왜 21세기 대한민국의 배움 현장에서는 ‘줄 세우기 변별’이란 유혹의 늪에서 언제까지 헤매어야 하나? ‘사교육’이란 또 하나의 학교 교육을 만든 줄 세우기 정기고사와 정시 ‘수능’부터 없애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얼치기’가 된 까닭은? ‘교과 이기주의’

수능은 1987년 암기식 교육을 없애고 사고력을 측정하자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심의회에서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과 유사한 ‘대학적성고사’ 제안이 있었고 1990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정한 뒤 1993년부터 시행했다.

초기에는 탈교과적·통합교과적 문제가 많이 출제됐으나 점차 사회·과학 등의 각 교과 해당 교수나 교사가 자신들 영역 문제가 더 많이 나오도록 정치권과 교육 당국을 압박하는 ‘교과 이기주의’가 횡행했다. 그 결과 학력고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얼치기’로 변했다.

“처음 수능은 대학 공부에 필요한 능력을 알아본다는 취지의 시험이니 언어와 수리 두 영역으로 구성됐다. 교수 말을 알아듣고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니까. 그런데 당장 과학계에서 집단 반발을 했다. 과학 진흥을 외치면서 어떻게 과학을 빼놓느냐는 것이었다. 교육부 장관이 무마하려 했는데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태우 대통령이 한번 넣어 보라고 했다. 그래서 탐구영역이 생겨났다. 그다음에는 사회과목 관련 교사·교수가, 또 영어 분야가 들고 일어났다.”(박도순, 중앙SUNDAY, 2014.11.23)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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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닌 여러 가지 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수능’을 출제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한 달간 합숙하나 실제 문제를 만드는 시간은 일주일이란 점, 교과서의 ‘안’과 ‘밖’ 출제 원칙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은행을 만들기도 어렵다는 점, 영역별 ±10점까지는 통계상 의미 없음에도 점수 차이를 능력의 차이로 여긴다는 점 등이다. 특히 교육방송(EBS) 수능 강의 및 교재와 연계한 것이 지닌 여파가 크다.

실제로 온 나라의 고3 교실에선 ‘교육방송 교재’로 수능 정시를 대비하고 결국 수능의 출제가 영역/과목별 문항 수 기준 70%~50% 수준을 유지하므로 학생들이 교재를 달달 외게 된다.

그래서 12년 초중고교를 거치며 저마다 가장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때임에도 수업과 평가 과정에서 배움 설계는 물론이고 요약하고 비평하기, 발표하기, 배움 나눔 등으로 교실을 혁신하기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필 객관식’ 수능 고사론 대학수학능력의 표현력 기를 수 없다

대입 수능 정시 전형으로 대부분 학생이 참다운 대학수학능력을 기르고 있는가?

학생들은 절반의 ‘대학수학능력’인 이해력에 그치고 표현력을 기를 수 없다. 그나마 국어 듣기는 영어 듣기와 달리 없어진 상태이다.

왜 융합 사고력, 창의력을 말하면서도 국가주의 교육 틀(시스템)을 유지하려 할까? 학교 형태는 물론 학생 입학,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임용 등 교육 전반에 대한 정부의 관리와 통제 아래 고교평준화도 획일화 조장에 그쳤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을 보면, 모두 45개의 문제 중 ‘다음 중 적절한 것은?’ 유형이 17개, ‘다음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유형이 26개였다.

이전 학력고사는 4지 선다형, 수능은 5지 선다형이란 차이가 있을 뿐, 단순 객관식이면서 암기형이라는 비판을 애써 피하려다 보니 꼬고 비튼 문제이고 다섯 개 보기의 유사도에 따라 난이도가 결정되고, 그 미묘한 차이를 가르는 것이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유사 수능인 고등학교 정기고사도 ‘주어진 글’의 어휘나 문장 의미 확인에 얽매여 제 생각이나 의견, 느낌을 나름의 방식으로 답하거나 쓰지 못한다.

2019 수능 국어 31번으로 본 ‘얼치기 대학수학능력’

수능에도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국어 독서 영역에서는 소설과 시나리오 등이 합쳐진 문제와 같이 길고 복잡한 바탕글(지문)이 그렇다. 지난해 문제에선 동서양의 우주론을 다룬 천문학 내용 중 만유인력의 원리를 주제로 한 홀수형 31번 문항(3점)이 그랬다.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한 시민단체는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만유인력을 주제로 한 비슷한 바탕글(지문)을 교육방송 교재에서 다루었으나 핵심 제재만 비슷했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후 “국어 31번과 같은 초고난도 문항 출제는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시행된 2020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에서도 ‘고난도 독서’ 기조는 이어졌다. 6월 평가 국어영역에서 오답률이 높았던 문항 중 과반이 독서 영역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에피쿠로스 사상(인문)’, ‘금융감독 정책(사회)’ 등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수준의 고난도 바탕글(지문)이 출제됐다.

이런 모습은 문제 자체가 얼치기 대학수학능력으로 오도하며 어린 시절 호기심마저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참다운 ‘대학수학능력’을 기르려면 ‘고교수학능력’ 제대로 길러야

1~3등급 학생들을 뺀 4~9등급 학생들은 ‘줄 세우기’의 들러리일 뿐인가? 문제를 풀어낼 수 없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현행 수능을 없애야 한다.

더욱이 피사(PISA)의 과목별 성적 및 흥미도는 왜 반비례일까? ‘지식’보다 ‘문제해결능력’을 필요로 한 21세기 ‘배움의 시대’가 아닌가? 배움 현장에서 몸으로 맘을 다지며 몸소 실천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교과목’보다 저마다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배움거리(주제)로 해야 한다는 깨침이 일어났다.

기초-탐구-교양의 고등학교 과정에서 ‘줄 세우기’와 ‘공부가 일자리 얻는 수단’이란 ‘틀’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국어 독서 영역에서는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 융합 등의 다양한 제재를 다룬다. 이제라도 지속가능한 학생의 배움이 일어나도록 학생의 관심사(주제)를 살려야 한다.

왜 배경지식을 넓히거나 글의 논리 구성, 인과관계 등의 지식 익히기만 강조하며 수학능력시험에 얽매여야 하는가?

긴 글을 빨리 읽고 글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도록 요약하고 읽는 수련을 해야 한다. 초등 3~4학년 때부터 중학교에 이르기까지 공통 과정과 고등학교 선택 과정에서 글을 읽고 주제와 관련된 핵심 어휘나 개념을 파악하는 연습으로 고교수학능력을 길러야 한다.

얼치기 '대학수학능력'보다 '고교졸업자격' 길러야

‘일제고사’를 없애고 평소 일상 고등학교 수업의 중심에 발표와 토론이 과정 평가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한국 현대 시 맛보기 수업 시간을 보기로 생각해 보자.

한국 현대 시인 이육사와 윤동주 등에 대해 학생들이 저마다 준비하여 발표한다. 서로 발표를 듣고 나누며 새로운 앎과 시각을 깨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이해력과 표현력이란 ‘대학수학능력’을 기를 것이다.

한편으로 논리 구조를 만들고 논거를 제시해야 하는 서술형 글쓰기는 어떠한가?

모든 수업에서 글쓰기로 창의력과 논리성, 표현력과 비판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경제나 법과 정치 등에서는 사회 현상을 분석해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역사 수업에서는 쟁점이 되는 역사 사실을 놓고 찬성과 반대의 주장을 논거를 들어 펼치는 글을 쓸 수 있다.

먼저 설명하고 과정을 기술한 뒤 각 이론에 대해 비평하는 일은 ‘읽기(독서)’와 ‘말하기-듣기(토론)’와 이어진다. 고교생 모두가 얼치기 ‘대학수학능력’보다 ‘고교졸업자격’을 길러야 할 때다!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소장(경기고 교사, 문학박사)은 열린시대교육개혁론(이서원, 1996)을 펴냈으며 앎의 두루퍼짐과 겨레 하나됨이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가꾸려는 뜻을 지니고 1987년 한양여고에서 교편을 시작한 뒤로 33년째 교직에 종사 중이다.

한국인격교육학회 부회장, 한글학회 평의원, 한국어정보학회 이사, 한국교육철학학회 회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전교조 부설 참교육연구소 중등새로운학교연구실장을 지냈다. 2012년부터 참배움학교연구회를 조직해 매월 참배움이야기마당 등 활동을 해 오고 있으며, 2017년 이후 참배움연구소로 개편해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학교운영체제(교과체제), 고교학점제, 대입전형, 과정(수행)평가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최근 고교주제학점제 실행방안(2018), 배움과 성장이 있는 교사의 삶 가꾸기(2018), 제4차 산업혁명시대 중등학교에서 사람다움(인성)기르기(2017), 정보 시대 생각하는 참배움의 뜻과 길(2017) 등을 발표했고 현재 ‘배움혁명’(2019)을 출판 준비 중이다. duruh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