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숙 경기 용인 성복고 진로교사

[에듀인뉴스-명교학숙 공동기획] 학생들의 인성교육 방향 정립을 위해 고전(古典)을 활용한 교육이 떠오르고 있다. ‘명교학숙’은 이러한 교육계의 움직임을 리드하는 초·중등교사 연구모임으로 동·서양 인문고전을 탐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명교학숙과 함께 고전을 통해 우리 교육 현실을 조명하고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듀인뉴스] 며칠 전 신문에 실린 기사다.

일본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을 지낸 구마자와 히데아키(76)는 6월 1일 자신의 집에서 장남을 직접 찔러 살해하고 자수했다.

장남은 도쿄의 유명 사립중학교에 진학했지만 2학년 때부터 학교 내 따돌림을 당해 등교를 거부했고 이때부터 집안에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 후 자취를 시작했고 직업을 가졌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스스로 부모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다음 날부터 아버지를 폭행하고 게임만 하다 죽은 당일 날 인근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끄럽다고 소란을 피우는 모습에 남에게 해를 끼칠까봐 아버지는 아들을 살해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신입생을 대상으로 일반성격과, 사회적응, 성격유형을 알아보는 인성검사를 시행한다. 특이한 사항은 해가 갈수록 은둔형 외톨이, 우울가능, 비행가능의 비율이 증가한다.

한 반에 2~6명 정도의 학생이 위의 영역에 해당되며, 공통점은 늘 혼자 있는 학생들이다. 수업활동을 위해 한 조로 묶어줘도 참여하기보다는 뒤에서 보기만하고 어울리지 못한다. 점심시간에도 빈 교실에 앉아 엎드려있거나 음악을 듣거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몇 십 년 전만해도 평소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함께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딱지치기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면서 서로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어린이들은 집에 돌아와도 다양한 학원을 다니느라 친구와 놀 시간이 없다. 놀이터는 노는 아이들 없이 텅 비어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입시학원에 다니고 스펙을 쌓느라 친구와 함께할 시간이 없다. 대학생들은 취직을 위한 영어공부와 스펙 쌓기로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그러나 친구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생의 동반자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이다’라는 인디언 속담도 있듯이 진정한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엄청난 축복이다.

국어사전에 보면 친구(親舊)란 ‘①가볍게 오래 사귄 사람 ②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사귀어온 또래 친구도 있고, 나이 차이가 있어도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친구에 대하여 사전적 정의가 아닌 감성적 정의를 내릴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이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다. 이 작품은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통해서 친구의 의미, 사랑 그리고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준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에 친구가 된다는 것은 ‘길들인다’는 것이고,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며,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이’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고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길들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어. 사람은 자기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만 정말로 알 뿐이야. 사람들은 이제 뭔가를 진정으로 알게 될 시간이 없어졌어. 가게에 가서 이미 다 만들어진 물건들을 살 뿐이거든, 그렇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가 없는 거야. 만일 네가 친구를 얻기 바란다면 나를 길들여줘.” - 어린왕자 중에서

내가 필요해서 너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필요해서 너에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가 친구를 만드는 방법으로 제시한 ‘길들여진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친구란 서로 길들여지는 것이고, 비로소 특별한 하나의 존재가 되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어린 왕자는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여우는 ‘참을성’이 많아야 하며 그래야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친구가 되는 아주 현명한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참을성을 가지고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가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이미 만들어져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우를 통해 말한 것처럼 친구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한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맹자( 372년 추정 ~ BC 289년 추정)
맹자( 372년 추정 ~ BC 289년 추정)

맹자 ‘만장하’에 만장이 맹자에게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자신의 나이가 많음(長)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지위가 높음(貴)을 내세우지 않고, 자기 형제 중에 부귀한 사람이 있음을 내세우지 않는다.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벗 삼는 것이므로 내세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나(我)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내세워선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말이다. 덕을 벗 삼는다는 건 사람이 갖고 있는 선한 본성으로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 선한 본성을 느끼고 알기 위해선 여우가 알려준 대로 참을성을 가지고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가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는 이미 만들어져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은 친구 만들기가 힘들다. ‘빠름-, 빠름-’ 광고음악으로, ‘2G에서 3G로, 3G에서 4G(LTE)로, 4G에서 이제는 5G’로, 인터넷 속도 전쟁을 미래로 가는 최첨단으로 내세우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와 여유롭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시간이 없다.

학생들에게 자기주도적인 인생을 계획해 보기위해 인생그래프를 그려보게 하면 거의 비슷한 그래프를 그린다. ‘10대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인서울대학 진학, 20대에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취직, 30대에는 결혼하고 돈 많이 벌기, 40대 건물구입해서 건물주인 되기, 50대 퇴직해서 여행 다니기’···.

물건을 찍어내듯이 자기의 인생을 찍어내려고만 한다. 친구들과 함께 다가올 삶을 고민하고 독서를 통해 다양한 삶을 생각해 본다면 찍어내는 인생을 계획하진 않을 것이다.

당나라 시인인 왕발은 "나를 제대로 알아주는 친구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그곳이 하늘 끝이라도 마치 이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친구를 만들고, 삶의 지혜를 얻으려면 빠름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2020학년도 고3 학생 수가 약 57만661명에서 2022학년도에는 약 45만7674명으로 11만명 이상 줄어든다. 인구 감소가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 가정에는 한 자녀가 많아져 형제 없이 자라는 학생도 증가추세다. 그래서 더더욱 친구가 필요한 세대다.

이제 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성취지향의 교육과정보다 학생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어야하고, 교사는 학생들끼리 협응할 수 있는 수업안을 고안해 내야한다.

생떽쥐베리는 ‘어린 왕자’를 통해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현대사회의 맹점을 예고하고 우리에게 미리 경고해 주었다. ‘빠름’을 미덕으로 아는 현대사회에 느림이 필요한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