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유 경기대 초빙교수/ 국가인권위 사회권전문위원회 위원

'지침'에 발목잡힌 교육..."박근혜 교육부인가, 문재인 교육부인가"

김대유 경기대 초빙교수
김대유 경기대 초빙교수

초등학생 학습권 봉쇄하는 교육부

[에듀인뉴스] 지난 7월11일 이철희·조승래 국회의원 공동 주관으로 열린 학교시민교육지원법안 토론회의 골자는 한마디로 민주시민교과서를 법제화하여 의무적으로 가르치자는 것이다. 

현재 경기도교육청(2013)과 서울시교육청(2014)이 개발한 총 10권의 민주시민교과서는 전국의 교육청에서 주로 교과 시간 내 보조교재로 활용하거나 창의적 체험활동, 동아리, 토론 및 논술 활동에 활용되고 있고, 중‧고등학교에서는 선택교과로 편성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교육부의 지침에 의하면 민주시민교과서는 그동안 ‘교과서’가 아니었다. 

박근혜정부 교육부는 ‘국가교육과정이 없거나 교과목이 없는 인정도서’는 교과서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지침을 새로 만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국검정을 위주로 한 초등에서 민주시민교과서를 쓰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2019년 문재인 정부 교육부에서 입법예고한 교과용도서 규정도 초등 국검정 교과 이기주의를 반영한 이 지침을 승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에 진보교육감들은 민주시민교과서의 사용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초법적 발상이지만 시민교육의 살리자는 취지였다. 

민주시민교과서가 교과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학습보조교재로 전락하면 현장교사들이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NEIS를 통해 교과서 신청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보건교과서 역시 이와 비슷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교육부는 2008년 “교육부장관은 전국의 모든학교 모든학생에게 보건교육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도서와 시수를 정하고 보건교사를 둔다”는 학교보건법의 9조와 15조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보건교과서를 인정도서로 편찬(서울시교육청 위임사무)하게 하고, 지난 10년간 초등학교 5,6학년의 의무시수와 중등의 선택과목으로 보건수업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급조한 악법 지침과 문재인 교육부의 지침에 의거 민주시민교과서와 보건교과서는 하루아침에 ‘교과서 아님’의 처지가 되었고, 특히 2015 교육과정에 맞추기 위한 초등학교 보건교과서의 수정도 불허되었다. 

전국의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수는 총 85만명이다. 이 중 60만명이 학생이 보건교사들에 의해 그동안 보건과목을 학습해왔고 교육복지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여 성교육, 질병예방과 건강관리, 재난과 안전 등 국민의 웰빙(well-being) 대한 교육이 실시되었다. 

현장교사들의 국민신문고 민원이 제기되고 저자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2019년 6월에 교육부는 마지못해 인정교과서로 인정하여 수정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 

올해 8월까지 교과서 수정작업이 시작되지 못하면 전국 60만명의 초등학생이 내년에 수정된 교과서를 사용할 수가 없다. 서울시의회 채유미 의원이 의정 발언을 통해 조희연 교육감에게 문제의 시급성을 설명하며 해결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제를 교육부에 미루던 서울시교육청 관료들이 교육부와 물밑 대화를 하면서 현재까지 교과서 수정을 승인하지 않고 있어 교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다음 주 월요일(5일) 교육부에서 소집하는 전국 시도교육청 교육과정 담당자 회의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귀결될지 알 수는 없지만, 구시대 악법 지침에 의해 멀쩡하게 인정교과서로 교수학습을 하던 민주시민교과서와 보건교과서가 학습보조교재로 격하될 우려는 얼마든지 있다. 

국민들은 이와 같은 관료주의가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해악을 끼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적폐 교육부와 꼭두각시 교육청 
   
적당한 비유는 아니지만 삼국지 ‘오장원 전투’에서 죽은 제갈공명은 죽음을 숨기고 가짜 공명을 내세워 살아있는 적장 사마의를 패퇴시킨다. 정치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박근혜의 정책과 지침이 멀쩡하게 살아서 시퍼렇게 국민을 탄압하는 일이 교육부와 교육청에 이르면 활개를 친다. 

비단 민주시민교과서와 보건교과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교육부는 박근혜 정책의 보루가 되어 진지를 구축하고 진보교육감과 관료들은 그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꼭두각시로 변질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 때 추진되던 학교자치법 법제화가 지금까지 진행이 되지 못하여 교육청의 인권조례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고, 교장자격증 폐지를 골자로 한 교장선출보직제는 한 치도 진전되지 못하여 제자리걸음이다. 이 때문에 전국의 교사들이 여전히 승진경쟁에 내몰리고 교육청은 승진플랫폼이 되었다.

교육부는 진보교육감들이 자사고를 취소하지 못하도록 교육부가 승인권을 갖는 적폐 조항을 근거로 상산고를 살려주었다. 두 눈 뜨고 코 배어가는 형국이 바로 이런 것이다. 스쿨미투 정책에서 나타난 위법,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와 성고충심의위원회에서 성폭력 피해와 징계를 결정하도록 한 위법 지침도 그대로 작동되어 교사와 학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전교조 합법화 추진도 대법원 핑계를 대면서 적폐 고시를 따르고 있다. 전 정권의 적폐 규정을 들어 국민의 교육적 요구를 묵살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어린 학생의 학습권을 망가뜨리는 등 그 만행에 한 치의 두려움이 없다. 

진보교육감들마저 이명박과 박근혜가 남긴 적폐 규정들로 인해 억눌려 있는데 하물며 힘없는 백성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엊그제 한 프랑스 지인이 내게 던진 농담이 떠오른다.

프랑스는 심심한 천국인데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같아요.

내심 뼈아픈 지적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이대로 교육부 장관과 진보교육감들의 참모들, 그리고 적폐 관료들에게 교육 권력을 맡기고 정치놀음에만 열중한다면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들은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문재인이라고 쓰고 박근혜라고 읽다” 아프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