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광주 상무초등교 교사

교실 속 교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시선을 달리하는 것만으로 행복 쟁취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나를 냉철하게 바라볼 힘을 기르는 것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은 마음을 먹고 내가 먼저 도전해본다. <에듀인뉴스>는 소소한 일상을 낯선 시선으로 해석해 보고, 문제의 본질을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 매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연습을 통해 교사의 성장을 돕고 싶다는 김경희 광주 상무초 교사의 성장연습에 함께 발을 맞춰 보고자 한다.

[에듀인뉴스] “몸이 몹시 아픈 상황, 버스 좌석에 앉아서 먼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내 앞으로 오신다.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도덕과 양보와 배려 단원의 가치 갈등 상황의 토의‧ 토론 수업에 등장하는 시나리오이다.

220명의 학생 중 1명을 뺀 모두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양보할 것입니다”라는 모범 답안을 말한다. 그 중 은주만이 “내 몸이 아픈데 내 몸도 돌보지 않으면서 타인을 돕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양보하기 싫어요”라고 답한다.

교사는 이런 상황에 참으로 난감하다. 탄탄한 근거 자료를 좀 더 제시하여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쳐나갔으면 좋겠는데 더 이상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분명 서로 다른 가치의 공존을 이해하기 위해 도덕과에서 토의‧토론 학습 상황이 제시되고 있으나 다수가 윤리적인 판단으로 쉽게 결론을 내려 버린 후 더 이상 토론이 안 될 경우 교사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이 커져버린다. 다수와 소수의 조화를 꾀해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내야 할 책임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소소한 나의 일상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한다. 교과서에서 나온 설정 상황이지만, 나 또한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임신 초기, 직장과 집이 버스로 1시간 넘는 먼 거리였다. 유독 입덧이 심한 나는 그 날도 역시 몹시 힘든 몸으로 버스에 올랐다. 운이 좋게 좌석에 앉았지만 곧 다음 정류장에서 나이 많으신 어르신께서 타셨다. 배가 불러오지 않아 어느 누가 봐도 양보심 없는 처녀로 보였을 것이다. 역시나 그 할아버지께서도 내 눈치를 살피시더니 간접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셨다.

하지만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니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는 내내 마음도 몸도 무거웠다.

나는 이 상황을 학생들에게 있는 그대로 들려줬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그 때를 추억하면 후회되는 한 가지가 있어. 만약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할아버지, 제가 임신했어요. 입덧이 심해서 일어날 수가 없네요. 이해해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

소수로 몰려 주눅 들어있던 은주의 얼굴이 순간 환해진다. 타인을 이해시킬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선생님도 나처럼 양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가운 듯 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은주야,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어?”

“제 상황을 친절하게 이야기하면 할아버지가 오해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좋아! 다음에 혹 이런 상황이 생기면 이 이야기를 기억해 낼 수 있지?”

“예!!!!”

나는 학생들에게 토의‧토론하는 방법이 아니라 오해 없이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쉽게, 더 쉽게, 좀 더 쉽게 표현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초등학생들과 살아가는 것이 따분하게 느껴졌던 적도 많다.

그러나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높이의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 오만, 가식 등의 거품을 걷어낼 때마다 내가 나에게 늘 묻고 있는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더 쉽게 다가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면 ‘그래, 잘 살고 있어. 괜찮아. 이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자!’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주고 있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