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옥영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 (사)보건교육포럼 이사장

10년 넘게 같은 내용 "당연히 개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5개월 넘게 이어진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핑퐁게임
"조희연 교육감, 60만 아동 법정 보건 학습권 지켜야"

우옥영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 (사)보건교육포럼 이사장
우옥영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 (사)보건교육포럼 이사장

비밀의 정원, ‘보건 교과서’를 둔 교육부와 서울교육청의 핑퐁 게임

[에듀인뉴스] 때때로 개혁을 위한 전투가 소리 없이 ‘비밀의 정원’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보건 교과서」의 개정 문제도 그렇다.

지난 3월, 3000여명의 보건교사가 회원으로 있는 (사)보건교육포럼에서는 교육부 및 서울시교육청에 ‘현재 60만 명이 사용 중인 초등학교 「보건 교과서」를 10년 동안 개정하지 못했다’며 개정 승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청은 ‘학생들에게 필요하고 유익한가?’ 여부보다 교육부의 규정, 고시, 규칙 등을 내세워 5개월 간 서로 미루며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 피해는 아이들의 몫이 될 텐데 말이다.

높은 사회적 요구와 OECD 국가들의 선진 사례에도 불구하고, 왜 10년을 유지해 온 「보건 교과서」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

기존 교육과정, 교과의 틀을 유지하려는 이해당사자가 교육부와 교육청의 정책 주체가 되어 새로운 교과의 투명한 의제화를 막는 ‘무의사결정’을 떠올린다. 1960년대에 미국의 백인 정부가 흑인 폭동을 공식 의제에서 차단했듯이, 기존의 규범이나 규칙, 절차를 내세우거나 보완하여 흑인들의 요구를 봉쇄, 지연시켰듯이 말이다. 낡은 규범은 당연시되기 쉽고, 세부 규칙들은 미로와 같아서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본질을 실종시키곤 한다. 민주시민, 환경, 코딩 교과 등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 변화와 「보건 교과서」 개정 요구, 2020년, 아이들의 보건학습권은 어디로?

지금 개정 요구가 있는 「보건 교과서」는 학생들의 수면, 식습관 등 건강관리, 성교육, CPR과 응급처치, 감염병 예방 등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보건 교과서」는 보건교육이 건강권을 옹호하고 학업성취를 높이며, 무상의료, 인간화 교육의 토대이자 교육 복지로 제 역할을 하는데 중요한 매개다.

이 교과서는 2007년, 국회가 초중고 모든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보건교육을 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시수, 도서를 정하도록 학교보건법을 개정함에 따라 교육부가 2008년, 초등학교 5, 6학년, 중고등학교 1개 학년에서 보건교사가 17차시 이상의 보건교육을 하도록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서울시 교육청 인정도서로 부활했다. 평소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던 아이들도 열심히 교과서를 읽고, 시험도 없는데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공부에 몰입하는 기현상으로 교사들, 학부모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사회가 빠르게 바뀌는데, 이를 반영하여 교과서를 개정하자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다른 교과목의 경우 5년마다 교과서를 개정할 수 있고 필요하면 수시로 수정도 가능하다. 보건교과서는 10여 년간 수정을 못했으니 당장 수정이 필요한 내용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성교육 중 성폭력 부분이 과거에는 주로 피해자의 ‘안돼요’ 등 거절 방법에 중심을 두었다면 이제는 가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성인지 인권 교육, 경계, 그루밍, 디지털 성폭력 등을 다루어야 한다. 사회와 건강 부분 역시 예전에는 환경호르몬과 건강을 주로 다루었다면 지금은 기후변화와 건강을 다루어야 한다. 언론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이와는 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5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보좌관과 관련 부서(초등교육과, 교육혁신과, 체육건강과 등) 관계자들은 수차례 회의 후 ‘보건 교과서는 개정도 수정도 불가하다, 다만 타 교과의 학습 자료라면 수정이 가능하다’고 1차 결론을 내렸다.

현행 교과 간 구도에 비추어 노골적인 교과의 이해관계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근거도 법률이 정한 보건교육과 도서 지정의 의무는 간데없고, 교육부의 고시(2015 교육과정, 교과서 구분고시)에 보건교과나 인정도서 조항이 없다는 것만 강조되었다.

이에 보건교육 단체에서는 법률과 관련 규정을 들어 ‘체계적 보건교육은 법적의무이고, 보건교과서는 취소 통보 전에는 교과서의 지위가 있으니 개정도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논리가 궁색했던 것인지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이후 교육부, 신문고, 청와대, 국회 등으로 「보건교과서 개정」을 요구하는 유사한 요청이 접수되는 가운데 6월 초, 교육부는 ‘「보건 교과서」는 인정도서의 지위가 있고, 수정이 가능하지만 교육감이 판단할 일’이라는 공문을 서울시교육청과 (사)보건교육포럼에 보냈다.

이로써 문제는 일단락이 될 것처럼 보였다. 마침 이시기에 서울시의회에서는 왜 「보건 교과서」를 10년이 넘도록 수정하지 못하는지, 누가 담당자인지 채유미 의원의 날카로운 지적이 있었다. 담당 국장은 부서의 일이 아니라며 답을 하지 못했고 결국 조희연 교육감께서 직접 챙기겠다고 하셨다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속히 보건교과서 수정 결정을! 법률을 준수하는 지방자치의 모범을 

내년부터라도 학생들이 개정된 보건교과서를 사용하려면 심사 절차 등을 고려할 때 지금 당장 결정을 내려도 날짜가 빠듯하다. 그럼에도 8월 7일 현재까지도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여전히 답변이 없다.

보건교과서를 교육청 예산이 아닌 학교 예산으로 바꾸거나, 교과서가 아닌 타 교과의 학습 자료로 격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니 현재의 교과서 체제를 더 발전시키기는커녕 교과서 이전시대로 되돌리자는 퇴행을 도모하는 적폐가 아닐 수 없다.

7월 경 보건사무관은 ‘보건 교과서가 없으면 학습 자료를 모아 사이트에 탑재하면 된다’며 보건 교과서 취소 내지 폐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교육감의 핵심 보좌진들이 아이들보다 관료들 편에 섰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교육부가 공문과는 달리 뒤에서 다른 압력을 넣고 있다거나, 8월 5일의 인정도서 담당자 회의를 기다려 보자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쩌다가 법률에서 정한 ‘보건 교과서’의 운명이 하위 규정도 모자라 법적 근거도 없는 실무자들의 임의 모임에 맡겨진 것인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교육부의 규칙과 규정에 문제가 있다면 법률을 근거로 개정을 촉구할 일이지, 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를 방치하고, 서울시교육청은 자신들에게 위임사무로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청 대신 중앙 관료들의 하부 역할을 하고자 하는가?

촛불로 세운 문재인 정부와 조희연 교육감 치하에서 「보건교과서」를 둘러싼 ‘5개월의 핑퐁’과 ‘무의사 결정’을 떠올리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바라건대 즉시 수정 결정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