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서울 경기고 교사

⑧ [학생부] ‘학교’ 생활보다 ‘학생’ 삶이 드러나게 기록하자

오늘날 교육 기관과 단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에 관련한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 교육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 희망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좀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에듀인뉴스>는 “교육의 뜻을 제대로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 운영 틀이 지닌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서울 경기고 교사)과 함께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김두루한의 배움 혁명’ 연재를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국정과제회의를 주재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사진=노무현 사료관)

교육이력철인가, 학교생활기록부인가 

[에듀인뉴스] 15년 전인 2004년 8월19일 제53회 국정과제회의는 교육혁신위원회(위원장 전성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2008학년도 대입부터 한 학생에 대한 모든 기록을 모아놓은 '교육이력철'을 대입전형자료로 쓰겠다"는 보고에 대해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용어가 교육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만큼 '당분간' 학교생활기록부로 쓰고 실질적 변화가 있을 때 바꾸자"고 말했다. 

이해찬(국무총리), 안병영(교육부총리), 김우식(비서실장), 정운찬(서울대총장) 등 참석자간 토론이 논란으로 이어지자 "교육이력철은 생소하고 교과 성적이 완전히 배제되는 느낌을 줘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일단 이름보다 제도의 내용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자"고 대통령이 정리했다. 

이로써 교육혁신위(선임위원 김민남)가 1년 넘게 준비해온 ‘교육이력철’이 ‘학교생활기록부’로 환원됐다. 그나마 성과라면 독서·봉사활동 등 비교과영역이 강화된 것이다.

현행 학교생활기록부는 15년 동안 고교정상화와 사교육 없애기와 같은 ‘실질적 변화’를 이끌지 못한 채 유지되었다. 다만 대학에서 학생 선발을 하거나 고교에서 진학을 돕는 자료일 뿐이었다. 

“학교의 장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여 학생 지도 및 학생 선발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작성·관리하여야 한다.(초·중등교육법 제25조 1항)”

현행 ‘교육형’ 학교생활기록부, 어떻게 기록하고 있나

거의 모든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을 지내는 동안 배움(교육)활동의 과정에서 맞춤형 참배움의 보람을 누리지 못한다. 학교생활기록부도 ‘사실의 기록’에 그친 채 학생의 소질과 역량, 배움의 동기와 수행 과정, 학업 성취와 발전 과정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교과 등급이 낮은 학생들에겐 아예 제대로 관찰하고 평가한 ‘관심 있는 기록’이 실종된 실정이다.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기록하는 교사들은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이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묶여 있다. 

“교육정보시스템으로 작성·관리하여야 한다.(제30조 4항)”는 것과 “학교의 장은 학교생활기록부와 학교생활 세부사항기록부로 구분하여 작성·관리한다.(시행규칙 제23)”에서 보듯이 그저 앨범 사진이나 도서, 지은이 이름, 교내 수상 실적 등의 ‘사실의 기록’에 충실할 뿐. 

예컨대 교내 수상 실적은 학교 관점에서 수상(대회) 명칭, 등급, 수상연월일, 수여기관만 다루고 학생의 준비 과정, 참여 정도, 평가 기준과 방법, 결과물에 대한 정보, 학생의 이어진 활동 등의 내용은 규정상 학생부의 어떤 항목에도 입력할 수 없다. 

학교를 다니며 생활을 기록하기보다 기록하려고 생활한다 

‘교육형’ 학교생활기록부는 학교 중심으로 학교가(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쳤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모두가 바쁜 현실에서 학생의 활동은 형식에 치우치고 교사는 관찰할 여유가 없어서 ‘객관적’ 사실만 똑같이 기록된다. 고3의 경우라면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도 스펙 기록용 차원에서 학술 동아리와 창의체험 동아리를 하나씩 들게 한다. 공부와 과외활동도 다 잘하니까.  

어느 학생의 고백이다. “맨날 무슨 대학 특강 한다, 생활기록부 작성법 알려준다고 하면서 동아리 활동하기 하루 이틀 전에 취소 공지를 해왔어요.” 학교는 학생의 적성이나 소질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한 번도 묻지 않았고 성적만 신경 썼단다. 이쯤 되면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며 생활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 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1학년 초반까진 모의고사 1~2등급을 유지했지만 점점 성적이 떨어진 그 학생은 수학에 흥미는 있었지만 입시 일정에 맞춰진 빠른 진도를 따라잡기 힘들었단다.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책 읽는 시간을 다 포기하고 학교 수학 과제에 매달렸지만 “왜 그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배우고 싶은 것도 없고,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어느 순간엔가 다 놓아버렸다”고 말했다.  

(사진=픽사베이)

현행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은 1단계에서 학생부 교과성적+자기소개서+추천서로 2단계에서 ‘면접’으로 전형한다. 학업능력, 발전가능성, 전공적합성,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를 두고 학생부 기록과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논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부모의 경제력, 학교나 교사에 따라 달라짐, 교과 상위권 학생에게 몰아주기 등이나 금수저, 깜깜이, 복불복, 불공정 전형이란 별명이 늘어났다.

물론 대입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이나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의 개인별 기록모음(프로파일)은 매우 필요하다. 고교 3개년 간의 모든 배움(교육) 활동을 증빙하는 것으로 대학에서는 축약된 자기소개서나 추천서와의 동질성을 파악하는 참고자료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들로선 21세기 대학과 사회에서 원하는 미래의 인간상을 가꾸는 차원에서 학생부 기록에서 입력할 글자 수 제한을 받는 부담이 크다. 

학생들의 ‘사실+관찰과 평가의 기록’을 제대로 해 내기엔 여건이 매우 힘들다. 학생들도 초·중등학교 생활에서 진로탐색이나 자기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교내외 활동 준비 과정과 활동 내용, 활동 후 자신의 느낌과 반성을 제대로 기록하기가 어렵다. 

현행 대입 학생부 교과전형의 문제점

대입 학생부교과전형은 ‘수능’과 마찬가지로 ‘결과’ 위주 평가다. 고교에서 두 달에 한 번씩 ‘교과서’ 지식 전달 위주로 정기 중간, 기말고사를 ‘객관식’ 위주로 치러 그 결과를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것이다.

단기간에 모호한 문제들(교사 관점, 의도적인 말바꿈)로 인해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답을 강요하니 유형을 익혀 기계적으로 시험 보게 된다. 

교사나 학생, 부모 모두가 점수와 등급에 얽매인 현실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배움다운 배움을 얻으며 공부한 적이 있단 말인가? 학생들은 점수 올리기만 강요당한다”고 호소한다. 

“배움은 남지 않고 점수만 남는다”는 말처럼 고등학교에서 발표나 토론 수업 등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①‘칸막이 교과목’으로 수업하고 시험을 치러 ②‘줄 세우기(등급내기)’를 한다는 점이다. 

요즘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라 하여 교육 관점에서 학교생활기록부를 쓰자고 하지만 (국가, 시도, 학교) 교육과정도 이젠 학생의 배움과정으로 바꾸고 누구든 자연스레 수업에 참여하며 그 활동을 교과세부능력으로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배움의 당사자인 학생의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는 모습을 담긴 ‘배움형’ 학생생활기록부가 자리 잡게 된다. 

기억과 기록의 힘을 되새겨보자

기억과 기록은 우리가 놓쳐선 안 될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잊었던 일을 떠올리게 하고 복습하게 하고 여행하게 해 주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힘이 되고 꿈에 한 뼘 더 가게 해 주니까. 

요즘 심리학에서는 기억은 '능동적인 과거 만들기'라고 정의한다. 이미 찍힌 낙인처럼 지워지지도 고칠 수도 없는 과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시점과 의미를 바꿀 수 있지 않은가? 

생각과 처지가 다르면 기억도 다르단다. 과거 기억을 긍정적으로 정리하면 희망찬 미래를 낙관하게 된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안 좋은 기억이 많아서가 아니라 괴롭고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억이 지닌 힘은 미래 대비의 암시나 상상력의 보물창고로서 성취동기를 제공한다. 

자기 이해란 기록의 힘은 어떨까? “강점은 돛단배이고 약점은 돛단배에 난 구멍-<긍정심리학 코칭기술>,로버트 디너”이란 말이 있다. 자신을 제대로 알아서 약점인 구멍은 최대한 막고 강점인 돛에 집중하여 순풍에 돛단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일기나 쪽글(메모)로 자신이 한 일을 기록하면 저마다 자기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모름지기 ‘자기’를 더 잘 알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사진=픽사베이)

‘배움형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 스스로 겪은 삶 기록해야 

모름지기 ‘교육’ 관점에서 ‘배움’ 관점으로 바꾸자. ‘틀’과 ‘방법’을 새롭게 제시하고 찾아내어 살맛나는 배움으로 이끌 수 있으니까. ‘배움형 학생부’란 학생이 지닌 배움권을 살려서 학생이 스스로 학생생활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배움형’ 학생생활기록부로 기록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예컨대, 상을 탄 결과보다 상을 타기까지 학생이 스스로 배움을 실천한 동기나 과정, 상 탄 이후 활동 사실을 학생 스스로 저마다 꾸준하고 자세히 늘배움(평생학습) 차원에서 기록할 필요가 있다. 

‘당분간’ 국가(교육부) 지침으로 만들어진 학교생활기록부가 아니던가? 이것을 15년을 넘겨서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때다.

당장은 학생이 저마다 몸으로 겪은 체험이나 날마다 생각하고 배움을 나누는 활동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주제)를 중심으로 진로를 찾아가며 능력을 기르고 벽돌을 쌓게 도와야 한다.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중학교 1학년부터는 배움의 당사자인 학생들이 스스로 필요한 것을 입력하고 기록해야 한다. 

구술 면접 동의 걸러내기가 있기에 함부로 거짓을 담긴 어려울 것이다. 제3자인 국가나 교사, 부모는 공정성을 내세워 끼어들 일도 없을 것이다. 학생 쪽에서 보면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담아내고 다양한 관심사(주제)에 따라 차근차근 진로 탐색을 하고 나아가 고교주제학점제로 연결되는 고3이 될 때까지 진학 준비를 할 수 있다. 

학교는 배움을 지원하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여러 교과에서 ‘수행평가’를 할 때 좀 더 체계 있게 담아낼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교사들끼리 그리고 교사와 학생이 더불어 같이 배우고 자라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면 학업 역량, 학업태도, 개인적 소양이란 학생부종합전형의 평가 항목은 제대로 학생을 관찰하고 평가한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것이 2004년 8월의 국정과제회의에서 다루지 못한 ‘교육이력철’의 뜻을 잇는 것이다. 

배움 과정과 수업 및 평가 과정에서 스스로 자라남의 보람을 학생들이 느끼게 돕는 것이다. ‘배움형 학생부’로 ‘칸막이’와 ‘줄 세우기’를 넘어 학생의 참삶을 가꾸고 드러내는 ‘배움 혁명’에 나서자.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소장(경기고 교사, 문학박사)은 열린시대교육개혁론(이서원, 1996)을 펴냈으며 앎의 두루퍼짐과 겨레 하나됨이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가꾸려는 뜻을 지니고 1987년 한양여고에서 교편을 시작한 뒤로 33년째 교직에 종사 중이다.

한국인격교육학회 부회장, 한글학회 평의원, 한국어정보학회 이사, 한국교육철학학회 회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전교조 부설 참교육연구소 중등새로운학교연구실장을 지냈다. 2012년부터 참배움학교연구회를 조직해 매월 참배움이야기마당 등 활동을 해 오고 있으며, 2017년 이후 참배움연구소로 개편해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학교운영체제(교과체제), 고교학점제, 대입전형, 과정(수행)평가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최근 고교주제학점제 실행방안(2018), 배움과 성장이 있는 교사의 삶 가꾸기(2018), 제4차 산업혁명시대 중등학교에서 사람다움(인성)기르기(2017), 정보 시대 생각하는 참배움의 뜻과 길(2017) 등을 발표했고 현재 ‘배움혁명’(2019)을 출판 준비 중이다. duruh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