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산불 발생한 강원도 고성군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관계자가 산불 예산 포함 추경안 통과를 자찬하는 현수막을 게시해놓고 있다.(사진=지성배 기자)
지난 4월 산불 발생한 강원도 고성군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관계자가 산불 예산 포함 추경안 통과를 자찬하는 현수막을 게시해놓고 있다.(사진=지성배 기자)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한 여름,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속에서 피서 절정기를 맞은 강원도 고성 지역. 지난 4월 발생한 산불로 폐허가 된 이 지역에도 하나 둘 녹색 새싹이 돋아나며 새 생명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집을 잃은 주민들 가슴에도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있을까.

국회는 지난 2일 질질 끌던 산불피해 관련예산이 담긴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켜 산불피해 주민들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놨다. 그러나 추경안을 찬찬히 뜯어보면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주택복구비에 대한 내용이 없다.

추경예산에는 ▲산림헬기 도입 ▲소방차량 확충 ▲산불 진화차 교체 ▲개인진화장비 확충 등 산불진화 장비 확충과 ▲피해지 벌채 및 조림 등 환경 복구 ▲희망근로 ▲산불예방진화대 등 일자리 관련 항목만 담겼다. 실거주자에 대한 지원계획은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산불 발화 책임으로 지적된 한전 관계자도 피해 주민들을 찾아 "그간 비슷한 피해에 대한 배상을 30%이상 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어 주민들이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같은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주민들은 ‘추경안 통과에 자신들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정당들의 각종 언론플레이 속고 있다. 지금도 고성 지역에는 이같은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다.

지난 4월 7일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고성 산불로 주택 401채가 불탔으며, 임야 530㏊, 창고 77채, 관광세트장 158동, 축산시설 925개, 농업시설 34개, 건물 100동, 공공시설 68곳, 농업기계 241대, 차량 15대 등이 소실됐다. 이처럼 산불 피해규모가 큰 만큼 피해액을 추산하기도 쉽지 않다.

당시 피해를 당한 287가구 641명의 이재민은 현재 정부가 마련한 7평 남짓한 임시거주지에서 소음과 한여름 더위에 맞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기자가 이들을 만나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이구동성 하루빨리 주택이 복구되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추경안은 이와 관련한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산불피해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산불피해 지원금을 1300만원만 지급했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정부가 국민이 피해지역 주민들을 위해 사용해달라고 보낸 성금 일부를 주택복구비와 중소소상공인 지원에 지급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30평 기준 주택복구에 총 1억8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낸 돈은 1300만원이다. 총 지원금액의 10% 남짓에 불과하다. 강원도가 2000만원 부담을 떠안았지만 그래도 국민이 십시일반 마음을 모은 성금 750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소소상공인 지원금 역시 총 5700만원 중 21%에 해당하는 1200만원만 국가 및 지자체가 부담하고 나머지 4500만원은 국민성금으로 때우려고 한다. 정부가 어느 것 하나라도 주도적으로 나서 피해 국민을 돌보고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가 보이질 않는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정부도 추경(그것도 산불피해 실거주자에 대한 주택복구비 예산이 쏙 빠져버린)이 통과되자마자 자신들 성과라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홍보에 앞서 추경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국민이 없는 주머니 털어 마음 모은 성금을 정부예산 것처럼 쓰면 안 된다. 실거주자에 대한 주택복구비 예산이 쏙 빠진 추경을 편성해 놓고 국민을 속이며 내년 총선을 겨냥해 홍보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 

세금으로 충당하는 정부예산과 국민 마음이 담긴 성금은 분간해야 한다. 그것도 못하면서 마치 자기 주머니 속에서 나온 돈인 것처럼 생색내기에만 관심 두는 정부와 정치권을 국민은 신뢰하지 않는다. 국가가 재난 당한 국민을 위해 정부예산을 쓰지 않고 국민성금으로 때우려고 한다면 어찌 세금을 걷어 운용하는 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집을 잃은 피해 주민들은 평생의 추억도 함께 소실했다. 정부가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족하게 지원해도 그들의 허탈한 마음을 달래긴 어려울 게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행태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오늘도 뜨거운 해는 피해주민들에게 유독 길게만 느껴진다.

지성배 기자
지성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