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원 참교육연구소 소장

'경쟁'은 과연 '교육'에 바람직한가?
서열화 "1등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에듀인뉴스]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겨 다른 교육적 효과를 침몰시킨다는 문제 제기에 따라 평준화 정책이 들어섰지만, 학구열이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제대로 정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 또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및 학생 수 감소는 인구의 수도권 집중화를 가속화해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예상돼 정책적 해법만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에듀인뉴스>에서는 전경원 참교육연구소 소장과 함께 고교서열화가 왜 문제인지를 짚어보고, 영재학교·과학고의 선발방식 변화와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통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탐색, 일반고 중심의 고교체제 개편 방안을 제안한다.

전경원 참교육연구소 소장, 문학박사
전경원 참교육연구소 소장, 문학박사

◈ 기획 순서=1. 고교서열화, 무엇이 문제인가?/ 2. 영재학교·과학고 선발방식 변화를 통한 일반고 중심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3.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통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4. 고교서열화 해소를 통한 일반고 중심의 고교체제개편 방향

서열화는 왜 문제가 되는가?

서열화는 인간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 어찌 보면 일면 타당한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열화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가 건강한 가치체계이며, 건전한 정신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교육공동체 내에서 서열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어떤 기준과 무슨 근거로 서열화를 행하고 있으며, 이 서열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견인하고 있다면 우리는 서열화를 긍정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서열화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서열화가 내포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 한계는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교와 대학의 서열화는 단 하나의 가치인 ‘성적’과 ‘점수’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선발 경쟁’에서 이미 서열이 결정되고 있다.

누가 더 잘 가르치고 훌륭한 교육적 성장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가 하는 ‘교육경쟁’을 통해 결정되는 서열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성적’과 ‘점수’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선발을 하다 보니 공고한 서열화가 현실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한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체력, 성품, 학업역량, 창의적 사고능력, 대인관계 능력, 감성적 사고능력, 공감 능력 등등 다양한 기준들이 모여 한 개인의 종합적 역량이 마련된다.

그런데 현재의 서열화는 상당 부분 ‘학업역량’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인간이 갖추어야 할 다양한 요소 가운데 대부분을 놓치고, 오로지 점수로 서열화하는 현재의 입시체제가 갖는 한계는 명확해진다.

서열화가 지니는 폐해 가운데 하나는 서열화의 기준이 타당한가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없는 것이다. 서열화가 추동하는 이념적 가치는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경쟁’의 원리가 필요한 분야도 분명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경쟁’이 과연 ‘교육’에서도 바람직한가는 별개 문제다.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이 갖는 한계이자 폐단은 바로 바람직한 교육철학이 교육현장에 작동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현실 인식에서 야기되었다. 말하자면 교육공동체를 작동하는 ‘경쟁’의 원리가 청소년들의 삶과 학교 현장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대한 성찰이 대단히 부족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성취감 쫓는 서열화 "1등 했다고 끝이 아니다"

교육은 다음 세대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에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교육현장에 작동하는 철학적 가치가 ‘경쟁’에 있다면 그로 인해 야기되는 현실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학생만이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구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현재와 같은 상대평가 시스템에서는 1등급에서 9등급까지의 학생들 가운데, 1등급에 해당하는 4% 이내에 드는 학생들만이 제한된 성취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4% 안에 들기 위해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그들을 극복해야만 하는 현실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4% 이내에 들었다고 과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4% 이내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철저하게 서열화된 고교와 대학 체제에서는 다시 또 서열화를 피할 수 없다.

고교의 경우에는 영재학교, 과학고,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반고 등으로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1등급 4% 이내에 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다. 그 안에서도 속칭 공고하게 서열화된 대학과 학과로 다시 줄을 서야 하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친구’는 나와 경쟁하는 대상이 된다. 그 경쟁에서 이겨내야만 내가 더 좋은 등급을 얻게 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사고역량이나 협업역량, 갈등조정능력 등이 극대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이 지녀야 하는 바람직한 교육철학은 무엇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고교체제개편과 관련된 선행 연구에서도 ‘경쟁교육’ 내지는 ‘교육 불평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음은 많은 성과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현장 학교교육은 입시와 시험 위주의 경쟁 중심으로 진행된다. 경쟁교육에서는 인격도야와 사회정의, 공동선과 같은 교육 본연의 원리와 목적을 실현할 수 없으며, 대신 명문대 합격을 위한 점수와 성적 위주의 형태가 지배적이다. 그런 경쟁 과정에서는 갖가지 교육적 편법과 탈법 및 비인격화와 교육 양극화 등이 일상으로 나타난다. 최근 경쟁교육은 경제적 효율성을 지향하는 시장주의 사고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정용교․백승대, 「경쟁교육의 실태와 문제점 및 대안」, 『사회과교육연구』 제18권 제2호, 영남대학교, 2011, 91쪽.

“우리 사회는 해방 후 학력이 지위 상승의 첩경이라는 사회적 지각의 일반화, 반공 블록 하에서의 집합적 지위 상승의 제약 등의 요인에 의해 격렬한 교육경쟁에 빠져들었다. 이 교육경쟁의 귀결로 학교팽창을 통한 교육기회의 균등화가 일어났으나, 고등교육단계에서 교육 불평등이 더욱 심화 됐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 과정은 지위 경쟁에 의한 교육 팽창 과정이 매우 순도 높고 강력하게 관철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교육이 근대적 계급분화의 와중에서 지위 배분의 지표 역할을 학력이 담당함으로써 사회이동의 통로 역할을 했으나, 전체 사회의 계급구조가 완숙해져 감에 따라 교육제도는 대체로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 고착화되어갔다. 상층계급 또는 중산층집단은 사교육 시장에서 더 나은 교육상품을 구매할 경제적 능력과 그들이 가진 문화 자본의 전수를 통해서 교육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 그 정도는 계속해서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근대적 업적 주의 이데올로기는 학력주의와 강력하게 융합되었으며, 이로 인해 모든 계급이 학력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으며, 심각한 교육경쟁이 야기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상층계급에서조차 족쇄가 되는 상황이 됐다.” -김종엽, 「한국 사회의 교육 불평등」,『경제와 사회』특집(통권 제59호), 2003년 가을 호, 55쪽.

“학교 교육이 개인적인 경쟁의 장이기 이전에 사회적인 통합과 융화의 장이어야 한다는 점은, 한국의 고등학교 체제 논의에서 꾸준히 간과되어왔다.” -강태중, 「한국 고등학교 체제 논의의 양상과 특질」, 『교육 연구와 실천』 제81권, 2015년.

흔히 공교육이라 일컫는 학교 교육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고등학교 체제개편이라는 중심 논쟁에서도 학교 교육은 사회적 통합과 융화의 장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간의 고교체제개편 관련 논쟁에서도 놓치고 있는 대목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