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주도 계기교육은 '낡은 것' 이미지..."현장이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역사교육 "일국사 중심 사관 벗어나 당시 세계사적 상황 함께 고려해야"
교육청 차원 일제 잔재 청산?..."과정이 민주적이어야 의미 있어"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계기교육은 현장 교사들의 자발적 시도에서 빛을 발한다. ‘낡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주게 하는 관 주도 계기교육은 지양해야 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9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한일관계 악화에 따라 계기교육을 강화한 역사교육을 2학기부터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장 역사교사의 의견은 어떨까?

문순창 경기 광명 운산고 역사교사는 유 부총리의 발표에 대해 “아베 정부의 실각에 대한 해결점을 역사교육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에 반가움을 느낀다”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역사교육을 하려면 교사들의 수업적 실천을 이루도록 돕는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계기 수업과 같은 일회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일국사 중심 역사 서사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맥락과 다양한 행위자들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일부 교육청의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움직임에 대해서는 “과정이 학교단위 교육공동체에서 민주적 과정을 통해 나와야 의미가 있다”며 “교육청 차원 시도에는 아쉬움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일본 다문화 학생을 만나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는 문순창 교사를 만나 현장 역사교사들은 현 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교육부의 계기교육 강화 방침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래는 문 교사와의 일문일답.

문순창 경기 광명 운산중 역사교사.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원이며 집행부인 편집부의 업무를 돕고 있다. 역사과 교육과정 재구성 및 민주시민교육의 실천에 관심이 많고, 혁신학교에 근무하면서 학교 혁신에 성과를 유지/발전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사진=지성배 기자)
문순창 경기 광명 운산중 역사교사.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원이며 집행부인 편집부의 업무를 돕고 있다. 역사과 교육과정 재구성 및 민주시민교육 실천을 하고 있으며, 혁신학교에 근무하면서 학교 혁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사진=지성배 기자)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학기부터 역사 계기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계기교육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계기교육이란 공식적 교육과정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특정 주제에 대해 실시하는 수업을 뜻한다. 사실 명확한 규정이나 정의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다만 사회적 이슈나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학생들과 교실 현장에서 나누기 위한 수업을 '계기교육'이라고 부른다.

▲학교 현장에서 현재 계기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그 필요성에 대해 현장교사의 의견이 궁금하다.

계기교육은 우리 교육을 풍요롭게 만드는 현장 교사들의 자발적 시도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교육적 의의를 가진다. 국가 교육과정에서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소홀히 한 부분을 학생들과 나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메니페스토 교육, 통일 교육 등이 그러하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 보면 계기교육이 약간은 ‘낡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도 없지 않다. 계기교육이 가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계기교육이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또 교육부 등 교육당국이나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등 특정 단위에서 일제식(一齊式)으로 제시되거나 내려오는 식이라는 점도 그렇다.

사실 중요한 주제고 의미 있는 교육이라면 교사별 교육과정, 학교단위 교육과정에서 유기적이고 일관되게 실천되는 형태로 학생들과 만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이전과는 다른 수준과 깊이로 교육과정 재구성을 실천하고, 이 지점에서 사회적 이슈나 특정 주제를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나누고 있다. ‘낡은 것’이라는 표현은 그런 지점에서 한계를 느낀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지적한 것처럼 관 주도 계기교육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미 현장에서 시행하는 계기교육을 교육부가 강화한다는 것은 교사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교육부의 취지는 십분 이해한다. 이번 아베 정부의 행각에 대한 해결점을 역사교육에서 찾아보려 한다는 점에서 역사교사로서 반가운 지점도 있다.

유은혜 장관이 통제나 강제의 의미로 계기교육을 언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 발표된 안에 대한 보도자료를 참고해보니 그런 뉘앙스는 아닌 선언적 수준이었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동원’의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교육청 및 시도교육청들이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오기도 했다. 실적 위주, 관료주의적 태도는 그동안의 관행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개학하면 체험학습 및 계기교육을 일선학교에서 실시하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그 관행의 연장처럼 들릴 수 있다.

오히려 역사교사들의 수업과 교사별 교육과정 속에서 이번 사안과 관련된 역사수업이 살아나게 할 수 있는 지원이 중요하다. 이미 역사교사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지점에 대한 수업적 실천을 벌여왔고, 그 결과를 축적해 온 바 있기도 하다.

일제의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등에 대해 단편적 수준을 넘어 체계적이고 실천적으로 이어지는 역사수업을 학생들과 나누어 왔다. 이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문제에 대해 한중일이 서로 평화와 공존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과 논의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와 같은 단체들이 그런 노력을 해왔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역사교육을 발전시키는 근본적 제안과 비전을 교육부가 냈으면 더 반가웠을 것이다.

문순창 역사교사는 현 시국을 교육으로 풀 때에는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사진=지성배 기자)
문순창 교사는 현 시국을 교육으로 풀 때는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사진=지성배 기자)

▲근본적인 제안과 비전은 무엇일까? 교육부에 제안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을까. 현장 교사 입장에서 역사교육 강화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면?

첫째로 계기수업과 같은 일회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의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차원에서 해당 주제와 시대에 대한 대안 서사를 만드는 것 말이다.

기존 역사교과서는 일제가 저지른 수탈과 억압의 역사를 다루어 왔으나 해당 시기의 세계사적 맥락과 다양한 행위자들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접근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국사 중심의 역사 서사에서 벗어나 다양한 층위의 행위자와 구조를 드러내고,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를 만들어갔던 이들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일제강점기 등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대안적 서사를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현 시국은 그러한 논의를 시작하는데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당장의 실적이 되지는 않겠지만,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둘째는 이러한 역사문제로 인한 갈등을 교육 분야에서 풀어나갈 때 ‘평화와 공존’이라는 태도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최근의 상황은 자칫하면 학생들을 국가주의·민족주의적 분노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물론 불의에 대한 분노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분노가 학생들을 성마르게 만들고 그친다면, 그것은 교육이라 보기 어렵다고 본다. 진정한 교육이라면 평화와 공존을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우리 시민들은 현 정국에서 이에 대한 분별력을 잘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서울 중구청의 일본 반대 배너깃발 설치를 막아 해프닝에 그친 것을 보면 잘 나타난다. 그러한 방식으로 역사교육에서도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논의를 이어가도록 교육부에서 도와야 한다.

또 국적을 가리지 않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연대를 돕고, 학교 현장에서 그러한 시도를 하려 한다면 적극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는 일본 다문화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데.

그렇다. 우리나라 내 일본 및 일본 다문화 학생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현장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교사로서 난 이 지점에 대해 마음이 항상 두근거린다.

일본 다문화 학생들이 요즘 같은 시국에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지, 개학 후 아이들 간에 이 부분에서 억압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것 말이다.

이는 일본 다문화 학생을 위한 염려만이 아닌 우리 학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교육 당국에서 위와 같은 배려를 담은 조치를 내거는 것 자체가 교육적이고 도덕적인 것이라고 본다. 세계시민교육의 취지에도 걸맞다.

▲학교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 청산 움직임도 활발하다. 교가, 교목, 교훈 등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통은 전통으로 지켜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유보적이고 비판적인 편이다. 접근에 있어 전시적이고 행정 동원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교육 당국에서는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것의 취지를 본질적으로 살릴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그것을 지원하는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학교단위의 교육공동체에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화를 통해 스스로 나온 것이어야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해당 학교의 교가-교목-교훈을 바꾸더라도 말이다. 교과 및 학생자치 단위에서 자발적으로 논의를 하고 수업이나 활동 등을 매개로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연계된 사회 참여 프로젝트 측면에서 다룬다면 어떨까?

‘ㅇㅇ제일고’와 같은 일본식 학교 이름이 바뀌는 결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 과정이 곧 교육이기도 하다. 지금 일부 시도교육청에서의 시도는 그런 점에서 좀 아쉽다.

 

▲곧 개학이다. 아이들과 어떤 수업을 만들어 가고 싶은가.

2학기에 한국근현대사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독립운동사, 민주화운동사는 자칫하면 아이들에게 운동사의 나열에 그치거나 엄숙주의의 강요에 머무를 수 있어 현장 역사교사들은 항상 고민이 깊다. 역사수업에서 접한 그러한 역사가 아이들에게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 박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립운동가들이 현신(現身)하여 오늘날을 살아간다면, 기꺼이 이 땅의 낮은 자들과 함께하고 자유와 평등을 위해 억압과 싸웠을 것이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의 역사를 오늘날의 삶과 연결 할 수 있을 때 진실로 역사교육 가치가 빛날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사와 민주화운동사를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아이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숙제도 역사교사들에게 남아있다. 아이들이 진정한 배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방학이 끝나는 것은 언제나 아쉽지만(웃음), 그런 것을 고민해보고 실천할 2학기를 구상 중이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