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경기 시흥 은행중 보건교사

보건실 방문 10년새 70% 늘었지만 인식은 10년 전에 멈춰
다양한 증상 호소하는 아이들 "현장 변화 반영 정책 마련돼야"

[보건교육포럼-에듀인뉴스 공동기획] 1967년 학교보건법이 제정 이래 보건실과 보건교사는 학생들의 건강을 유지·증진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 보건교육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응급처치, 건강상담 등을 시행해 왔다. 최근 학생들의 건강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보건실의 기능과 역할도 크게 확대, 변화되고 있으나 학교보건 정책 결정자의 전문성 미흡,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폐쇄성, 1교 1인 보건교사 배치 정책에 따른 열악한 인력 구조 등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보건교육포럼>과 함께 학교보건 전반의 구조·정책적 문제점을 짚어 보고 현장 중심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획 순서

1. 변화하는 학교와 보건실 - 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경기 시흥 은행중 보건교사)
2. 아이들을 위해 법률로 정한 보건교육의 의무와 교육부 교육과정 - 김미경 교육학 박사(한국보건교육학회 부회장)
3. 증발된 보건교사의 수업시수와 만년 지적에도 1인에 갇힌 보건교사의 배치 -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
4. 실종된 지원 행정과 환경위생관리 - 우윤미 인천 효성서초 보건교사

(사진=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사진=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에듀인뉴스] 인간의 행동은 어떻게 결정될까. 사회학에서는 언뜻 보면 인간은 합리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고 결정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가 속한 사회나 조직의 가치체계, 문화, 제도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꽤 흥미로운 이론이 정립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사회나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에서 인정한 가치나 문화, 제도 등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이 주는 가장 무서운 시사점은 자칫 비합리적인 가치체계나 문화, 제도가 고착되고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인간의 행동, 정책, 대안 등이 양화를 구축하기보다는 악화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개선하고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시도하는 것인데, 오히려 적폐를 두껍게 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학교 보건실에 대한 오해와 편견, 벗어 보자

일전에 한 모임에서 보건교사라고 했더니, 보건실에서 주로 하는 일이 상처 치료나 증상에 맞게 약을 주는 등의 처치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은 건강하니 보건실에 자주 오지도 않을 테고 보건 수업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말씀도 덧붙였다.

전교생이 1000여명인데, 하루 평균 적게는 80명 정도, 많은 날에는 100명이 넘게 보건실에 아이들이 찾아온다는 내 답변에 놀라시더니, 급기야는 법적으로 정해진 보건 수업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응급처치, 나아가 신체적, 정신적 건강 요보호학생들의 돌봄, 감염병 대응, 학교폭력전담기구에서의 책임까지 담당해야 정도로 보건실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고 했더니 별나라 이야기를 듣듯 신기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보건법이 제정된 이래 거의 50여년 동안 보건실은 학교 안의 은둔 지대처럼 폐쇄적인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해서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보건실에서 어떤 상황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챌 도리가 없다 보니, 보건실에 대한 신화는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이미지화하기 쉬운 구조가 되어버렸다.

가령 몰려드는 학생들이 처치를 막 끝내고 교실로 돌아간 시점에, 때마침 보건실을 가면 너무 조용하고 평화롭다(?)고 생각하거나, 보건실에 가는 아이들은 수업하기 싫어하는 소위 문제아들만 찾는 곳이며, 보건실은 작은 병원이어야 한다는 등의 편견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 사례 1.

서울(가명)이는 세심한 성격으로 조울증을 진단받아 치료하면서 학교 생활을 했다. 영민하고 배려심이 많아 친구들과 곧잘 어울리기도 했는데, 문제는 점심 급식을 거르기 일쑤였다. 조울증의 특성상 쉽게 식이 습관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보니 급식을 제대로 먹도록 지도하는 게 중요한 이행과제였다. 학생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급식실이 답답하다고 해 영양사님과 상의하여 친구들보다 30분 정도 늦게 식사를 하되, 본인이 원하는 대로 별도로 마련된 교사 식당에서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급식실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를 매번 설득해 식사를 제때 하도록 습관화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 사례 2.

경기(가명)와 세종(가명)이는 수능을 앞두고 예기치 않게 성관계를 했다며 보건실을 찾아왔다. 소위 모범생인 아이들은 고1이었을 때 보건 수업 시간에 배운 성교육 내용을 용케도 기억하고, 사후피임약 복용 데드라인인 72시간이 되기 딱 1시간 전에 찾아왔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안면만 겨우 있는 선배님이 운영하는 병원에 다짜고짜 전화해 사정을 알리고,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어 약을 복용하도록 했다. 그때의 아찔했던 경험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할 정도다.

◈ 사례 3.

제주(가명)는 학교폭력을 목격하고 배운 대로 신고를 했는데,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해지는 바람에, 제주가 신고를 안 했더라면 학교폭력 사안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히려 공격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겉으로는 담담하게 정의롭게 행동한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지만, 학교폭력전담기구 상담에서 보인 흔들리는 눈빛이 수상쩍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혹시 요즘 상황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것은 아닌지. 아이는 베란다에 나가 뛰어내리려다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그만두었다고 했다. 바로 담임 선생님, 학년 부장선생님께 알렸고 이를 계기로 계획했던 사안 처리 과정이 대폭 수정되었다.

◈ 사례 4.

강원(가명)이는 부모님이 헤어지신 후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방학 중 급작스레 당뇨 증상이 나타났다. 외국인 어머니는 본국으로 출국하셨고 출장이 잦은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아 식사를 대충 때우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급기야는 인슐린으로 당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저혈당 증상을 대비해 초콜릿, 사탕 등을 준비하고 주기적인 혈당 체크를 권고하고 있지만, 늘 보건실이 아이들로 만원이다 보니 오히려 당뇨인 게 알려질까 봐 강원이는 따로 불러야 찾아올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건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 돌아보고, 함께 챙겨주는 친구가 생긴 점이라고 할까.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보건실 방문 학생 증가 "정신건강, 소아당뇨 다룰 법 개정 시급"

보건실이 한가할 것 같다는 신화는 그야말로 천만의 말씀이다. 2014년 보건교육포럼과 박혜자 의원실이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보건실 방문 학생은 무려 70%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규모에 따라 일평균 방문 학생은 30~35학급의 경우 27인, 36~42학급의 경우 33인, 43~49학급의 경우 44인, 49~59학급의 경우 51인, 60학급 이상의 초 거대학교(9개교)의 경우에는 무려 70여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기록이 누락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실제 방문 학생들은 이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의 정신 건강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보건교사 증원, 보건교사 안전 대책, 관련 기관과의 연계 등은 미비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상담실을 지원하려고 노력하는 바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신과 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이후의 대처는 일반적인 상담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약물처치의 이행, 기저 정신과 질환의 특성에 맞춘 생활지도, 의료적 상담 등 치료과정 전반에 대해 보건학적 측면에서 지지해야 한다. 2018년 서울대 김붕년 교수팀이 서울, 경기, 대구, 제주 등 4개 권역의 초·중·고 4057명을 분석한 결과, 적대적 반항장애(5.7%), 특정 공포증(5.3%),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3.1%), 틱장애(2.6%), 분리불안장애(2.3%), 우울장애(1.2%), 사회공포증(1%)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정신과 질환으로 진단받은 청소년이 늘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소아당뇨는 또 어떠한가. 국회는 학교보건법을 개정하고, 교육부 및 보건복지부는 소아당뇨 학생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작하였지만, 현장과 괴리가 있어 매우 아쉽다.

법령 및 매뉴얼에 따르면 소아당뇨 학생이 있는 경우 체육, 보건, 영양, 담임 교사 등이 소아당뇨 위원회를 구성해 유기적으로 대처하되 보건실 등을 주사실로 제공해야 한다. 수업 시간에는 필요시 혈당을 체크하고 글루카곤 등 전문의약품을 학생에게 받아 보건실에 비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외국처럼 학생들에게 당뇨 교육을 통해 관리 방법을 가르치거나 편견을 갖지 않게 보건교육을 하라는 내용은 없다. 소아당뇨는 필요에 따라 집중적인 요보호를 필요로하므로, 특수학급 학생들처럼 전담 보조 인력도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계획도 전무하다.

물론 글루카곤 또는 인슐린 투약 시 자문할 의료 기관, 학회의 네트워크는 언급조차 없다. 보건교사는 의료인이자 교사이니 보건실에서 슈퍼맨처럼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리드할 수 있다는 신화가 여전히 정교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건강문제가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적 문제까지 확장되고 있어 그야말로 보건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변화의 관점이 절실하다.

보건실을 찾는 학생들은 인권, 교육소비자의 권리 등으로 무장한 채 수시로 보건실을 찾고 있지만 불행히도 학교보건 정책 결정 단위에서는 여전히 한가한 보건실, 1교 1인 보건교사 만능주의의 가치체계가 작동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화는 현실을 아름답게 재해석하게도 하지만, 객관적 현실을 비참하게 왜곡할 수도 있다는 진실, 언제쯤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까.

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경기 시흥 은행중 보건교사
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경기 시흥 은행중 보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