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교사의 러시아 여행기①

학교교육 지탱하는 러시아 가정교육 '타인에 대한 배려'
한때 세계 최고 과학기술 "국가 주도 교육 한계로 밀려"

시장 개방으로 변화하는 러시아 "교육 잠재력 충분"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증기기관). 블라디보스톡에 역사적 기념물로 설치되어 있다.(사진=조윤희 교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증기기관). 블라디보스톡에 역사적 기념물로 설치되어 있다.(사진=조윤희 교사)

[에듀인뉴스] 러시아를 만나는 법은 여러 갈래 길이 있겠지만, 그들의 평범한 얼굴을 만나고 싶어 내가 택한 길은 3등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것이었다. 구석구석 그들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그들처럼’ 다니며, ‘그들처럼’ 먹고, ‘그들처럼’ 장을 보고, 그들의 골목을 다녀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처럼’의 여행을 꿈꾸며 이번에 17박 18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러시아 여행은 2017년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여행 구간을 전·후반으로 나누어 전반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 울란우데를 거쳐 이르쿠츠크까지, 그래서 바이칼호까지 가는 일정으로 총 4박 5일 중 3박 4일을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는 데 소모했다.

올해의 일정은 후반부 여행으로 노보시비리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니즈니노브고로드와 카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돌아보는 다소 긴 여행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울란우데를 가는 중에 목적지가 다 와서 하차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종일을 그 열차 안의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였다. 무려 9288km를 달리는 열차로 지금은 처음 개설 때 보다 조금 더 길어졌다고 한다. 바쁜 시대에 급하면 비행기를 타면 되지만 열차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비행기가 대신할 수는 없으리라.

1916년 전 구간 개통 이후 무려 10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철도에 올라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중간 중간 역에서 삶은 감자와 절인 채소를 가져다 파는 아낙들을 열차 간이역에서도 만날 수 있었고, 30분가량 정차 하는 역에서는 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먹거리를 사 올 수 있었다. 그렇게 기대하지 못했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3박 4일의 여정이 이어졌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러시아의 ‘단층’을 보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울란우데까지 3박 4일을 가는 동안, 칸막이나 문이 없이 공간에서 생활하는 3등석 ‘플라츠카르타’를 타보면 그 점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한 열차 칸에 50개의 침대가 있지만 달리는 내내 6개 좌석 앞뒤로 대략 18개의 얼굴들은 화장실 가며, 뜨거운 물 받으러 가며 어깨를 스치며 인연을 쌓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말이 잘 안 통하면서도 한 량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웃음으로, 손짓 발짓으로, 혹 영어가 되는 사람들은 짧은 영어로 그렇게 소통한다. 그렇게 그들의 꾸밈없는 일상과 마주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같은 량에 타고 있던 아이들. 아이들에게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사진=조윤희 교사)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같은 량에 타고 있던 아이들. 아이들에게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사진=조윤희 교사)

여행지에서 만난 소시민의 가정교육 "타인에 대한 배려, 배려, 배려"

옥산나는 기껏해야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밝고 명랑한 성격의 아이였고 아이의 나이에 비해선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엄마와 여행 중이었다. 옥산나의 어머니는 천방지축 딸아이와 하루 세끼를 열차 안에서 해결하면서도 식사 때가 되면 작은 간이 테이블에 반드시 테이블보를 깔고 빵을 뜯고 차를 마시며 아이와 조곤조곤 식사했다. 그다지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옥산나는 열차 안의 고만고만한 꼬맹이들과 장난도 치며 놀긴 했지만 주변의 관광객, 외국인들에게 그다지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아이 엄마의 원칙대로 약속을 잘 지키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 밝은 미소로 붙임성 있게 다가와서 호기심을 보이기는 했어도 시선을 끄는 물건이나 소품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만지거나 혹은 가지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의 지시대로 자신의 자리를 주로 지켰고, 시끄럽게 떠들며 놀이를 하지 않는 등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느껴졌다.

많이 배우고 전문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아이를 데리고 탄 다른 아이 엄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자녀를 엄격하게, 타인을 배려하도록 양육하고 있었다.

이런 자녀 양육 방식이 러시아 일반 가정의 양육 혹은 교육 방식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지난번 열차 안에서도 또 이번 여행에서도 시끄럽거나 다른 사람의 조용한 여행을 방해하는 아이들은 찾기 어려웠다.

러시아 부모들이 자녀를 어떻게 키우는지 보면서, 이렇게 기본 소양이 길러진 아이들이 자라 학교와 같은 공식적 교육기관에서 학습한다고 생각하니 러시아의 기본적인 힘은 거기서 나올 거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 시민의식.

강압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몸에 밴 자율적인 습관과 생활 양식이 기본적인 인성을 뒷받침해 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했다. 그렇게 교육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가는 러시아 소시민들의 단층을 보고 좀 더 구체적인 교육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왼쪽부터)르쿠츠크에 있는 유리가가린 두상과 스푸트니크호의 발사의 기념을 위한 오벨리스크.(사진=조윤희 교사)
(왼쪽부터)르쿠츠크에 있는 유리가가린 두상과 스푸트니크호의 발사의 기념을 위한 오벨리스크.(사진=조윤희 교사)

우주를 향한 그치지 않는 꿈. 그러나...

모스크바의 우주 공원을 들렀다. 1957년 그들이 쏘아 올린 스푸트니크호의 발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엔 티타늄으로 만들어져 햇살 속에 빛나는 로켓이 형상화되어 있었고, 과거 소련의 우주인이었던 인물들의 두상과 우주과학에 기여한 과학자들의 동상도 있었다. 과연 광장과 동상의 나라다웠다.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동상들이 나라의 품격을 더했다.

우주박물관이 있는 역은 베데엔하(ВДНХ)역이었는데, 이것은 ‘소련 인민 경제 성과 박람회(Выставка Достижений Народного Хозяйства)’란 뜻이라고 한다. 지금은 베베쩨(ВВЦ) 또는 러시아 박람회장(Всероссийский выставочный цент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세계주도권을 놓고 무한경쟁 상태였다. 당시 소련은 철저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경제성장은 전반적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군사력을 얻어내기 위해 처절하게 인민경제부문을 희생시킨 결과였다.

당시 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국방비의 상승률이 국민소득성장률의 2배에 달했는데 이는 인민이 힘들게 생산한 것을 국방부문이 다 빨아먹은 셈”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미국의 어느 저명한 사회학자는 당시 취약한 소련의 경제를 빗대며, “미국 공군이 러시아 상공에서 사람들 기호품인 담배와 스타킹만 뿌려대도 공산주의는 곧 붕괴를 맞을 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생필품의 곤궁과 전반적인 소비 생활 수준의 저급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소련은 미국에 앞서 본격적인 ‘우주시대’를 열고 서방을 위협하는 첨단무기도 열심히 만들어냈지만 쓸 만한 치약, 칫솔, 스타킹, 세제 등 기초생필품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특이한 나라였다.

이렇게 군사력은 비등했어도 참담했던 경제생활은 시장경제의 자유를 저당 잡은 군사력과 우주 항공 분야로의 매진 탓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경제와 맞바꾸어 얻어낸 소련의 우주공학 결실을 자랑하는 공간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여기엔 당연히 과학을 최우선 순위에 둔 교육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러시아의 국가 주도 학교 교육이 남긴 것

러시아의 학교 교육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지원이 가능한 분야에 집중되었다는 생각이다. 1960년대와 70년대 경제를 침몰시키면서도 우주항공과 군사력에 집중한 소련의 경쟁력은 과학, 그중에서도 특별히 우주와 군사력 두 분야 집중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원래부터 광장과 동상의 나라인 소련에는 그 시절 만들어진 동상들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가가린 동상은 일쿠츠크에서도 봤고, 모스크바에서도 볼 수 있었다.

국가의 집중적 예산 투자를 힘입은 분야는 저렇게 성장하여 성과를 내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러시아의 항공 분야 기술은 아직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정밀 관측용 다목적 실용위성을 발사할 때 러시아의 야스니 발사장을 이용하기도 했다.

자랑할 만한 분야는 저렇게 계속 드러내고 있지만 지금 러시아의 과학이 항공이나 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침체일로라는 실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크바 국립대학(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전경.(사진=조윤희 교사)
모스크바 국립대학(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전경.(사진=조윤희 교사)

세계적인 대학이라 했던 모스크바 국립대학도 기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90위권에서 최근 84위 정도까지 약진하고 있으나 분야별로 여전히 IT, AI, 생명공학 분야는 부진한 것으로 나타난다. 과학 분야와 공학 분야에서 쌍벽을 이루던 미국은 MIT, 스텐퍼드, 하버드 대학들이 부동의 세계 랭킹 1, 2, 3위를 자랑하고 있다.

교육에서도 자유로운 경쟁교육 시스템이 아니고는 발전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 우주산업의 심장 케네디 우주센터는 관 주도에서 벗어나 스페이스X나 보잉과 같은 민간 우주 기업이 함께 입주해 미국의 우주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고 지속해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율과 경쟁을 통해 우주산업의 동력을 얻고 있는 것을 보면, 국가 주도의 관 중심 러시아의 교육과 과학이 세계무대에서 힘을 받지 못한 것은 어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추론하게 한다.

그러나 시장이 개방되어 감에 따라 놀랍도록 변해 가는 러시아의 모습을 보면서 중앙 집중 교육을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 중에 만난 러시아는 일반 시민의 가정교육부터 교육 인프라까지 충분한 교육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 역시 확인 할 수 있어서, 향후 러시아란 나라가 어떻게 방향을 잡고 나아갈지가 관건이란 생각을 하며 돌아보았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