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원 칼럼] 역사교육 '강박' 내려 놓는 것이 역사교육 '강화'다
[권재원 칼럼] 역사교육 '강박' 내려 놓는 것이 역사교육 '강화'다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8.28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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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사진=sbs 캡처)

[에듀인뉴스]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소미아 협정 중단으로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 편승하여 현 상황을 침략, 전쟁 등으로 규정하는 정치인들의 선동적인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교육부를 통해 현 상황의 대책으로 ‘역사교육 강화’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일제 식민지배와 관련하여 정통적인 역사 해석에 반대하면 처벌하는 ‘역사 부정죄’ 를 입법하자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하필 일제 강점기에 대해 기존의 상식과 다른 주장을 펴는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상황이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역사교육 강화’를 언급하고 있으니 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이게 역사교육 자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의 역사에 대한 특정한 해석의 교육 강화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해석에 이견을 제시하면 처벌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 법 까지 생기면 교과서와 조금이라도 다른 역사적 해석을 언급하는 교사 하나 쯤이야 가볍게 목을 쳐버릴 것이 아닌가?

사실 현재 이렇게 엉키고 꼬인 상황은 역사교육이 약해서 빚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역사교육, 특히 자국사 교육이 매우 강한 나라에 속한다. 교육과정에서 역사의 비중도 매우 클 뿐 아니라 그 역사교육에서 자국사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한국사는 대입 수능에서 필수과목일 뿐 아니라 미응시할 경우 그만큼의 점수만 빠지는 게 아니라 응시 자체가 무효가 될 정도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입 역사상 이런 무시무시한 지위를 누리는 교과는 한국사가 유일하다. 

대학에 들어갔다고 한국사 교육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능력인정시험을 쳐야 한다. 이 시험은 심지어 법률적 근거까지 가지고 있는 시험이다.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 18조 1항)

사료의 수집·편찬 및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한국사 능력의 검정) ① 위원회는 한국사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고 역사에 대한 지식 및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육성하기 위하여 한국사 능력을 검정할 수 있다.

교사, 공무원, 기타 공공기관에 취업하려면 이 인증 시험에서 반드시 3급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5급 공무원의 경우는 2급을 따야 한다. 사실상 고시나 다름없다. 요즘 젊은세대의 대다수가 공무원,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청년이 한국사 인증 수험생이 되었다. 해마다 응시 인원이 20만명에 육박한다.

당연히 침체하고 있는 사교육 업계에서도 한국사만큼은 황금어장이다. 한국사 사교육업자는 중고등학생 뿐 아니라 성인 대상으로도 잘 나간다.

(출처=리얼미터)

더구나 수능이나 인증은 시험이다.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 그런데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국가가 정답을 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을 구하려면 국가가 ‘정통’이라고 규정한 역사 해석을 정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거기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응답해야만 한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나라가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할 나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서 뭘 더 강화한단 말인가?

여기서 박근혜 정부때의 역사교육 논란이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반공주의, 냉전주의적 해석을 올바른 역사로 규정하고 그것과 다른 해석을 수정주의, 사회주의, 좌경 등의 딱지를 붙여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기승을 부렸던. 

그 목소리는 끝내 학생들이 수정주의, 좌경 역사를 배우지 못하도록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고, 실제로 이를 공권력으로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다. 그러니 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역사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역사를 걱정하는 것이며, 그 역사가 아닌 역사를 ‘역사가 아닌 것’으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가 공인한 역사 해석 이외의 이단잡설, 사문난적이 설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역사 부정죄’라는 해괴한 죄까지 만들어가며 말이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상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들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라는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그 시간은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사건들은 재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도 돌이킬수 없는 시간 속에 있었던 일들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없다. 다만 파편으로 남아있는 기록, 전승, 유물, 유적, 즉 사료 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역사란 이 사료를 해석하고 파편 사이에 개연성 있는 해석을 채워 넣어 스토리를 만들고, 다시 그 스토리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 보강한 결과물이다. 마치 망원경으로 어렴풋하게 확인할 수 있는 현상들만으로 수백만 광년이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에 대해 추론하는것과 같다.

우주에 대한 학설이 여럿이듯, 이 사료에 대한 해석, 그것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스토리 또한 여럿일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렇게 여러 스토리들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구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를 정통으로 삼고 다른 이야기들을 이단잡설로 삼아 배척하는 것은 먼 옛날 춘추필법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현대 들어서도 이 해석에 대한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여, 특정한 해석만을 진리로 판정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전제정권, 독재정권의 특징이었다.

여러 관점, 여러 대안적 이야기들이 서로의 개연성과 증거를 뽐내며 경쟁해야 한다. 서로 다른 역사해석에 대한 비판은 “한국인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라는 도덕적 질타나 감저적 호소가 아니라 더 개연성 높은 해석, 더 강력한 설명력을 가지는 증거 자료나 상대방의 해석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반대 증거의 제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이런 능력을 기르는 의미에서 역사교육 강화라면 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역사교육의 비중이 절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사학적 역사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 작성된 ‘정통파’ 이야기를 역사로 전제하고, 다른 이야기, 다른 해석의 여지를 공교육의 권위와 공권력의 강제성을 이용하여 ‘역사왜곡’으로 재단하는 역사교육 강화라면 단호히 반대한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그 내용이 친일 매국적이라서가 아니라 ‘국정’, 즉 국가가 특정한 역사 해석을 진리로 강요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었다.

만약 소위 친일 매국적인 내용을 반일 애국적 내용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정’이라면, 즉 특정한 해석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나쁜 교과서이며, 그 내용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조리 친일 매국으로 몰아친다면 이는 역사교육이 아니라 역사적 폭압에 불과하다.

역사교육 강화를 희망한다. 동시에 ‘역사교육 강화’에 반대한다.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특정한 사실, 특정한 이야기를 후세대에게 전하고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겠다는 강박을 버리는 것이다.

역사교육은 역사적으로 추론하고 탐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지 이미 정해진 옛날 이야기를 암송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교육 강화’를 내려 놓음으로써 역사교육을 강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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