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경기 대부중 교사/ 전국교육연합네트워크 공동대표

교사 혼자 하기 벅찬 학생부 기록..."현실은 학생 셀프 학생부 기재"
교사 기재 능력 차이 존재..."교육당국은 기재·관리 표준화 지원하라"

[에듀인뉴스] 지난달 26일 서울고법 행정5부(배광국 부장판사)는 고교 교사 A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감봉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A 교사는 여러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일명 ‘Ctrl+C, Ctrl+V’를 하여 감봉 징계를 받은 것으로 공교육의 신뢰를 떨어뜨려 교사로서의 성실의무 등 위반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봤다.

조사결과 A 교사는 학생의 독서교육종합시스템에 해당 책의 독서활동실적이 등록돼 있지 않았던 것에 기재하면서 복사와 붙여넣기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는 대학 입학 등에서 중요한 평가자료로 활용되기에 그와 관련한 업무를 수행할 때는 더욱 공정하고 엄격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정확한 근거 자료도 없이 기재한 A교사의 행위는 엄연히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일선 학교 교사들이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에 있어서 작은 토시 하나부터 큰 문장에 이르기까지 복사하기, 붙여넣기를 할 수밖에 없는 여건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는 6일 수시원서 접수를 앞두고 고3 학생들의 대입 수시 제출용 학생부 기록은 지난주 마감됐다. 학교생활기록부는 수시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부를 중심으로 자기소개서의 진위를 파악하고, 학생부에 기재된 기록을 보고 지원자의 역량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수시모집 원서접수 기간은 4년제 대학이 6~10일, 전문대는 6~27일(1차), 11월 6~20일(2차)로 대학별로 접수 기간이 다르다.

학생부는 학교의 장이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여 학생지도 및 상급학교의 학생 선발에 활용할 수 있는 인적사항, 학적사항, 출결상황,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 교과학습 발달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그 밖에 교육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작성·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교육부여, 통제는 내려놓고 현실을 반영하라"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학교생활기록부로 상급학교 진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교사별로 기재 격차가 상당하여 표준적인 작성요령이 존재하지만, 학교별·교사별로 기재가 천차만별이다. 오죽했으면 교육부에서 글자 수까지 통제한다.

교육부가 작년 8월 발표한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에 따르면,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을 확정하고, 동시에, 경쟁·입시 중심의 고교교육을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바꿔나가고,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중장기적 고교교육 혁신방향도 함께 제시했다.

중·고교 학생의 경우 초등학생보다 내신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편이라, 여러 번의 수행평가, 지필평가, 자·동·봉·진(자율, 동아리, 봉사, 진로활동), 자율동아리, 학교스포츠클럽활동 등의 기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교육부의 학생부 기재 개선 사항에는 대입제공 수상경력 개수 제한(학기당 1개, 총 6개까지 제공), 자율동아리 학년당 1개(동아리명, 30자 이내), 소논문(R&E) 모든 항목에 미기재, 방과후학교 활동 미기재, 기재 분량 축소, 교사 연수 강화 등을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과도한 경쟁 및 사교육을 유발하는 학생부의 요소와 항목을 정비하고 정규교육과정 중심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고교 학생부(창체 특기사항, 행특 종합의견)의 경우 기존 4,000자에서 2,200자(200자 원고지 11매 상당)로 개선했다.

문제는 교사별로 기재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대상자별 맞춤형 연수 제공, 학교급별 특성을 고려한 기재요령, 기재 우수사례, 기재 지원프로그램 개발 등 도움 자료를 확대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단편소설 창작 두 세 편은 기본, 학생이 셀프로 학생부 작성하기도

아직도 일부 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일정한 틀(기재요령, 글자 수가 담긴 한글 파일)을 주고 이에 맞춰 미리미리 작성하라고 한다. 일명, ‘셀프 학생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 입시컨설팅업체 등에서 작성한 셀프 학생부는 교사에게 이메일, USB 등의 형태로 건네진다. 그렇다고 교사가 일일이 그 많은 학생의 셀프 학생부를 검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일부 학교와 일부 교사의 일탈한 셀프 학생부는 학생이 스스로 창작해서 만들어가는 소설로 변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시의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는 공정성과 공평성, 정의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입제도 취지를 퇴색시키는 행위에 대한 당국의 적극적인 통제가 필요하지만, 건드리면 큰일 나는 역린처럼 만연한 현실 속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교사들의 학생부 기재내용은 그나마 글자 수가 좀 줄어 낫지 싶지만, 한 항목(500자)만 해도 100명 입력기준으로 5만 자라 단편소설 두 세 편은 된다. 이에 따라 대입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과 교사들은 셀프 학생부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교사들도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많은 학생을 관찰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인원이면 좋지만, 넘치는 학생에 대해 코멘트를 기재하는 행위는 어렵다. 교사가 매번 관찰하고 기록한 내용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학생부를 기재하는 시즌이 되면, 학생들이 작성해오는 셀프 학생부와 결합하여 좀 더 충실하게 보일 수 있기에 주저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3 담임교사 하면서 4개 반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는 학급 학생들에 대한 학생부 기록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과 동시에 수업 진행하는 4개 반 학생들에 대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대해서도 기록을 진행해야 한다.

긴 시간에 걸쳐 관찰과 기록을 진행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현실에서 교사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학생의 학생부를 기재하기 위해 학생들이 셀프로 작성한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입제도 전반 재검토하라?..."학생부 기재 격차 해소와 신뢰도 제고에 힘쓰길"

지난 1일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기 전 공항에서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현행 대입제도가 깊은 상처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며 대입제도 전반 재검토를 지시했다.

교사가 학생의 변별적인 특성을 사실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사의 수업 시간 수 축소와 업무 경감 등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교사는 허위·부실·부당 기재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교육당국은 학생부에 대한 교사들의 기재 격차해소 및 신뢰도 제고에 힘써야 한다. 학교 현장에 자문과 컨설팅을 함으로써 학교에서 기재요령에 맞게 작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부 작성과 관리의 공정성 및 신뢰성을 높이는 비결은 기재·관리 표준화를 지원함으로써 현장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학생부는 학생의 성장 과정을 담는 기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대학은 글자 수가 많으면 우수학생으로 인식하는 오개념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입전형을 주관하는 교육부와 대학에선 일선 학교의 현실을 직시하고 입시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진행되도록 하는 객관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민은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접하게 되었을 때 심각한 박탈감이 생기며, 불행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