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경기고 교사

⑨ [학교운영] ‘행정’보다 ‘수업, 상담’ 지원하는 학교 틀로 바꾸자

[에듀인뉴스] 오늘날 교육 기관과 단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에 관련한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 교육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 희망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좀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에듀인뉴스>는 “교육의 뜻을 제대로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 운영 틀이 지닌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서울 경기고 교사)과 함께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김두루한의 배움 혁명’ 연재를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학교’를 왜 세우고 운영하는가

18세기 산업혁명 뒤로 근대로, 도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서양식 근대 학교가 만들어졌다. 20세기를 앞뒤로 ‘식민지’를 벗어나거나 유지하는 방편 등으로 다양한 학교가 세워졌고 인류의 새로운 체험인 ‘대중교육’이 자리 잡았다. 가정환경·지역·계층과 관계없이 한 나라에 속한 구성원 모두에게 나랏돈으로 하는 무상교육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올해 2학기부터 고등학교로 넓혀진 우리나라도 대중교육에 국방비의 배 정도를 쏟아 붓는다. 출발선이 공정한 교육 기회를 누리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누구나 고루 평등하게 평균 가치를 누리는 민주사회에서 초·중등 교육의 공공성 강화는 당연할 것이다.

모든 학생에게 고교 단계까지 공평한 교육 기회 보장은 1919년 임시 헌장을 마련한 조소앙의 삼균주의(三均主義-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에 완전한 균등(均等)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경제적·교육적 균등을 실현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에도 밝혔다.

‘모든 차별의 구조를 극복하여 정치, 경제, 교육의 권리를 균등하게 누림은 물론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한 인식과 실천을 통해 온 인류가 평화롭고 고루 잘 살 수 있는 세계 일가의 형성’을 꿈꿔온 일이었다.

(왼쪽부터)전주 상산고와 강원 민족사관고 홈페이지에 표기된 학교의 인재상.(사진=홈페이지 캡처)
(왼쪽부터)전주 상산고와 강원 민족사관고 홈페이지에 표기된 학교의 인재상.(사진=홈페이지 캡처)

‘명문학교’와 ‘교육 다양성’ 내세우지만 선발 특권 누린 ‘자사고’

21세기 대한민국 자사고의 원조로 김대중 정부 교육 다양성 방침에 따른 두 학교를 보자. ‘수학의 정석’이란 참고서와 ‘파스퇴르 우유’로 널리 알려진 이들이 세운 전북 상산고(설립자 홍성대)와 강원 민족사관고(설립자 최명재)는 저마다 ‘지성·덕성·야성이 조화된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 양성’,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 양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설립자들은 학교를 운영하며 사비를 내놓고 일신의 건강과 기업 경영을 희생하는 고난을 감수했으나 소수 선민의식에 그치지 않았던가? 부모들은 일류대학 진학을 넘어 ‘지도자 양성’의 학교에서 자녀들이 행복한 배움을 누렸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명문학교’와 ‘교육 다양성’을 내세웠지만 선발 특권을 누린 자사고일 뿐 정작 이런 학교를 거친 학생들이 국가에 쓰일 인물로 자라기 어렵다는 견해(김용옥, ‘도올의 교육입국론’)도 있다. 정규 교육에 최고급 사교육의 가능성까지 싸안은, ‘학원도 다니게 하는 학교’의 한계이다.

‘상산고’, ‘민족사관고’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차이는

1931년 유에스의 필립스 엑시터 학교 이야기는 어떠한가? 거액 기부를 하겠다며 찾아온 이는 새로운 방식의 수업방식을 요구했다. 이에 학교 관계자들은 타원형 탁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둘러앉아 수업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얼굴 보고 토론할 때 질문과 의견, 아이디어가 모두 동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의 토론식 수업 명문학교이다.

토론식 수업과 무관해 보이는 수학, 음악 과목까지 하크니스 테이블(기부자의 이름을 따옴)에서 수업한다. 학생들은 교사가 아닌 자기들끼리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와 토론을 한다. 교사는 때때로 학생들을 원활하게 이끌거나 참여자가 되어 지켜볼 뿐.

학생들은 그날 배울 교과과정을 열심히 예습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토론 수업’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니까. 그래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능력, 배움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다고 말한다. 물론 과제가 많아 해내기가 매우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기숙학교라 집에서 떨어져서 지낼 수 있는 성숙함을 갖추었는지 서로 고려하고, 학교가 다양성을 추구하니까 열린 마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할 줄 아는 학생이 된단다.

박정희 ‘고교평준화’는 국민 공감대, 개인 능력 이끌어냈던가

1968년 국민교육헌장을 공표한 해, 박정희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제를 발표했다. 1974년 ‘고교평준화’도 실시했다. ‘고등학교의 교과 및 교육과정은 학생이 개인적 필요 적성 및 능력에 따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해져야 한다’고 하고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및 학생의 ‘교과목선택권’ 보장을 말하다가 2017년 촛불 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고교학점제’를 내세웠다.

대학입학예비고사(1969~1981)와 학력고사(1982~1993)를 거쳐 대학수학능력시험(1994~현재까지)을 치르는 동안 ‘고교평준화’는 국민의 공감대를 얻었던가? 중등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교육형평성 확대란 성과를 제대로 유지했던가?

사회적으로 다양성과 수월성 교육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평준화’의 틀 안에서 학생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냈던지 성찰해 보자.

1995년의 5.31 교육개혁안에 따라 ‘획일적 국가 교육과정’의 운영 체계 변화가 있었으나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방향과 비전에서 밝힌 대로 ①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 융합형 인재를 기르고 ②학습 경험의 질 개선을 통한 행복한 학습 구현을 어떻게 해야 할까란 문제와 맞닥뜨린 가운데 ‘고교평준화’의 뜻과 길을 새삼 되새길 때이다.

늦은 밤, 학원 앞에 줄 서있는 학원 차량 모습.
늦은 밤, 학원 앞에 줄 서있는 학원 차량 모습.

고등학생들이 왜 학교 다니며 학원까지 다녀야 할까

고등학교를 왜 다닐까.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교육법)’을 받아야 하니까? 온 나라 2358개 고등학교는 일반고(1556교), 특수목적고(과학, 외국어, 국제 전문, 예술, 체육, 수학·과학 영재 등), 특성화고(특정분야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 대상), 마이스터고(기술장인 육성), 자율고로 나뉘어 ‘고교서열화’가 엄존한다.

특수목적에 따른 교육과정을 배우는 학교도 일부 있지만 3/5을 차지하는 일반계 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이른바 입시)을 목표로 하고 있어 교육 과정 운영을 파행으로 치닫는다. 학교 자치와 학교의 자율성을 말하지만 교육과정, 교원선발, 학사일정 등에서 최대한 보장이란 구호에 그치며 혁신학교마저도 고등학교에선 뚜렷이 ‘입시지옥’을 벗어나진 못했다.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고도 학원까지 다니는 현실을 바꾸고자 문재인 정부는 고등학교 수업을 학점제로 바꾸려 한다. ‘입시학원’이 된 고등학교에서 출석 날짜만 채우는 학생들을 건지려고.

‘대학’에서처럼 일부 무학년제, 학점은행제, 과목 선택제, 책임교육제 등으로 고등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골라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게 돕고자 한다.

문재인 ‘고교학점제’는 ‘완전한 고교평준화’로 매듭지어야

‘무시험 입학’을 했지만 고등학교는 ‘시험지옥’이다.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로 중간, 기말고사를 치르고 ‘수능 대비 방송 교재’로 수능을 대비한다. 대입 전형도 정시 수능과 마찬가지로 중간·기말고사 성적의 등급 여부가 수시 학생부 교과와 종합전형에서 영향이 크니 학생 생활을 좌우한다. 학생, 교사, 부모, 교육 당국 모두 긴장과 불안 속에 ‘일제 시험’에 얽매였다.

이처럼 의미 없는 교육, 껍데기뿐인 고교평준화의 속살을 제대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현재까지 초등에 이어 중등학교가 ‘과정평가’로 바뀌는 큰 틀에서 자유학기제와 고교주제학점제를 전면 실시하자. 중등학교 ‘제모습찾기(정상화)’가 될 문재인 정부의 ‘고교학점제’는 참다운 중등학교 평준화의 속살(내용)을 채워 ‘완전한 고교평준화’를 이루자.

1단계는 과정 위주 맞춤 배움을 펼치게 학교 정기고사와 국가주도 수능을 없앤다. 2단계는 ‘학점제’를 학생들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배움 거리(주제)로 선택하여 배움을 설계하게 한다. 3단계는 탐구와 대화 방식 수업과 과정 위주 상시 수행평가, 배움과 성장을 느끼게 하는 학생생활기록을 하도록 돕는다.

교육정책 사업? 공교육 살리기와 행복한 배움에 이바지할까

교원(학교)업무정상화가 뭘까? 학교에 교무행정전담팀을 구성하고 교무행정지원사를 배치했더니 학교가 바뀌었던가? 더 나은 교육을 내세워 함께 교육정책을 협의했음에도 공교육 살리기는 왜 어려울까? 교육지원청, 교육청에서 펼친 교육정책 사업으로 교육자가 보람을 느낄까?

2006년에 도입한 방과후학교 정책을 보자. 방과후학교는 ‘사교육비 경감과 사회 양극화 해소, 그리고 교육 복지 서비스 제공을 통한 공교육 내실화를 내세웠다. ‘사교육을 학교 안에 끌어들여 사교육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며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오늘날 결과는 어떤가? 행정업무만 늘지 않았는가? 북유럽국가들은 교장실에서 처리한다. 팀을 꾸릴 필요도 없이.

교육정책 사업이 공교육 부실, 학교붕괴의 주요한 원인은 아닐까?

‘승진 인사’에 민감한 학교장이나 승진하려는 교감과 교사는 상부 기관의 지시 수행에 더욱더 열성적이다. 그래서 학교는 말단행정기관처럼 되고 교원은 말단행정공무원처럼 된다. 그만큼 학생이 정작 누려야 할 관심이나 학생의 배움을 돕는 현장과 멀어지는 일이 아니었던가?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교육행정? ‘수업’과 ‘상담’의 배움을 지원하자

만약 이제껏 해 온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마땅히 그 원인과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교육행정’ 틀이 아니라 ‘배움’을 돕는 수업과 상담 중심의 배움 지원 틀을 운영했던가? 아직도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성찰하여 바꾸자.

그동안 ‘혁신학교’마저도 입시 위주의 획일적이고 구조화된 학교 운영의 ‘교육’에서 머물지 않았던가? 자발성, 창의성, 공공성, 민주성을 살리고 스스로 배우려는 힘을 기르고 있는가?

이제 학교는 방방골골에서 거듭나야 한다. 학생, 교사, 부모들이 ‘배움’으로 모두 행복하여 사교육이 더 필요 없는 학교로 바꿔내자.

학교운영을 제대로 하려면 ‘교육행정’이 아닌 ‘배움 지원’에 나서야 한다. 교사들이 행정업무 내용을 협의하기보다 ‘수업’과 ‘상담’으로 배움을 지원하는 여부가 중요하니까.

교사는 말단 행정공무원이 아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맞춤형 수업 및 상담 전문가이다. 학생이 배움의 즐거움을 맛보고 즐기게 도와야 한다. 교사들 스스로도 늘배움의 처지에서 연구자로 거듭나야 한다. 학생들이 더 나은 배움을 누리도록 서로 배움을 나눌 수 있어야 하니까.

학교운영을 행정 틀에서 배움지원 틀로 확 바꾸자

행복한 배움을 곧잘 말한다. 학교에도 많은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교육’을 위한 것이었고 학생들의 배움을 돕는다는 원리는 뒷전에 밀렸다. 이제 학교운영을 확 바꾸자. ‘교육행정’ 틀이 아니라 ‘배움’을 돕는 원리를 바탕으로 수업과 상담 중심의 배움 지원 틀로 운영하자.

①수업하는 교과교장보직제 도입으로 학교장제를 혁신하자, 학교엔 수업하는 대표교사(학교장)가 필요하다. 빌게이츠도 ‘으뜸배움이’라 붙인 데서 보듯이.

②행정부장제를 교과(군)부장제로 바꾸자. 수업운영혁신을 위해서.

③학급은 해체하고 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그들을 돕는 배움지기(담임)를 모시게 하자

④현재 학년제 대신 무학년학점제로 맞춤 배움을 일으키자

⑤모든 교사에게 교사실(교과교실)과 원탁탁자도 마련해주자. 2012년까지 정부가 한 약속이었다. 교과+상담(교과, 생활, 진로, 진학)의 배움 지원활동 공간이 학교를 확 바꿀 것이다.원탁에서 함께 읽고 글 쓰며 발표와 토의·토론하는 일이야말로 기본 능력이며 ‘대학수학능력’이 아니던가?

누구라도 고등학생이 되어 3년 동안 깨침의 배움으로 나아가게 하자. 학생들이 스스로 지닌 관심사(주제)와 배움 거리를 바탕으로 진로, 진학 등과 연계한 배움을 설계하도록 돕자. 저마다 행복한 배움과정을 누리게 하는 것이 ‘완전한 고교평준화’의 모습이리라.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소장(경기고 교사, 문학박사)은 열린시대교육개혁론(이서원, 1996)을 펴냈으며 앎의 두루퍼짐과 겨레 하나됨이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가꾸려는 뜻을 지니고 1987년 한양여고에서 교편을 시작한 뒤로 33년째 교직에 종사 중이다.

한국인격교육학회 부회장, 한글학회 평의원, 한국어정보학회 이사, 한국교육철학학회 회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전교조 부설 참교육연구소 중등새로운학교연구실장을 지냈다. 2012년부터 참배움학교연구회를 조직해 매월 참배움이야기마당 등 활동을 해 오고 있으며, 2017년 이후 참배움연구소로 개편해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학교운영체제(교과체제), 고교학점제, 대입전형, 과정(수행)평가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최근 고교주제학점제 실행방안(2018), 배움과 성장이 있는 교사의 삶 가꾸기(2018), 제4차 산업혁명시대 중등학교에서 사람다움(인성)기르기(2017), 정보 시대 생각하는 참배움의 뜻과 길(2017) 등을 발표했고 현재 ‘배움혁명’(2019)을 출판 준비 중이다. duruh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