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선거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후보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리지 않았고, 유세차량이 있는 곳에는 운동원들 모두가 동원 되었다.

새벽 1시.

‘완’과 호민은 방에서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후보의 티브이 토론에 대비해 방송사에서 후보에게 보내 준 질문과 상대방 후보가 던질 수 있는 예상 질문을 비롯해, 우리 측에서 상대 후보에게 던질 질문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한참 하고 있던 중이었다. 둔탁한 노크소리가 문을 넘어 방안으로 들려왔다.

‘툭툭툭’

“네”

“아이구~ 열심들이시네.”

최사장과 민사장이 문을 밀치며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완’과 호민이 머무는 방으로 들어왔다. 둘은 건넌방에서 심심했던지 ‘완’과 호민이 사용하는 방으로 마실을 나온 것이었다.

“잠도 안자. 안 피곤해. 젊기는 젊어. 그래도 그렇지 여태껏 잠자는 걸 한 번도 못봤네.”

실제로 그랬다. ‘완’과 호민은 급작스런 선거준비로 인해 그 동안 잠을 제대로 자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민사장의 손에 딸기와 바나나가 담긴 쟁반 접시가 들려있었다. 그는 쉬면서 하라는 듯 딸기와 바나나가 담긴 쟁반을 내밀었다.

“이것 좀 먹고 해. 잘 먹어야 힘도 나는 거야. 박 팀장 딸기 좀 먹어봐. 달달한 것이 아줌마가 아주 좋은 걸로 사왔구만.”

“아, 색깔이 좋은데요. 맛있겠어요.”

‘완’은 최사장과 민사장에게 먼저 드실 것을 권유하며 호민과 함께 딸기를 집어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딸기를 한 입 베어 물자 달고 시원한 물맛이 입안 갈증을 풀어주면서, 좁쌀 같은 씨 알갱이가 오도독거리며 씹히는 소리가 느슨해진 신경을 깨어냈다.

‘완’과 호민은 선거 시일이 촉박한 상황에서 일에 착수했기 때문에, 잠이 부족했는지 피로가 많이 누적되고 있는 상태였다. 넷이 한참 동안 과일을 주섬주섬 집어 먹는가 싶더니 어느새 쟁반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일로 배를 채운 최사장과 민사장이 이불이 깔아진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는가 싶더니, 이내 최사장이 옆으로 축 늘어지듯 누우면서 머리에 팔을 괴며 자신들 과거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형님 잘 나갈 때는 술집도 많이 다니고 재미나게 살았는디.....”

“그러게말여 그때는 룸살롱도 내 집 드나들 듯이 했는데.....”

민사장이 최사장의 아쉬움 섞인 표현에 화답이라도 하듯 옛 시절이 그립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때는 뭐 형님도 기자라서 끝발 날릴 때고 우리도 돈 좀 만지던 시절이어서 부러울 것 없이 갈가리 쏘다녔는데, 이제는 나이 육십이 다되니까 몸도 예전만 못하고 돈도 함부로 쓰기가 겁나.”

“캬아~ 재밌는 한 시절 보냈내 그래. 그래도 아직 젊은데요. 뭐 그리 한 숨 쉬세요.”

호민이 톡톡 쏘아 올리는 말투로 아직도 젊은데 뭘 그리 푸념 하냐며 우스개소리를 했다.

“아 요즘은 힘들어 나이 먹어서 그런지 다음날 몸에 바로 신호가 와. 천근만근이야. 그래도 그때는 아무리 먹어도 다음날 아침 쌩쌩하게 일어났는데, 인제는 세월이 흘렀는지 몸이 다음날 시름시름 앓는다니까. 아~ 그리고 아랫도리도 인제는 말을 잘 안들어.”

“그래요. 그라면 거 쓰지도 못하는거 뗏뻐리세요.”

호민이 능술 맞은 농을 던지더니 익살스런 표정을 흘리며 딴청을 피웠다.

“어~허이 그러긴 해도 아~ 거 오줌 눌 때 아쉽잖아, 그냥저냥 달고 다니는 것도 괜찮아. 아~ 없는 것 보다 달려 있어야 폼도 나잖아.”

“맞네. 생각해보니 또 그러네.”

하하하하하

최사장이 호민의 농을 받아치자 ‘완’이 짐짓 놀란 듯 장난으로 호응하면서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

민사장이 괄괄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최사장은 그런 민사장의 말 중간에 끼어들어 맞장구를 치는가 하면, 때로는 장난 섞인 농을 던졌다.

‘완’과 호민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한참을 떠들던 민사장이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갑자기 ‘완’을 불렀다.

“어~이 박 팀장.”

“네.”

“자네 조치원역이 왜 조치원역인줄 알어?”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뭐~ 다들 지명에는 유래가 있으니까, 조치원역도 유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지, 그렇지,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능청스런 그의 모습에서 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한마디 할 기세였다. 그는 다시 호민에게 말문을 돌렸다.

“정이사 알어”

호민 역시 민사장이 원하는 답을 알길 없었다. 호민의 모르겠다는 대답이 떨어지자 민사장은 특유의 낭창낭창하면서 평상시 그냥 말해도 귀가 떨어질 법한 큰 목소리에다가, 능글맞은 표정을 만들어가며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걸쭉한 입심이 다시 한 번 시작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게말이여. 예전에 열차가 이곳을 지나는데 들판 한 가운데 있는 철길을 사이로 두고 한 쪽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집에 갈라고 철길 둑으로 올라왔었데. 그런데 그 농부의 거시기가 엄청나게 큰 거야. 그래서 한 번에 이동하기가 힘드니까, 쉬었다 가려고 거시기를 철로 위에 쫙 뻗때 놓고 쉬고 있는데, 그때 마침 열차가 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가지고 열차를 몰던 기관사가 멀리서 그 농부의 거시기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서 큰소리로 막 소리를 질렀다는구만. 좆치워~! 조치워~!”

얘기를 듣고 있던 셋은 민사장의 농담도 농담이었지만, 그의 실감나는 표정과 열차기관사의 다급해 하는 몸동작을 재현해 내는 그의 연기력 때문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상황이 그들의 웃음보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민사장은 열차 기관사의 다급한 상황을 재현이라도 하는 양 두 눈을 큼지막하게 뜨더니, 오른팔을 앞으로 휘~휘~ 내저으면서 익살맞은 웃음과 함께 좆치워를 남발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조치워를 연발하던 민사장의 입속에서 물 한 방울 크기의 어마어마한 침 덩어리가 튕겨져 나갔고, 그것이 호민의 안경에 그대로 처~억하니 달라붙고 말았다. 순간 안경에 쫘~악 퍼진 침 덩어리에 가려진 채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호민의 어리버리한 모습에 최사장과 ‘완’은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민사장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상황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웃겼던지 그만 웃어재끼고 말았다. 그는 이야기 하랴 호민의 모습에 웃으랴 정신없었다. 그 와중에도 손바닥으로 입을 훑어 닦으며 호민을 향해 ‘아이 미안해’ 라는 말과 함께 연신 ‘조치워 조치워 했다니까’라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그것이 유래가 되가지고 그때부터 조치원역이라고 했다는구만.”

민사장의 음담패설과 안경에 처~억하니 붙은 침 덩어리 때문에 어리버리해진 호민의 모습,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팔을 휘휘 앞으로 저어대며 조치워를 연발하는 민사장의 모습에 최사장과 ‘완’은 배꼽을 잡고 웃느라 뒤로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연이어 터지는 상황에 웃느라 정신없던 중, 호민이 갑자기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더니 허공에다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급기야 ‘완’과 최사장은 뒤로 벌렁 눕고 말았다.

“침치워~!, 침치워~!”

성격이 괄괄한 민사장은 평상시에도 입담이 걸쭉하면서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성깔이 묻어나왔다. 그렇게 한 바탕 웃고 난 후 최사장과 민사장은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자기들 방으로 돌아갔다.

“야! 무슨 침 덩어리가 그렇게 크냐! 날라 오는 게 보이더라. 보여!”

“아니, 보이는데도 그걸 못 피하는 거 보면 형님이 상당히 둔한가봐요. 나는 무슨 대포알이 튀어나가는지 알았네요. 눈 안 다쳤어요?”

완이 농을 섞자 호민은 씨익 웃으며 농으로 맞장구를 쳤다.

“응. 그러잖아도 충격 때문에 눈탱이가 좀 멍멍해.”

민사장과 최사장이 돌아가고 없는 둘만 남은 방에서 ‘완’과 호민은 피식거리며 웃어댔다.

“형님”

“응”

아마도 이번 선거에서 당선자가 세종시 초대 시장이 될 것 같네요.

“무슨 소리야. 정말 그럴까?”

“네. 아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그래!”

“네. 피곤한데 잠깐 눈 좀 붙이고 다시 시작하시죠.”

“그러자. 불 좀 꺼.”

그렇게 하루가 또 가고, 투표 시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거운동이 종반에 다다르자 후보들 모두가 총력전에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각 진영의 후보들은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이면 유세차와 운동원들을 동원해 몰려가기 바빴다. 장이 서는 날은 모든 후보들이 거리를 점거한 채 장터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음악을 틀고, 연설을 해대기 시작했다. 후보 진영 간 운동원들끼리도 서로 간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이었다.

그런데 ‘완’과 호민은 그들의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후보가 유세차량에 000 전 대통령과 000 여사의 영정 사진을 걸고 유세를 하러 다니는 것이었다.

“야~ 아직도 저런게 먹히는 동네란 말이야”

“우리도 로고송을 000운동 노래로 했는데요. 뭘”

그랬다. 연기군 지역은 70년대의 향수가 아직도 남아있는 공간이었다. 호민과 ‘완’도 선거유세 로고송 여러 곡 중 한 곡을 000운동 노래를 개사해서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선거사무소에 나오는 주민 중에는 선거운동에 돌입하기 전 유세차량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000운동 로고송을 듣고서는 아주 좋다며 만족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21세기를 향해가는 지역에, 그 상징으로 세종시라는 미래적 가치가 들어서는 곳에서 70년대의 과거 정신이 살아 숨 쉬는 향수가 지역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묘한 기분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 죽은도시의 반란 <7>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