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어린이집 누리과정 우회 지원 결정

시·도교육감협의회 "수용할 수 없다" 반발

보육대란 우려로 국공립 유치원 경쟁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국세 20.27%에서 25%로 올려야”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이 시·도교육청 요구에 턱없이 못 미치면서 당장 2016년 1월 1일부터 보육대란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와 시·도교육청간 누리과정 예산 떠넘기기가 지속되어 왔던 상황에서 정부지원금액이 확정됐다. 그런데도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누리과정을 둘러싼 '힘겨루기' 상황을 정리했다.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안 3000억원 편성=국회는 2일 밤 본회의를 열고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안 3000억원을 목적예비비로 편성해 우회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나마 올해 누리과정 예산 5064억원을 우회 지원한 것에 비춰볼 때 2000억 가량이 준 액수이다. 3000억원 중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냉방시설 미설치 교실 등 학교시설 개선 예산도 포함됐다.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도 예산안에 누리과정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으나 여야는 진통 끝에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우회지원 형식으로 3000억원을 배정했다.

◇교육청 요구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2조1000억원=그러나 이 금액은 시·도교육청이 요구한 액수에 턱없이 부족하다. 시·도교육청이 요구하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2조1000억원이다. 국고로 3000억원이 지원된다고 해도 나머지 1조8000억원은 시·도교육청이 떠안아야 한다. 시도교육감협의회는 3일 "우회지원 방식으로 3000억원을 편성한 것은 예산의 규모뿐만 아니라 누리과정 예산으로 인한 갈등과 혼선을 또다시 반복하게 만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한달 후 다가올 보육대란의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감들 강력 반발=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3일 “우회지원 3000억원은 누리과정 예산으로 인한 갈등과 혼선을 또다시 반복하게 만드는 임시방편”이라며 “한 달 뒤 다가올 보육대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국회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법률적으로 교육감의 책임이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교육청 재원으로는 편성 자체를 할 수 없다”면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대구·경북·울산 등 3개 교육청만 6∼9개월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했다. 14곳은 전혀 편성하지 않았다. 정부 지원 3000억원은 내년 사업비 2조1000여억원에는 크게 부족하다. 정부는 교육 교부금과 지방채 등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이 알아서 충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목적예비비로 예산이 내려온다면 학교시설 고치는 것 등 말 그대로 해당 목적에만 쓰겠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예산을 편성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 또 빚을 내라는데 이미 올해 누리과정 때문에 빚을 냈기 때문에 이미 재정 건정성이 크게 훼손된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시 지방채 발행으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느냐, 마느냐는 시도교육청의 몫이 된 것이다. 유아와 어린이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지역 교육감들도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떠맡은 누리과정 예산으로 지방채가 급증해 '재정위기 지방자치단체'로 지정될 위기에 놓였다"고 호소하고 있다.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조1000억은 중앙정부가 5000억원을 지원하고 시·도교육청이 1조6000억원을 부담했다. 시·도교육청 부담액 중 1조2000억원이 지방채로 충당됐다.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지난 2012년 3월부터 5세아를 대상으로 시작됐다가 2013년부터 3~4세로 확대됐다. 특히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당초 보건복지부가 담당했으나 지난해부터 교육부로 통합되면서 각 시·도교육청은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까지 떠안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한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인건비와 교육사업비, 학교운영비, 시설사업비도 모자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까지 부담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내년도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2525억원은 편성했지만 어린이집 누리과정 3807억원은 편성하지 못했다.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 누리과정은 의무지출 경비=그러나 교육부는 내년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41조2700억원 안에 누리과정 지원금까지 포함돼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9월 지방교육청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은 지방재정법 시행령에 따라 의무지출경비에 해당한다"며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것은 법령위반"이라고 시·도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

◇시·도교육청 예산 4조원 이월, 불용되는데 "돈이 없다고?"=아울러 정부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 따른 취득세 증가와 담뱃값 인상 등으로 인한 지자체 전입금 증가로 내년도 지방교육재정 상황이 올해보다 호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의 예산 중 약 4조원이 매년 이월 또는 불용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재원이 부족해 누리과정 예산편성이 어렵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지방교육재정 여유 있어”=기재부도 내년에는 지방 정부로 가는 교육재정교부금이 올해보다 1조8천억원 늘어난다며 누리과정 예산은 지방 교육청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재부는 3천억원의 목적예비비를 편성한 것에 대해선 "내년에는 지방교육재정 여건이 좋아져 지방 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능력도 크게 늘어나 국고지원 필요성이 올해보다 줄었지만 교육시설 개선 필요성을 감안해 예비비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부동산 거래량 증가 및 담뱃세 인상 효과로 지방교육청으로 들어가는 세수가 크게 늘어났다. 반면에 지방교육청의 전체 누리과정 지출은 총 362억원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여 지방교육 재정에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보육대란 현실화되나=이런 상태면 보육대란을 피하기 어렵다. 어린이집 학부모들에게는 언제 그 여파가 닥치게 되는 걸까.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흐름을 알아야 예측이 가능하다. 학부모는 ‘아이사랑카드’로 어린이집 보육료를 결제한다. 어린이집은 카드회사로부터 돈을 받게 된다. 카드회사는 다음달 보건복지부 산하 사회보장정보원에 대금을 청구한다. 사회보장정보원에서 나가는 돈은 지자체로부터 나온다. 지자체는 이 돈을 시·도교육청에서 받는 구조다. 복지부는 누리과정 예산에서 손을 뗀 상태여서 중간 전달자 역할만 한다. 결국 시·도교육청과 지자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학부모에게 지원이 끊기는 시점이 결정된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대전과 충·남북 3곳을 뺀 나머지 지자체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임시로 편성해 놓은 상태다.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더라도 지자체가 사회보장정보원 쪽으로 돈을 준다면 학부모들은 아이사랑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가 언제까지 자체 예산으로 이를 메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지자체마저 돈을 끊으면 아이사랑카드는 ‘부도’가 난다. 예컨대 내년 1월부터 시·도교육청과 지자체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면 2월부터는 보육대란이 일어나게 된다.

◇국·공립 유치원 경쟁률 치솟아=보육대란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예산이 편성돼 있는 국·공립 유치원의 경쟁률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2일 진행된 서울지역 국·공립 유치원 입학 추첨식의 평균경쟁률은 10대 1 이상을 기록했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은 3일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편가르기가 심각한 문제"라며 "보육대란 우려로 유치원은 경쟁을 치러야 할 정도로 원아가 넘치는 상황인 반면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썰물처럼 다 빠져 나가고 있다. 어린이집 3~5세 77만명은 대한민국 아이들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누리과정 법체계 정비해야=지방교육재정의 대부분은 교부금이다. 그런데 이 교부금이 유동적이다. 지난해보다 올해는 1조5000억원 가량 더 줄었다. 교부금은 세수(稅收)와 연동돼있어 안정적인 상승 추세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야와 중앙정부, 시도교육청 등 누리과정과 관련된 이들이 모여 법체계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 등 일부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국세의 20.27%에서 25%대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