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석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

[에듀인뉴스] 지난 9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종이 정의를 담보하기 전까지 50% 이상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 아니냐"고 주장한 바 있다.

대입 제도에 예민한 학부모들과 사교육업체들의 이권이 상당한 목소리로 반영되는 여론의 기세에 편승해 정치권이 이와 같은 논의를 끄집어내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작년에 온 나라를 ‘정시냐, 수시냐’하며 치열한 진영 싸움을 벌이던 소모적 논쟁이 검은 폭풍의 먹구름으로 또 다시 서서히 드리우고 있는 모양새다. 

예언처럼 들리겠지만, 국영수 교과의 객관식 오지선다형 문항으로 구성된 획일적 시험인 수능 성적에 의존한 대입 정시전형의 확대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미래교육의 본질적 목적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며, 공교육 현장의 황폐화를 불러올 것임이 자명하다.

또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극단적으로 높임으로써 부모의 경제적 배경 차이에 의한 교육 불평등과 모든 영역에서의 지역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사진=김병욱 의원 블로그 캡처) 

사실 긴 맥락에서 보면, 김병욱 의원이 주장한 바는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공약과 함께 추진되는 교육개혁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그 동력에 치명적인 제동을 가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교육개혁의 목표 아래, 2015 개정교육과정의 안착, 자유학기제 확대, 혁신학교 확대, 고교학점제 등을 교육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어제오늘 급조된 정책들도 아니며, 지난 정권들 동안 꾸준히 논의되어온 백년지대계의 교육 계획이었다. 획일적 시험인 수능에 의존한 정시 중심의 대입 제도는 중대한 교육개혁들을 실행에 옮기는 데 항상 역기능으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한 교육개혁 중 하나인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를 선택하는 ‘과목선택제’를 토대로 진로와 적성 중심의 교육과정을 실현할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핵심 교육 공약 중 하나다.

고교학점제의 성공에는 국영수로 대변되는 일부 교과에 편중된 획일적 교육과정을 해소하고 학생들의 진로와 흥미를 반영한 다양한 교과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일이 핵심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학교 현장은 ‘입시중심에서 학생의 성장으로’, ‘경직되고 획일적인 교육에서 유연하고 개별화된 교육으로’, ‘수직적 서열화에서 수평적 다양화로’의 효과를 기대하며, 그간 수능 문제풀이식 교육에서 탈피하여, 배움중심수업, 독서와 토론 수업, 과정중심평가 등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또다시 수능 국영수 문제풀이 만점이 우리 교육의 지상과제로 주어진다면 누가 새로운 교육을 하려 하겠는가? 수능에 의존한 입시 제도로의 회귀는 교육 현장에 개혁의 불길이 서서히 타오르는 와중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지난 달 자사고 재지정 논란과 관련하여 수면 위로 드러난 일부 자사고들의 편법적인 교육과정 운영 실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자사고라는 지위와 재량을 오용하여 오로지 명문대와 의대 진학에 필요한 수능 고득점을 위한 입시 학원으로 학교가 변질되었음을 목격했다. 대학 진학이 수요자들의 가장 큰 요구인 고교 현장의 현실 속에서, 만일 대입제도가 수능 정시가 중심이 된 형태로 개편된다면, 이는 일반고에서 그동안 싹틔웠던 토론과 독서 중심 수업, 참여중심 수업, 과정 중심 평가와 논술형 평가 등 대학 수시전형의 확대를 거름 삼아 끊임없이 시도되어 온 교육 개혁의 묘목들을 모조리 불태우는 화염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20세기 방식의 일회성 일제고사 중심 정책 아이디어가 발의되는 순간, 내일부터 당장 교사들의 수업활동은 고시 대비반 문제풀이로 대체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수능 문제집은 다시금 교과서를 몰아내고, 학교가 애써 실천해온 인성과 창의성 함양을 위한 교과와 교육활동들은 모두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수십 년간 학력고사와 수능 문제풀이 훈련을 위해 고득점을 위한 전략에 맞추어 진화해 온 학원들은 엄청난 호재를 맞을 것이다.

학생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는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 수면을 취하는 일이 일상이 될 것이다. 수능 점수에 따른 고교의 서열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수능이나 학력고사로 돌아가는 일이 가장 간단하고 명쾌한 답안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이 공교육을 희생하여 사교육을 육성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시전형의 확대 여론은 강남, 목동, 분당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서 극도로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팩트다.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업은 분당(을)이 지역구인 김병욱 의원 본인이 정시 확대 카드를 거침없이 꺼내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수시가 사교육의 힘을 더 받는 대입 제도라면, 하필 사교육 의존도가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역에서 아이러니하게 정시 확대의 목소리가 나올 리가 있는가? 대입제도가 수능 정시전형을 중심으로 개편될 경우, 한국 사회는 지역 간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의 암울한 터널에 진입할 것이다.

반면에 과거 강남 8학군과 같은 교육특구의 이른바 명문대학 독점 현상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강남, 목동, 분당 부동산 전성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수시전형을 사다리 삼아 성실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시골 학교의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 지난 10년 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채로운 교육이 시도되는 혁신적 학교들에 성실한 학생들이 다수 유입됨으로써 좋은 학군들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제 굳이 교육특구에 가지 않아도 본인의 학교에서 성실히 교육을 받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유리한 사회경제적 가정배경을 통해 영아 시절부터 사교육의 혜택을 흠뻑 받은 대다수의 학생들은 결국 수시가 아닌 정시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현상은 여러 데이터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딸의 고려대 입학을 놓고 각종의혹이 쏟아지는 가운데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 전형 시절은 지금의 학생부종합전형의 방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당시에는 학교의 교육과정 외적인 요소들이 대입의 성공 요인으로 상당히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종도 한국 공교육 현장의 수많은 변수를 반영하여 끊임없이 진화했다. 예를 들면, 김병욱 의원이 지적하고 있는 봉사시간의 반영 비중은 최근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이 현장의 정설이다. 

이전과 같이 학교에서는 시간 수에 치중한 봉사를 권고하지 않는다. 동아리 활동 또한 문제로 지적되어 온 자율동아리의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분량이 극도로 한정되어 외부의 조력과 관리가 미치는 힘이 상당히 미약해졌다.

교내상 또한 올해 고교 1학년부터 생기부에 기재할 수 있는 수상의 수를 1개로 제한해, 일부 학생들이 수상을 모조리 독점하여 명문대학 합격을 위한 스펙이 되는 것을 막았다.

이렇듯 교육부와 교육청들이 진행해온 학생생활기록부 개편 과정을 간과하고 여전히 현재의 학종을 초기의 입학사정관제로 오해한다면 학생부 종합전형의 개선의 여지와 희망의 싹을 잘라내려는 음모로밖에 볼 수 없다. 

학생부 종합전형을 개선하기 위한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는 바람직하다 하겠다. 이러한 움직임은 교육부와 교육청의 학생기록부 개선안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명문대 입시 실적에 눈이 멀어 교육적 의미가 희박한 교내상과 이름뿐인 자율 동아리를 남발하여 운영하는 등 교육의 본질적 목적과 평가의 공정성에 소홀한 학교들이 없는지를 살펴야 할 때다. 비단 학종 때문이 아니라 학교가 우리의 아이들을 진정으로 교육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했어야 했던 일이다.

필요하다면 민과 관이 협력하여 지속적인 감시와 개선의 수단을 강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부와 국회 차원에서는 학교 단위 평가에 있어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에 대해 공립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립학교의 영역까지 효력을 가지는 더 강력한 제제 수단과 규제안을 강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 교육이 교육부와 정치인들에 통제되어온 하향식 관료주의의 프레임 속에서 일관성 없는 정책들에 의해 혼돈을 겪어온 현장의 모습에 변화를 주기 위함이다.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고령화 등 미래사회를 대비한 새로운 교육체제와 대입 제도를 위한 논의와 결정은 이제 그들에게 일임할 때다.

만일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을 무시하고, 지역 표심을 의식해 일회성 법안들로 백년지대계의 우리 교육을 난도질하는 일이 의원들의 재선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앞으로 미래적 시각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교육체계를 설계하는 일은 요원해질 것이다.  

우리 교육은 가야할 길이 멀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 실현을 위한 길도 험난하다. 우리나라가 또 다른 번영의 밀물로 삼고 노를 저어 가야할 4차 산업 시대가 코앞인데 우리는 그에 걸맞은 교육체제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길은 앞으로 향해있다. 자꾸 본인의 학창시절의 획일적이고 기계적 교육 방식에서 성취하고 효능감을 맛보던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우를 범에서는 안 된다. 

이호석 분당중앙고 교사
이호석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