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비교과 및 특목고·자사고 폐지 "공학적 접근 근본 해결책 아냐"
"대입 개선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목적 설정부터 다시 하라"

유은혜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26일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를 열고, 학종 개선 및 13개 대학 학종 실태조사 세부계획을 밝혔다. 2019.09.26(사진=교육부)
유은혜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26일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를 열고, 학종 개선 및 13개 대학 학종 실태조사 세부계획을 밝혔다. 2019.09.26(사진=교육부)

[에듀인뉴스] 조국 법무부장관 자녀를 둘러싼 대학입시비리 의혹 이후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을 개선할 필요성에 대한 정부와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교육부의 개선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학부모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수 있는 비교과를 없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종이 특목고·자사고 학생들을 대학이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보고 특목고·자사고 일괄 폐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런 공학적 접근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논의의 폭과 방향이 지금과 많이 달라야 한다. 대입전형제도 개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먼저 설정하고 지금 교육부가 검토 중인 개선 방향이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대입전형 개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아래 6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입시경쟁교육 완화를 통한 청소년 웰빙 제고 ▲사회정의(Social Justice) 실현을 위한 대입전형제도 모색 ▲입시중심교육 탈피를 통한 학교교육의 질 제고 ▲대입 신입생 선발의 공정성/투명성 제고 ▲대학 신입생 구성의 다양성 제고 ▲모두를 위한(모든 계층의 학생들을 위한) 개선

현재 교육부가 검토하고 있는 접근은 너무 시야가 좁아 위 6가지 목표 달성은 어림도 없다. 위 6가지가 대입개편의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입시경쟁교육 완화를 통한 청소년 웰빙 제고

최근 OECD가 새로운 학습목표 프레임을 발표했는데 가장 큰 특징이 교육의 최종 결과를 종전의 ‘성공적 삶’에서 ‘개인과 집단의 웰빙’으로 변경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학생의 행위주체성(Student Agency)을 강조한 점이다.

최근 교육과정을 개정한 캐나나 온타리오 주나 핀란드도 웰빙을 교육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이때의 웰빙은 일반적인 삶의 질과 행복도 포함되지만 학교교육의 맥락에서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정의적 건강함을 말한다.

한국 학생들의 정의적(Affective) 건강이 세계 최하위인 점은 PISA 설문을 통해서 잘 알려진 바 있다. 이번 기회에 아동·청소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대입전형 개선을 추진했으면 한다.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대입전형제도 모색

대입전형제도도 사회정의 실현이란 큰 방향을 벗어날 수 없다. 아래 좌측 그림은 불평등이 심하게 존재하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고, 우측 그림은 긍정적 차별정책(Positive Discrimination)을 통해 출신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공정한 대입전형 모색을 위한 기본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대입전형 개편이란 측면에서 우측 그림처럼 기회의 평등이 실현되려면 기본적으로 부모효과(경제적, 문화적 배경이 좋은 가정의 자녀가 누리는 혜택), 학교효과(특목고, 자사고 등 면학분위기 좋은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 등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른 기회균형 선발’이 있기는 하지만 그 비중을 지금의 10%대 초반에서 20%대로 대폭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학이 임의로 정하게 하지 말고 시민의 압력을 통해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자녀들에 대한 긍정적 차별’은 선진국들이 보편적으로 채택하는 정책의 하나다.

△입시 중심교육 탈피를 통한 학교교육의 질 제고

가장 중요한 목적인데도 대입전형제도 개편 논의에서 전혀 논의되고 있지 않는 내용이다. 대입전형이 조금 더 공정해지는 것이 학교교육 질의 악화를 전제로 한다면 이는 바른 접근이 아니다. ‘입시중심교육 탈피를 통한 학교교육의 질 제고’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으며 대입제도 개선 논의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다.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세 가지 방법이 논의되어 왔다. 하나는 대학을 평준화해 상위권 대학을 없애는 일이고(곧 다시 서열이 생기겠지만), 다른 하나는 상위권 대학 입학을 위한 열망을 줄이는 일이며, 마지막은 대입전형과 관련된 ‘성적(내신, 수능)’의 영향력(stake)을 줄이는 일이다.

첫 번째 방법은 지금까지 많이 논의되어왔지만 수반되는 단점이 너무 커서 대학의 질을 함께 높이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 하겠다.

두 번째 접근인 ‘상위권 대학 입학의 열망을 줄이는 일’은 매우 바람직하며 장기적으로 실현도 가능한 일이다. 시간은 걸리지만 대졸-고졸의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 선진국 수준의 사회 안전망의 확충, 공공기관의 일자리 지역할당제 실시 등을 통해 실현가능한 일이다.

세 번째 접근인 ‘성적의 영향력을 줄이는 일’은 기본적으로 학생부의 영향을 줄이고 수능의 자격고사 성격을 강화해 영향력을 줄이는 일이다. 학생부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커서는 학교교육이 정상적일 수 없다. 학생은 3년 내내 학생부의 노예처럼 살아야 하고 교사는 이를 학생 통제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권력관계는 교사와 학생 간에 진정한 인간적 관계 형성을 방해한다.

이상의 세 가지 방법 외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지금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교육의 목적과 관련된 것이다. 현행 교육과정은 역량중심교육과정을 지향하고 있다.

역량은 맥락 의존적(Context-dependent)이기 때문에 평가가 난해하고 평가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지식평가와 매우 다르다. 역량은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가 위주가 되며 루브릭(Rubric)을 통한 자기평가, 동료평가, 교사의 관찰평가 등이 주로 활용된다.

필자는 학교교육이 역량중심교육을 지향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역량중심교육과정 대신 지식의 깊은 이해와 활용을 중시하는 이해중심교육과정(Understanding by Design)을 지향한다 해도 평가의 주관성 증가는 공통적이며 이는 미래교육의 큰 특징이다.

진정으로 가치가 높은 것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지금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평가는 민원을 피하고 상대평가 등급 산출을 위한 것이라 질이 그리 높지 않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의 대입전형 개편 논의는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미래교육 및 평가와 전혀 궁합이 맞지 않는다.

근시안적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좀 더 깊이 있고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울러 ‘비교과 폐지’가 아니라 ‘폐지할 필요성이 없는 제도’를 만드는 접근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비교과를 폐지한다 해도 현재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는 가진 계층의 자녀들이 유리한 조건에서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점은 거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입 신입생 선발의 공정성/투명성 제고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에서는 ‘공정’의 의미가 ‘객관적임’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수능은 객관적인 시험이다. 그러나 공정한 시험은 아니다. 사교육 지원을 통한 부모효과,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의 능력을 측정하는 점, 속도가 중요한 시험인 점 등도 수능이 불공정한 시험인 이유이자 특성이다.

△대학 신입생 구성의 다양성 제고

사회 구성원 및 교실의 학생 다양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인종적, 문화적, 능력적 측면에서 그렇다. 대학은 사회와 교실의 이런 다양성을 수용해서 신입생을 선발해야 한다. 대학이 미래사회를 이끌 인재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 필요성은 명약관화하다. 각 계층을 대변하는 변호사도, 판검사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교수와 교사도 필요하다. 정부가 각 대학을 지원할 때 제1의 조건을 구성원의 다양성으로 할 필요가 있다.

△모두를 위한(모든 계층의 학생을 위한) 개선

현재 대입전형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논의의 대부분이 소위 가진 계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 기회에 못 가진 계층 자녀들의 입장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대입전형’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행 9등급 상대평가를 생각해보자. 9등급 상대평가제도는 3등급 이상인 학생들을 배출하기 위해 등급이 그 이하인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낙인을 찍고 과목 선택의 자유를 묵시적으로 빼앗는 제도다.

매우 잔인하고 불공정하다. 이런 점을 이대로 놔둔 채 공정한 대입전형을 논의하는 것은 위선이며 정의롭지 못하다.

대입전형 논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는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결과적으로는 ‘모두를 위한 새로운 대입전형’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교육부, 국회의원, 교원단체, 시민단체 모두 현재의 표피적 대입개편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최소한 30년지대계로 위 6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능률교육을 창립해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뜻하는 바가 있어 2009년 8월 말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했다.국가교육시스템 재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세계 공교육의 변화 트렌드 연구를 통해 한국 공교육의 근본적 대안을 찾는 데 시사점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능률교육을 창립해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뜻하는 바가 있어 2009년 8월 말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했다.국가교육시스템 재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세계 공교육의 변화 트렌드 연구를 통해 한국 공교육의 근본적 대안을 찾는 데 시사점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