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다문화 음식열전 ⑦ 최고의 다문화 발명품 고추장

(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다문화 음식열전을 연재하면서,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 원래부터 우리의 음식이 아니라 외국에서 전래된 음식들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심지어 한국 고유의 김치조차 지금과 같은 김장을 담근 것은 100여년 남짓 되었고, 그 전에는 무우를 소금에 절여먹는 깍두기 형태였으나, 배추가 들어온 조선시대부터 딤채라는 이름으로 담가먹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실제, 외국으로부터 전해진 식재료들은 굉장히 많다. 아니, 고유의 음식 식재료보다 외국에서 전래된 귀화식물에 의한 음식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수박은 5000년 전 부터 이집트에서 재배되기 시작해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몽골지배 시기인 고려말이었다. 즉 몽골이 중동을 지배하면서 몽골 군사나 원나라를 통해서 들어온 것이 소주와 수박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수박은 '서과'라고 불리었다. 즉 서쪽에서 들어온 과일이라는 뜻이다. 최초의 재배자는 몽골에 끌려가 황후가 된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이라고 한다. 원나라 황실에서 보내준 수박씨앗을 기철이 집에서 재배하여 대신들에게 나누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연산군 때 궁궐에서 재배하여 연회 때 많이 먹었다고 하니, 조선시대에 들어와 점차 궁궐과 양반가를 통해 수박재배가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수박과 함께 여름에 많이 먹는 토마토는 원산지가 아메리카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발견으로 16세기경 스페인과 이탈리아쪽에 전해졌다가 17세기경에 포르투칼과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남만시'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1614년보다는 앞선 것으로 보인다(지봉유설은 1614년에 지어졌다).  

​그 외 구황작물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음식이 감자와 고구마다. 감자와 고구마 역시 그 원산지는 아메리카로 중남미 지역에서 많이 재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자는 안데스산맥 등 고산지, 또는 온대지방에서 재배했기에 주로 북쪽이나 산간지방에서 재배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강원도 사람들을 빗대어 '감자바위'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반면 고구마는 주로 중남미 더운 지방에서 재배되었으며, 감자보다 고온에서 잘 자란다. 

​감자와 고구마는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 스페인쪽에 전해졌다가, 감자생산에 유리한 독일 폴란드 등 중부유럽 지역으로 퍼져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로 고산지나 산간지대, 그리고 추운지방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다.

반면 고구마는 스페인에서 주로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서 생산되다가 필리핀과 중국 남부지역지로 전해지고, 이것이 일본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감자와 고구마는 전분을 이용할 수 있어, 국수로 활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감자국수라든지, 고구마를 사용한 쫄면 등이 그것이다. 

감자와 고구마 외에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옥수수다. 옥수수 역시 중남미 인디언들이 주식으로 이용하기 위해 재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디언의 역사를 보면 옥수수 재배량이 많을 때는 인구가 늘었지만, 옥수수 재배량이 줄었을 때는 인구가 감소했다는 연구가 있어, 인디언들에게 옥수수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아메리카 발견이후 스페인 등지로 전해지고, 전세계로 퍼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외국에서 우리에게 전해진 식재료는 때로는 구황작물로, 때로는 중요한 간식거리로 우리의 식탁을 풍부하게 해왔다. 옥수수는 지금도 중요한 간식거리로, 때로는 중요한 식량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고구마와 감자와 같은 구황작물은 식량이 모자랄 때 우리의 배를 채워주는 식량자원으로 활용되었다. 또 토마토와 수박 등의 과일은 식사후  먹는 후식이나 제철과일의 하나로 애용되고 있다. 

​이러한 귀화식물, 또는 외국에서 전래된 식품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고추이다. 위에서 열거한 식품들도 우리들이 많이 애용하고 있지만, 고추는 이제 한국의 음식과는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적 식재료가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장'음식으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즉 간장, 된장 등이 우리의 가장 오래된 전통음식의 하나인데, 간장, 된장에 고추장이 더해져 우리나라 사람들의 3대 소스(장)로 까지 격상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추장이야말로 '다문화 융합'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고추는 지봉유설 등에서 '고초' 또는 '남만초'로 불리우며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고추를 옛날부터 먹어온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도 있다. 그 근거로 일본에서는 고추가 한반도로부터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그래서 '고려초'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이전에 세종 등의 왕조실록에서 '호초' 라는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세종실록 등에 나오는 '호초'는 지금의 후추의 일종이며 예전부터 한반도에서 사용되었다면, 그 기록이 많을텐데, 중국측 기록(본초강목에는 고추에 대한 기록이 없다)이나 우리의 기록에 고추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한반도에서 전해졌다는 일본의 고추기록과 달리 일본에서 발간된 '초목육부경종법'에는 1542년 포르투갈 사람이 고추를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중국 기록에서 16세기 이후에 고추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그것도 중국 남부 지방에서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한반도 전래보다 더 늦게 나오고 있다. 따라서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필리핀이나 오키나와 등을 통해 전해진 것인지는 정확한 사료에 나오고 있지 않지만, 대체로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여 한반도에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지봉유설에 명백하게 고추를 '왜 겨자'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일본의 '대화본초'나 '물류칭호' 등에서 한반도에서 고추가 전해졌다고 기록된 것은 고추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즉, 고추 번식력이 매우 강한 식물로 그 지역에 따라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될 뿐 아니라, 개량된 품종들이 바람에 의지해 서로 교배하여 또 다른 품종으로 진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 전해진 후에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품종이 만들어졌고, 그에 따라 청양고추(청송, 양양지역 고추) 등 지역에 따른 특이한 품종들이 나타났다. 따라서 그렇게 개량된 다양한 품종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추측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고추 품종은 동남아시아나 멕시코 등지의 고추와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매운 정도는 약하지만, 당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동남아시아 고추는 위 등에 흡착력이 약하지만, 한반도에서 자란 고추는 위 등 인체 내에 흡착되어 그 강도가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동남아나 중국 남부의 고추는 입은 얼얼하지만, 속이 쓰리지 않는데, 한반도에서 자란 고추는 입도 매울 뿐 아니라, 오래 지속되고 속까지 쓰린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늦게 전래된 고추가 어느 외래 식품보다 우리 식탁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처음엔 이름 그대로 '고초(苦草)'라고 불리울 정도로 매우 꺼리는 식재료였다. 심지어 소주에 고추를 타먹다가 죽었다는 기록도 나올 정도로 고추는 '독초'에 가까운 식재료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식재료, 식품이 되었다. 그 이유는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이 젖산균의 발육을 돕고'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보존하는 기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구나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은 젓갈의 비린내 등을 막아주고, 음식이 상하는 것을 늦추는 기능을 하는데다 우리나라 고추의 높은 당도는 음식의 맛을 내는데도 좋은 재료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고추의 붉은 기운이 '잡귀신'을 물리친다는 관념까지 가미되어 간장 등을 담글 때도 숯과 고추를 띄우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집 대문에 고추와 소나무 가지, 숯을 걸어놓는 풍습까지 생겨났다('고추', '솔잎 가지' '숯'은 모두 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 

어찌되었든 고추가 가지고 있는 기능으로 인해 우리나라 음식에서 빼놓으면 안되는 중요한 식재료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김치는 물론, 국을 끓이거나 음식을 만들어먹을 때 고추가루는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 되었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창조성이 가미되었다. 바로 우리 전통의 소스(간장, 된장)의 하나로 고추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추장이 만들어진 것은 1700년대 후반 쯤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1800년대 초에 정리된 '규합총서' 등의 책에는 순창과 천안 고추장이 지역의 명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1765년에 지어진 '증보 산림경제'에는 "콩으로 만든 말장 가루 한말에 고춧가루 세홉, 찹쌀가루 한 되를 재래식 간장(청장)에 침장한 뒤 햇볕에 숙성시킨다"는 방법이 기재되어 있다. 

이렇게 담근 고추장은 재료에 따라 '찹쌀고추장', '밀가루고추장', '보리고추장', '고구마고추장' 등이 있으며, 음식을 먹을 때 초고추장, 쌈장 등으로 변형되어 각종 식재료를 찍어 먹는 소스가 되었다.

또 무우, 마늘 등 각종 식재료를 고추장에 담가 '고추장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 수단이 되었고, 비빔밥이나 비빔국수 등을 만들어먹는 소스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고추장과는 다르지만, 발효되지 않은 고추가루 버무림(다대기)을 만들어 음식에 넣어 먹고 있다. 

지금 한국사람에게 있어 '된장', '간장'과 함께 '고추장'은 가장 기본적인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심지어 해외 여행을 갈 때, 간장과 된장은 챙겨가지 않지만 고추장은 챙겨갈 정도로 고추는 우리 입맛을 장악해버린 식물이 된 것이다.

마치 조선 초에 전해진 배추, 그리고 100여년 밖에 안된 결구배추로 만들어진 김치가 우리 식탁을 장악한 것처럼, 고추도 국내에 들어온 지 4~500년 수준인데도 우리의 식탁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고추장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대단한 발명식품이 아닐 수 없다. 즉 외래 식물인 고추의 특성과 우리의 전통인 발효식품 만들기(장담그기)가 결합되어 '고추장'이라는 아주 훌륭한 다문화 발명품이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고추장을 가지고 만드는 '떡볶이' 등 음식이 세계인의 길거리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각종 비빔밥과 비빔국수의 소스로 활용되고, 각종 찌개를 끓일 때 사용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식탁을 장악하고 있는 최고의 다문화 음식 발명품은 '김치'와 '고추장'이 아닐 수 없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홍보국장, 민관협력포럼 창립 및 운영위원을 거쳐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을 지냈으며 총리실 산하 재한외국인정책위원회 실무위원, 교육과학기술부 다문화 교육정책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고자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와 국내 최초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레인보우 합창단은 G20정상회담 특별만찬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 등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 중이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홍보국장, 민관협력포럼 창립 및 운영위원을 거쳐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을 지냈으며 총리실 산하 재한외국인정책위원회 실무위원, 교육과학기술부 다문화 교육정책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고자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와 국내 최초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레인보우 합창단은 G20정상회담 특별만찬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 등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