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 저, 김선형 역, 살림, 2019006.21)
'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 저, 김선형 역, 살림, 2019006.21)

◆ 프로로그

“나이가 젊기 보단 나이 들어가는 여성의 시선으로 한번 읽는 것이 더 나을 거예요, 한번 읽어봐요.”

누가 내게, 아니 나를 좀 아시는 분의 권유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책을 읽는 것은 단순한 독서라기보다 ‘카야 되어보기’ 같은 일종의 미션이었다. 그렇게 가을 밤 조용히 책읽기가 시작되었다.

◆ 카야 되어보기

‘아침마다 카야는 일찍 일어나서 엄마가 분주하게 요리하는 소리가 날까 봐 귀를 쫑긋 세웠다.’

이 문장을 만나면서 눈물이 났다. 일곱 살 계집애가 가출한 엄마를 그리는 아픈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카야를 드디어 습지가 키우다니! 대지를 엄마로 둔 아이의 슬픔에 가슴이 벅찼다.

52년. 카야가 어린 소녀였던 시절과 69년 체이스 살인 사건의 시간이 교차한다. 인간의 시간도 과거와 현재를 아니, 심지어 미래까지 교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 아니 어쩌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책을 열자 52년과 69년 그 시간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서 ‘체이스의 살인사건’과 이 카야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물론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긴박하게 전개되었지만 결국 마지막에 나타나게 될 반전을 어쩌면 작가가 시간의 씨실과 날씨 속에 숨겨놓았을 것이라는 것을 영리한 독자라면 직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체이스의 오만하고 부도덕한 파렴치함이 누군가에 의해서 반드시 응징당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기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시를 쓰던 카야를, 빌딩 숲에서 만나다

◆ 살해당하다!

우리의 현실에선 사악하고 위선적인 인간이 잘도 살아가지만 정직한 작가의 시선은 그런 형편없는 인간을 반드시 사라지게 해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상처투성이 카야가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그리고 그 아픔이 보듬어지길 간절히 바랐던 내게 체이스의 죽음은 어쩌면 통쾌함이었다. 카야 만큼이나 체이스의 버림 때문에 분하고 화가 나 체이스의 죽음에 통쾌(?)해하던 나는, 어쩌면 그의 살인에 공범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카야가 되었다.

◆ 시를 만난 카야, 그리고 어맨다 헤밀턴

‘엄마와 조디가 떠나고 처음으로 숨 쉴 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카야의 그 느낌. 상처 말고 다른 ‘뭔가’를 카야와 함께 느꼈다. 카야에게 필요한 것은 보트와 그 소년이었다. 카야를 제대로 숨 쉬게 해주는 구원. 혹은 사랑.

테이트와의 조우. 우리의 삶에 테이트 같은 ‘구조’가 때로 필요하지 않을까싶다. 카야를 구조할 테이트란 구명보트가 구멍 난 ‘가짜’ 혹은 가다가 방향을 틀어 카야를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릴 엉터리가 아니길 바라며 불안한 시선을 이어갔다. 그러나 나쁜 예감은 잘 틀리지 않더란 명언이 또 적중했다.

‘시란 사람한테 뭔가 느끼게 만드는 거지. 테이트 아버지는 진짜 남자란 부끄러움 없이 울고 심장으로 시를 읽고 영원으로 오페라를 느끼며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스커퍼는 거실로 가면서 어깨너머로 외쳤다. 웬만한 시는 다 외웠는데 이제는 다 잊었어. 하지만 여기 있다 내가 읽어주마. 그는 테이블에 걸터앉아 시를 읽기 시작했다.’

테이트가 시를 배웠고, 테이트의 시를 카야가 배웠다. 카야에게 시는 구원이었다. 나중에 가서야 카야에게 시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지만, 나는 사실 체이스의 살인범을 확인한 반전보다도 시를 쓰던 카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더 크게 놀라움으로 다가왔었다.

카야의 밀봉된 시가 주는 충격은 늘 시집을 내고 싶어서 어설픈 시를 써갈겨대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들킨 것 같은 당혹감으로 또 한 번 그녀에게 나를 대입시키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카야 속에 또 다른 카야가 시인이 되고, 시가 그녀를 구원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구원의 공식이었다. 그러한 구원이 없었다면 카야는 살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 버려짐의 배신감과 무서움과 외로움으로 어디든 향해야 했을 분노와 슬픔이 홀로 늪과 습지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남으려면 그녀에게는 숨구멍과 구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머니 같은 습지가 그녀를 길러내고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을 베풀었듯, 그녀의 영혼을 구원해 내는 데는 사랑과 시가 필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 시가 그녀를 고통에서 건져내는 한 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날 집 앞 바닷가를 거닐며 가는 좋아하는 amanda 해밀턴의 시를 마음 속으로 읊었다.’

빛바랜 달아, 내 발자국을
따라와 
뭍의 그늘이 끊지 않은
빛을 헤치고
서늘한
친구의 어깨를 느낀
내 감각을 함께 나눠줘

너 밖에 몰라
찰나의 면이
외로움으로
까마득하게 늘어져
다른 모서리에 닿는지
모래사장에서 시간이
썰물처럼 빠지면
얼마나 많은 하늘이
한숨에 담기는지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 달 뿐이었다. 나도 그것을 안다. 달과 하늘뿐이다. 외로움에 허망함이 빠져나가는 그 텅 빈 공간은 달과 하늘 밖에 알지 못한다. 그녀가 알았던 것을 나도 안다. 그리고 ‘좋아하는 amanda 해밀턴에 시를 읊는 나’를 찾아내며 그녀를 다시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나르시스트임을.

그녀가 테이트를 잃었던 상처는 꽤나 깊었다. 누구나 손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과 이별이라 할지라도 어떤 이에게는 그 이별이 치명적일 수 있다. 덜 자란 남자애가 입힌 상처가 그저 그렇고, 누구나 한번쯤 있을 수 있는 상처라고 해도 카야에게는 꽤나 깊었다.

그런 상처가 누구에게나 있고 그리고 별것 아닌 듯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목숨을 걸 만큼 깊고 또 깊고 그리고 치명적일 수 있다고 카야는 느꼈고 그리고 나도 함께 느꼈다.

누구나 다르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인간이니까. 또 한 번 나는 카야가 되었다.

‘심장이 제자리를 찾은 후에 카야는 해변에 서서 시를 생각했다.’

일몰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석양은 굴절되고 반사되지만
결코 참 되지 않다
어스름은 위장이라
발자취를 덮고
거짓말을 덮는다

어스름의 기만을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찬란한 색채를 보며
지평 아래로 해가 저물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급기야 쓰라린 화상을 보고야 만다
일몰은 위장한 채
진실을 덮고 거짓을 덮는다

-A. H.(어맨다 헤밀턴)

내 가슴을 들여다본 듯 같은 시를 보고 나의 마음은 계속 화상을 입었다. 불에 댄 듯 화끈거렸다. 그 화상을 입힌 불똥은 아만다 해밀튼이고 카야였다. 그녀의 시는 내 시였다. 그렇게 나는 카야를 보는 내내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점점 그녀가 되어갔다.

◆ 카야의 사랑, 절망 혹은 구원

‘이제껏 살아오면서 읽기만큼 즐거운 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테이트가 자기처럼 가난한 백인 쓰레기에게 왜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왜 어여쁜 기타를 들고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카야는 묻지 않았다 괜히 물어봤다 테이트가 생각이 많아져서 떠나버릴까 봐서.’

이 글을 읽으며 느꼈다. 카야는 많이 배우지 않았고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현명했구나. 섣불리 꼬장꼬장 따져 물어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는 순간, 갖고 있던 거의 전부를 잃기도 함을 경험해본 나는 카야의 현명함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게. 생각이 많아지면 떠난다는 법칙을 왜 나는 몰랐을지. 습지와 늪만이 가르칠 수 있는 비밀이라 도시에서 자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했었나보다.

‘카야는 어맨다 해밀턴의 시를 생각했다.’

책 본문 일부.(사진=조윤희 교사)
책 본문 일부.(사진=조윤희 교사)

이제는 가야만 해
너를 떠나보내야 해
사랑은 너무 자주
머무를 이유라지만
가야 할 이유는
흔치 않지
난 밧줄을 놓고
표표히 멀어지는 너를 바라봐

내내
너는 생각 했어
연인의 젖가슴
맹렬한 물살이
심연으로 너를 잡아끌었다고
하지만 해초와 함께
표표히 흘러가도록
너를 놓아주는 건
내심장의 조류

그래. 가야 할 이유가 머물러야 할 이유보다 더 많고 클 때도 나는 어쩌면 머물러야할 이유가 항상 더 크다고 느껴왔는지 모른다. 어리석음이다.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인지도 모른다.’

공부도 많이 하지 않은 카야가 사랑의 진실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연이 키우는 사람이 어쩌면 인간이 키우는 사람보다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카야를 보면서 느꼈다. 습지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것’을 보며 사랑을 터득해간 카야가 시를 가지고 놀 줄 몰랐다면, 그래서 자신의 욕망 속에 끔틀거리는 裸身(나신)을 풀어줄 수 없었다면 그 긴 공포와 분노의 시간들을 견딜 수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어맨다 해밀턴의 시를 보며 느꼈다.

그녀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를 속삭여 읊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시를 갈고 닦아 날카롭게 벼리기도 하며 습지와 늪의 사람이 되어 갔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노래도 하고 통곡도 했다. 사랑도 했고 죽음도 만들었다. 그리고 끝내는 시인이 되었다!

난 습지와 늪이 그렇게 다르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러나 습지에서 자라 그 곳에서 배우고 거기에서 성숙해지는 그녀를 지켜보고 그녀의 생각을 따라 다니다 카야처럼 되어갔다. 그러나 카야가 되어보는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카야는 평생 자신이 스스로 만든 벽에 둘러싸여 외로움을 떨치지 못했음을 마지막에서야 깨달았다. ‘반딧불’이라는 시 속에 숨겨져 있던 그녀의 비밀. 그의 죽음으로 맞바꿀 만큼 그녀는 진심으로 체이스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사랑은 단 한 사람에게만 모든 것을 걸 만큼 하나뿐인 것일까.

체이스와 테이트. 그 둘 중에 카야를 더욱 사랑한 사람은 테이트가 맞을 수 있겠지만, 카야 가 진심으로 사랑한 것은 어쩌면 테이트가 아닌 체이스가 이니었을까. 어쩌면 둘 다가 아닌 어맨다 해밀튼, 그 자신이었을지도.

그게 누구든, 맞아도 아니어도 상관없고 몰라도 상관없다. 인간은 동시에 여러 명을 사랑할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카야는 진실한 사랑을 갈구했으면서도 어쩌면 진실한 사랑은 하지 못한 채 평생을 외로움의 벽 속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비밀을 결코 살아생전 테이트와 공유할 수 없었기에 짐작해 볼 뿐이다. 인간은 그렇다. 그게 인간인지 모른다. 이제 카야를 떠나보내고 나의 외로움도 다시 봉인한다. 잘 여며둔 사랑도 그리고 외로움도 다시 꺼낼 일은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니던 카야가 이제 떠났으니까.

“카야, 안녕.”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