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하나고 교사

교사에게 수업권과 평가권을 돌려주자

(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대한민국 교사에겐 수업권과 평가권이 없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교사가 매일 수업하고 정기고사 문항을 출제한다. 그러다 보니 수업권과 평가권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 모든 법적 권한이 교사에겐 없다. 오직 교장에게만 주어진 법적 권한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①항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④항에는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했다. 제25조 ①항은 “학교의 장은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인성(人性)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여 학생지도 및 상급학교의 학생 선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자격을 부여했다.

이렇게 학업성취도 평가는 교장의 법적 권한이다. 그래서 교장이 학업성취도 평가 권한을 교감과 교무부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 수업과 평가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발생하는 근거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치기본권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당황스러운 것은 기본권마저 박탈된 정치적 금치산자 처지인 교사가 학교에선 ‘민주주의’와 ‘정치’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현실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교육은 ‘삶’과 ‘현실’을 말할 수 없다. 아니 말해선 안 된다. 그저 공허한 이론이나 빠르게 변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하고 낡은 과거 지식에 얽매여 가르친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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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ns 캡처)

얼마 전,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출제했던 부산의 모 고교 3학년 한국사 문항을 두고 이를 정치 쟁점화하며 비난하는 모습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참으로 안타깝다. 

한국사 교과목에서 요구하는 성취기준 내용을 살펴보면 교사의 과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참고로 성취기준이란 해당 교과목 학습에서 학생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말한다. “4・19혁명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남겨진 과제를 설명할 수 있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2015 교육과정에서도 유사한 성취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 “4․19혁명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룩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이해한다.”

그렇다면 한국사 과목의 이 성취기준에서 요구하는 4·19혁명으로부터 이후 오늘날에 남겨진 과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학생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남겨진 과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검찰 개혁’, ‘언론개혁’, ‘정치개혁’ 등이 오늘날 남겨진 과제라고 답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검찰 개혁’이라는 시의성 있는 문항을 출제했다고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며 직무를 배제하고 징계까지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다. 돌이켜 보면, 정치기본권도 부여받지 못한, 정치적 금치산자인 교사에게 ‘민주주의’와 ‘정치’를 가르치라고 하는 현실이 더 황당하고 코미디 같다. 그러니 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교사 김구, 교사 안창호, 교사 안중근, 교사 신채호, 교사 윤봉길, 교사 함석헌 등은 교사이자 민족 지도자로 살았다. 

징계 대상자를 찾자면, 우리의 하루하루 삶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터무니없이 잘못된 법체계를 방관한 채, 법 개정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입법부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이 바로 징계 대상이다. 교육 문제를 정치 쟁점화해 마녀사냥을 일삼는 그들이 바로 징계 대상이다. 

검찰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시험 문항을 출제해 논란이 됐던 부산 A고교에서는 14일 재시험을 치렀다. 부산시교육청은 이날 2차 조사를 하고 문제가 된 해당 교사를 직무에서 배제했다고 한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학생 시험문제에 끌어들인 것은 분명 잘못됐다”라며 “정확하게 조사해서 교단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엇이 교단을 바로 세우는 것인지 교육청 관계자는 성취기준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부터 다시 살펴볼 일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루라는 것이 ‘보이텔스바흐’ 원칙의 제2원칙이다. “논쟁적 주제에 대한 교실 논쟁 재현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그것이 바로 공허한 이론 공부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이정표와 정확하게 겹쳐지는 삶을 위한 교육이다.

차라리 그냥 수준을 낮춰 문항이 객관성과 신뢰도를 갖추고 있었는가, 주어진 <보기>의 정보가 답지의 선택에 간섭이나 충돌은 없었는지, 연결이 매끄러웠는가를 비판했다면 그나마 수준 있는 비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르치라는 성취기준에 충실한 문항을 두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와 정치 쟁점화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직무배제와 징계까지 운운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인가. 

현재 우리 사회는 교사에게 수업권과 평가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일제 강점기 법체계의 야만성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정치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정치’와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이 현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교사들의 슬픈 운명인가. 

그 시기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단재 신채호, 안중근, 윤봉길, 함석헌 선생님 등 과연 이분들이 21세기 오늘을 살았다면 민족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 하나고 교사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 하나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