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국내 도입 시 우려와 혼란에 대하여

Q. 우리 교육 과정과 전혀 다른 외국 교육 과정인가
Q. 지식 교육을 덜 해서 학력이 저하되는 것 아닌가

[에듀인뉴스] 지난 4월 IBO((International Baccalareaute Organization)와 대구교육청, 제주교육청은 서울에서 국제바칼로레아(IB) 한국어화 추진 확정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도입을 확정했다. 생각을 꺼내는 수업과 평가의 신뢰도 확보라는 도입 명분과 기존에 혁신을 추구해 온 교수 방법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팽팽한 의견 대립 속에서 IB는 뜨거운 감자였다. <에듀인뉴스>에서는 IB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그간 쌓인 질문을 중심으로 한 Q&A 기획을 1부 평가시스템, 신뢰할만한가 2부 우리 교육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3부 국내 도입 시 우려와 혼란 등에 대하여 준비했다.

(출처=https://blog.naver.com/topbirds)
(출처=https://blog.naver.com/topbirds)

▲우리 교육과정과 전혀 다른 외국 교육과정인가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IB는 교육 목표의 방향이 서로 다르지 않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이미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교육을 통해 전인적 인간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IB는 이러한 목표를 더욱 충실히 실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우리 교육과정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 교육과정의 목표를 더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교육환경 체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에 명시된 문장들은 매번 훌륭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평가되지 못했을 뿐이다. IB는 교육과정-목표-수업-평가의 일관성을 잘 구현하고 있다.

일본도 IB를 도입할 때 자국의 국가교육과정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검토했는데, IB의 교육철학이 일본이 추구하는 교육과 매우 합치한다는 것이 도입의 좋은 명분이 되었다. 일본이 추구하는 교육과정의 목표는 학습자 주도의 탐구적 질문 기반 학습인데, 이 역시 IB의 교육철학과 매우 잘 부합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IB를 국가교육과정과 동일하게 인정한다.

IB는 결코 외국 교과서의 내용을 배우고 정해진 정답을 익히는 수업이 아니다. 새로운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기를 뿐이다. 교과서는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기존의 모든 교과서를 다 사용할 수 있다.

“역사가 사회 변화를 가속화한다는 관점에 대해서 논하라”라는 문제가 제시된다면, 학생들은 우리 역사와 세계사에서 배운 정보와 지식을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길러진 우리 아이들의 능력은 외제가 아니라 우리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지식 교육을 덜 해서 학력이 저하되는 것 아닌가

학부모 중에 자녀가 IB 학교를 처음 다니기 시작할 때, “이 학교는 수업을 안 해요. 도대체 가르치지를 않아요” 하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인터넷 명강사처럼 잘 설명해 떠먹여 주는 수업을 원하는 학부모들은 IB 학교에서 교과 내용을 제대로 안 가르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수업 중에 교사들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학생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데다 교사가 매끄럽게 강의를 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처럼, IB 수업을 하게 되면 지식 교육을 덜 하게 되어 우리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걱정은 교육에 대한 매우 다른 철학에서 기인한다. 예컨대 역사 수업을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국사든 세계사든 고대, 중세, 근현대사까지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다 외워야 한다. 하지만 IB에서는 전 시대를 아우르며 많은 정보를 얕게 외우는 것이 역사 수업에서 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시대적·정치적·문화적·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 역사 교육에서 목표로 삼아야 할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2차 세계 대전 하나만을 몇 주간 혹은 한 학기 내내 공부하기도 한다. 히틀러가 왜 그런 판단을 했고, 당시 독일 국민은 왜 그런 사람을 투표에서 뽑아 주고 지지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2차 대전 당시에 히틀러가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자기 전에 읽었을 법한 책, 당대의 언론 매체나 베스트셀러 등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한다.

그렇게 하나의 전쟁을 두고 한 학기 동안 깊게 파고들다 보면 청일 전쟁이든 동학 혁명이든 미국 남북 전쟁이든 러시아 혁명이든 분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 인류 역사의 수많은 전쟁을 당시의 정치·사회·문화·경제 맥락에서 분석해 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역사적 사실들을 좀 더 많이 외우지 않았으니 학력이 저하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IB에서는 다른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국어 수업도 마찬가지다. 문학 작품에 담긴 저자의 의도라고 출제자가 정해 놓은(심지어 그 작품의 작가도 정답을 맞히지 못한다는 사례들이 종종 알려져 있다.) 정답은 못 맞힐 수 있지만, IB에서 고득점을 받는 아이들은 마치 문학 평론가처럼 평론을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저자의 의도와 다른 관점에서 탁월한 평론을 한 경우, 이것을 학력 저하라고 볼 수 있을까.

IB 수업을 하자는 것은 지식 수업을 하지 말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지식은 필요하다. 다만 지식을 얼마나 숙지했는지 까지만 평가하고 끝내는 것, 이것을 하지 말자는 뜻이다. 한쪽 극단을 버리라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동학 혁명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불가피하게 했다는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는가”와 같은 역사 문제나 “문학 작품은 허구임에도 진실을 추구한다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는가”와 같은 국어 문제에 대해 2시간 동안 설득력 있는 답안을 쓰려면 결코 지식이 허술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지식을 정보처럼 숙지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잘 엮어서 자신의 관점을 개발하는 데 녹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은 학생들이 기존의 우리 공교육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이를 학력 저하라 할 수 없다.

단지 다른 종류의 학력이 길러진 것이다. 그리고 이 다른 종류의 학력이 전 세계 명문대에서 인정받고 선호되고 있다.

* 출처=IB를 말한다(창비교육) By 이혜정, 이범, 김진우, 박하식, 송재범, 하화주, 홍영일

국내에 IB를 소개하고, IB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해 온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IB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힌 책 'IB를 말한다' 표지.(이미지=창비)
국내에 IB를 소개하고, IB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해 온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IB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힌 책 'IB를 말한다' 표지.(이미지=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