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 경기 광성초등학교 교사

논어와 대학의 가르침..."교사가 중심을 잡아야"

[에듀인뉴스-명교학숙 공동기획] 학생들의 인성교육 방향 정립을 위해 고전(古典)을 활용한 교육이 떠오르고 있다. ‘명교학숙’은 이러한 교육계의 움직임을 리드하는 초·중등교사 연구모임으로 동·서양 인문고전을 탐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명교학숙과 함께 고전을 통해 우리 교육 현실을 조명하고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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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낚시의 달인'이었던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

하루에 읍내 나가는 버스가 네 번밖에 되지 않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취미가 붕어낚시였다.

대밭에서 적당한 굵기와 길이의 대나무를 골라 그늘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그 말린 대나무로 낚시대를 대신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나일론줄을 대나무 끝에 묶고, 줄 끝에서 조금 위에 속이 빈 플라스틱찌를 고무에 끼우고, 마지막으로 오늘날과 비교하면 투박하기 그지없는 바늘이라는 것을 줄 끝에 묶었다.

어린 아이의 오랜 기다림은 끝나고 일요일 아침 일찍 집 앞 두엄더미를 헤쳐 잡은 토실토실한 지렁이를 양철통에 넣은 다음 친구와 긴 논둑길을 따라 의기양양하게 우리의 낚시터로 향한다.

먹음직스러운 지렁이를 낚시바늘에 꿴 후 부들 수초 옆에 던져 놓으면 지렁이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손바닥 만한 붕어가 금새 찌를 하늘 높이 올려준다. 두 아이는 연신 올라오는 아침 햇살 받은 은빛 붕어의 찌맛, 손맛에 하루해가 중천에 뜬지도 모르다 그제야 붕어의 입질이 끝남을 알아채 버린다. 양철통에 담긴 붕어전리품을 들고 로마의 개선장군처럼 개선문을 통과하는 순간 이른 아침부터 나간 막내아들을 걱정하며 기다리신 어머니의 고함이 나팔소리를 대신했다.

마을에서 두 아이는 소년 낚시꾼으로 명성이 자자해졌고, 이른 아침부터 붕어를 낚으러 가는 아이들을 격려하시는 어르신들의 기대와 낚시꾼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두 아이는 온 정신을 붕어 낚는데 두었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精神)을 집중(集中)하여 노력(努力)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成就)할 수 있다)’이라는 한자성어를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미꾸라지를 잡아 모은 용돈으로 문방구에서 파는 비싼 대나무 낚시대도 장만해보고, 새로 나온 플라스틱찌도 사보았다. 그런데 비싼 낚시대와 찌를 산 뒤에 오히려 어획량과 씨알이 하락하는 믿기 힘든 결과를 받고 말았다.

그러다 두 아이는 깨닫게 되었다. 붕어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싼 낚시대도 찌도 아닌 대상 어종인 붕어의 생태와 습성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것을. 붕어의 생태와 습성을 더 잘 알기 위해 붕어를 잘 잡는 동네 형이나 아저씨에게도 물어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붕어를 알아야 붕어를 잡는다"

붕어를 잡기 위해서는 낚시의 대상인 붕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듯이 인간을 교화하고 교육함에 있어 거창한 어떤 교육이니 기자재를 바꾸니 교사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니 등을 떠나 교육의 대상인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낚시의 성공여부에 있어 붕어의 생태와 습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듯 교육에 있어 아이들의 정서와 행동, 교육환경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붕어의 생태에 있어 서식하는 자연환경의 차이에 의해 붕어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유속이 있는 강이나 작은 하천의 붕어는 체형면에서 연못이나 저수지의 붕어보다 유선형의 체형을 보여준다.

같은 연못이나 저수지라도 서식지 부근 수초와 바닥 흙의 종류에 의해서도 체색이 달라진다. 연밭은 어두운 색 계통, 뗏장은 황금빛, 부들이나 마름 등에서는 밝은 색 계통의 체색을 보인다. 오염된 물에 서식하는 붕어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찐득찐득한 체액을 배출하여 보호막을 형성한다.

아이들의 교육환경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서로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 지역을 비교해보면 아이들 교육환경의 차이를 실감한다.

아이들의 학력 수준은 부모의 소득수준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게 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부진아나 지진아로 전락한다.

부진아나 지진아로 전락한 아이들은 떨어진 학력을 스스로 복구할 수 없기에 오염된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고, 또래의 무리를 형성해 자신의 열등감을 상대적 우월감으로 바꾸려는 일탈행위를 보이기도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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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다른 아이들 "교육의 시작은 아이들의 이해에서"

아이들은 붕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할 체액을 분비할 수 없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같이 느껴줄 교사의 관심과 이해이다.

낚시꾼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수많은 곳에서 낚시를 하다 보면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붕어의 습성을 체득하게 된다.

갓 알에서 부화해서 나오거나 몇 년 안 된 조그만 붕어 녀석들은 촐싹대고 먹이도 못 삼키니 입질다운 입질도 보여 주지 못한다.

손바닥 크기를 넘어 월척 못 미치는 7치에서 9치 정도 되는 붕어 녀석들의 입질이 가장 시원하고 거침이 없다. 혈기가 왕성하고 먹이에 대한 탐욕은 경쟁을 뛰어 넘어 뭍으로의 외출까지도 불사한다.

월척을 넘어 선 붕어들은 매우 진중하고 외부환경에 매우 민감하며 입질도 점잖다. 단 입질은 점잖해도 챔질할 때의 그 육중함과 주변의 환경에 주는 물결의 파장은 매우 크다. 월척 이상의 붕어를 낚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과 더불어 행동의 조심성은 낚시꾼의 필수이다.

초등학생은 공적인 교육 현장을 처음 접하는 단계이므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 시행착오를 교정하고 사회화 과정을 밟게 해 주어야 하는 교사의 책임이 매우 커지는 시기이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의 교정이나 순화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에 비하면 수월한 시기이기도 하다. 중학생들은 행동과 정서의 형태를 보면 거침이 없다.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정서의 불안정성, 직접적이고 강렬한 감정표현,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 반항과 더불어 자신의 의사나 감정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반사회적이고 일탈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시기이다.

그에 비해 고등학생들은 교육환경에 오래 재직했고,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인지 행동이 앞의 두 부류보다 점잖고 즉흥적인 모습의 발생 빈도가 낮다. 교사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원숙미를 보이며, 자신의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변호함에 있어 기성세대를 놀라게 한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 소위 ‘사건’이라는 것을 치면 그 파장이 해당학교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고 간혹 기성세대의 행태를 뛰어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대하는 교사들에게는 섬세한 주의와 접근이 필요하다.

수십 년을 대물붕어를 잡기 위해 전국의 저수지를 헤매고, 붕어에 대한 생태와 습성을 완전히 체득하고, 다양한 자연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장비들을 장만하였어도 4짜가 넘는 대물붕어를 볼 수 없었다.

대물낚시꾼으로서의 자존심과 인내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어느 추운 2월 혹시나 해 한 사람의 낚시꾼도 없는 저수지를 나 홀로 차지하고 밤낚시를 했다. 추운 2월 어떤 붕어가 밤 11시 넘어 입질을 하겠느냐 스스로 되물으며 물가에 앉아 있던 낚시꾼은 실패, 실망, 자책, 분노, 슬픔, 우울이라는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가운데 던져놓은 35대의 찌가 서서히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몸이 반응을 안 하는 것이다. 시신경에서는 뇌에 신호를 보내는데, 뇌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공부와 체험을 통해 스스로의 동굴에 갖혀 있던 낚시꾼은 이 추운 밤에 어떤 붕어가 입질을 하겠냐라며 찌의 신호에 불신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늦은 챔질로 인해 뗏장 언저리에서 달빛에 반사된 황홀한 체색만을 보여준 채 낚시꾼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토록 염원하고 열망했던 대물붕어가.

붕어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붕어의 생태와 습성에 대한 이해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낚시꾼의 마음이다. 자신의 낚시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원하는 붕어를 볼 수가 없다. 자신이 중심이고, 자신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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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정서와 행동, 교육환경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을 이해하는 당사자이며 주인공인 교사가 제일 중요하다. 교사의 마음이 흔들리면, 교사의 마음이 중심을 잃으면 교육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상대하기에도 지도하기에도 힘이 든다.

교육 현장의 주관자이며, 아이들의 후견인이며, 모든 교육활동을 계획하고 제어하는 역할과 책임을 지고 있는 주체로서 교사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자기 자신을 지키기에도 힘든 시대와 환경에서 살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하루에도 수 백 번 몸을 휘감는 실패, 실망, 자책, 분노, 슬픔, 우울에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든 날이 더 늘어간다. 교육현장에 있으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 중에 가장 제어하기 힘들고 수많은 악감정을 파생시키는 감정이 화냄, 즉 분(忿)이더라.

인간은 격정에 휘말릴 때가 아니라 잠시 멈췄을 때 오히려 스스로의 존재감을 똑똑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공자께서도 《논어》 '계씨'편에서 화가 날 때는 그것으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분노를 참지 못하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은 결국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도 모르는 경우도 많고 불연 듯 일어나기에 그 감정에 당황해서 바로 표출하면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마음에 와 닿았던 아래 구절을 이 허접한 글을 읽는 분들께 조용히 소개해 본다. 또한 이 구절이 험난한 교육현장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애쓰시는 선생님들의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대학》 〈경1장〉 “멈출 것을 안 다음에야 정해지는 것이 있고, 정해진 후에야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으며, 고요해진 후에야 편안해질 수 있고, 편안해진 후에야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한 후에야 얻을 수 있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잠시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감정의 격랑을 느낄 때 우리 모두 잠깐 멈추고, 잠시 내려놓아 보자.

유영삼 경기 광성초 교사
유영삼 경기 광성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