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종교 속 다문화: 불교와 도교, 무속의 융합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는 최고신이었던 아버지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지위를 차지했다.(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원래 종교는 지구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각 종족의 수호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등지에서는 각 지역, 마을, 도시마다 다양한 수호신이 존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최고신이 생겨나고, 그 외의 신들은 각 영역을 관장하는 하위 신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이, 수메르에서는 아누와 엘릴, 엔키가, 그리스에서는 제우스가 최고신의 지위를 차지했다. 

최고의 신도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수메르에서는 어느 도시가 패권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최고신이 달라졌고, 바빌로니아 시대에 와서는 아누와 엘릴, 엔키는 어디가고 마르둑이 최고신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리스에서도 제우스가 최고신을 차지하기 전에 농경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최고신에 크로노스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신들은 각자의 영역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이러한 지역, 도시, 종족의 신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보편적인 신으로, 정신으로 바뀌었다. 유대민족의 유일신 야훼는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인류 보편적인 정신세계를 갖추게 되고, 야훼(알라)도 유일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인도 최고신인 브라만의 정신세계는 석가모니에 의해 '무아'를 자각하는 보편적 세계관을 갖게 돼 세계종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계 보편종교로 탈바꿈된 지역과 민족의 종교와 신은, 그 종교가 전파되면서 각 지역과 민족의 토속신앙과 결합하는 종교 융합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중국에 전해진 불교는 중국 전통의 도교와 결합하였으며, 만주와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유목민족의 샤먼과 결합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한반도에 존재하는 불교는 중국의 도교와 북방유목민족의 '샤먼'이 융합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또 우리 전통의 샤먼(무속)도 불교적 색채가 가미되어 불교의 정신세계와 무속의 정신세계의 경계조차 모호하게 변화되었다. 지금 한국의 불교에서 제례의식의 하나가 되어 있는 49재는 원래 불교에 있던 제례의식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유교의 제사와 샤먼이 가미된 의식인 셈이다. 

각 사찰에서 산신령을 모시는 칠성각, 삼신각 등은 어디까지가 불교이고 어디까지가 도교, 어디까지가 무속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서 이번엔 종교 속에서 나타나는 다문화 융합현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불교와 도교, 무속의 융합현상에 대해 두 가지 대표적 사례가 있다. 첫 번째는 전통적 샤먼(무속)과 외래 종교인 불교의 결합을 살펴볼 수 있는 "바리데기 공주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각 사찰에 스며든 도교와 샤먼(무속)의 실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바리데기 공주는 무속신앙과 불교의 융합을 드러내주는 설화다. (사진=ebs 캡처)

​바리데기(무조신) 공주 이야기
흔히 우리나라의 무속 신앙의 시조신인 바리공주, 바리데기, 오구신 등으로 알려진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는 한반도 북부 함경도 지방에 원형이 있고, 동해안이나 영남, 경기, 충청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한반도 동부와 중부지방에 퍼져 있는 바리공주 이야기는 전남 등 서남쪽에는 단순한 형태의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어, 지역적으로는 약간의 내용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에 불라국이라는 나라에 오구대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왕비를 맞이하라는 신하들의 간청에 따라 길대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길대부인의 미모 등에 반한 오구대왕이 혼인을 늦추라는 조언을 듣지 않고, 일찌감치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딸만 계속 낳게 되었다. 길대부인이 7번째 아이를 배고 태몽으로 용 등의 길몽을 꾸어 남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화가 난 오구대왕이 아이를 내다 버리라고 했는데, 마구간에 버리면 말이 따르고, 외양간에 버리면 소가 따랐다. 그러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아주 멀리 내다버리라고 명령을 내리니, 어머니인 길대부인이 이름만이라도 지어서 버리자고 간청해서 이름을 "바리데기(버려진아이)"로 짓고, 옥함에 담아 강물에 띄어 보냈다. 후에 비리공덕 할배와 할매가 옥함을 발견하고 바리데기를 주어다 길렀다. 

바리데기가 15세 되던 즈음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게 되어, 노부부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바리데기는 통곡을 했는데, 바리데기를 버린 오구대왕은 불치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지나가는 청의 동자(고승)가 알려주길 오구대왕의 병은 오직 서천서역의 생명수, 즉 저승의 동대산에 동수사가 지키는 약수만이 낫게 해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들은 길대부인이 6명의 딸에게 다녀올 것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피하기만 했다. 이에 어릴 때 버린 바리데기를 찾아 나서서 비리공덕 노부부를 찾게 되고, 어머니 길대부인과 바리공주는 해후를 하게 되었다. 궁에 들어가 가족들을 만난 뒤 바리데기는 곧바로 약수를 구하러 저승길로 떠났다. 

저승길을 가는 바리데기의 길을 안내하는 데는 밭을 가는 노인과 빨래하는 할멈이 나온다. 또 다른 버전에는 석가세존과 지장보살이 나온다. 바리데기는 밭을 가는 노인의 일을 대신해주고, 할범의 빨래 일을 대신해서 칭찬을 받고 황천수 앞에 도착해서 황천수를 지키는 군사에게 할멈이 준 삼색꽃과 방울을 흔들니 군사들이 비켜주어 나룻배를 타고 황천수를 건넌다. 건너는 동안에 각종 영혼들이 지옥의 고통을 호소하는데, 바리데기가 이들의 영혼을 구원해준다. 

​바리데기가 동대산에 도착해 동수사(또는 무장승)을 만난다. 동수사는 옥황상제를 지키던 무사인데, 벌을 받아 동대산에 내려와 있었다. 그는 남장을 한 바리데기가 여자라는 것을 눈치채고 같이 살며 아이 셋을 낳아줄 것을 요청한다. 왜냐하면 옥황상제가 벌을 내리면서 아이 셋을 낳으면 다시 하늘로 올라올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리데기는 동수사와 결혼해서 아이를 셋을 낳았다. 그러자 동수사는 약수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약수물을 떠서 나오자, 동수사는 아이를 내버려두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에 바리데기는 지체없이 그곳을 떠나 부모가 있는 불라국으로 돌아왔다. 오는 와중에 장례행열을 만났는데, 3년전에 오구대왕이 죽은 뒤 바리데기를 기다리느라 장례식을 미루다 치르는 오구대왕의 장례행열이었다. 바리데기가 오구대왕의 관을 열고 뼈에 가져온 꽃을 뿌리니 살이 돋아났다. 이어 입에 생명수를 넣으니, 죽었던 오구대왕이 살아나서 부녀가 눈물의 포옹을 하였다.

그 후 오구대왕이 상으로 바리데기에게 불라국의 절반을 떼어주겠다고 했지만, 바리데기는 이를 거절하고 지하세계의 신이 되길 자청해 고통받는 영혼을 구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또한 바리데기를 따라온 세 아들들도 지하세계의 염라대왕 등의 신이 되어 저승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시조신 격인 바리공주에 얽힌 설화의 줄거리다. 

그런데 이 설화에서 불라국이라든지, 석가세존, 지장보살, 지옥 등 불교적 내용이 곳곳에 가미되어 있다. 바리데기는 우리나라 전통의 무속신앙으로 오구굿 등 각 지역의 굿을 하는데 빠지지 않는 무속 서사시인데, 그 서사시 속으로 불교 내용들이 스며든 것이다. 즉 보편 종교인 불교와 토속신앙인 무속이 만나 융합적 설화가 된 것이다. 

사찰의 삼성각 내부의 벽화는 불교적이기 보다는 신선과 산신령(호랑이)가 결합된 도교, 또는 무속신앙과 가깝다. 

​사찰에 스며든 도가 사상과 무속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처럼 토속신앙에 보편종교인 불교적 내용이 스며든 경우도 있지만, 그 역으로 사찰이라는 불교적 공간에 스며든 도가, 또는 토속신앙인 무속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49재와 사찰 대웅전 뒤편에 있는 칠성각 등 삼신각의 존재가 그것이다. 

사람들이 불교 의식으로 알고 있는 49재는 실제 불교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다. 불교는 '무아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윤회설조차 석가모니의 설법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석가모니는 브라만교 교리의 핵심인 '아트만(초월적 자아)'에 대항해 물질적 자아든 초월적 영혼이든 없는 것(무아)이라고 설파하였다.

따라서 죽은 영혼이 저승세계의 7대왕의 심판을 받게 되고, 그 심판을 통해 좋은 곳에 가게 되면 이승에 있는 가족들에게 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으로 해석해서 49재를 올린다는 이론은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영혼조차 없는데, 그 영혼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49재는 조상신을 모시던 유교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신라시대 당나라의 신라방 등의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 죽은 영혼의 안식을 기원했던 것에 대한 기록은 있다. 

고려시대에도 그 같은 의식이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49재가 성행한 것은 조선에 들어와서 였다. 즉, 유교의 조상신 제사의식과 불교의 윤회사상이 결합되어 하나의 종교의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즉, 비불교적인 것이 불교적인 옷을 입고 정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비불교적인 것이 불교적인 옷을 입고 정착한 것이 많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사찰마다 대웅전 뒷 쪽에 지어진 칠성각 또는 삼신각이다. 그곳에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신선과 함께 산신령이라 취급되는 호랑이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중국의 도교(신선사상)과 한국의 무속신앙(칠성각, 또는 삼신할미)이 불교 속에 들어앉아 불교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무학대사나 도선비기 등 풍수지리와 연관된 도참사상도 불교와 아주 밀접히 연관되어, 무엇이 불교적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즉, 풍수지리나 각종 점술들이 불교적 옷을 입고 성행함으로써 불교와 무속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이는 조선조 억불숭유정책으로 불교와 무속이 함께 탄압당함으로써 산속으로 가고, 민간신앙속으로 스며들어 함께 공존하게 됨으로써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즉, 조선조의 억불숭유정책으로 불교와 민간신앙이 함께 공존하고, 그속에서 어느것이 불교적이고, 어느것이 무속인지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다. 

또 조선조의 왕가에서 선왕의 명복을 빌며 세운 각종 능침사찰(봉선사, 봉은사 등 봉이라는 글자를 쓰는 사찰들이 대표적 능침사찰이다)에서 지내던 각종 제사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민간 무속신앙의 경계를 무너뜨린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삼각산 도선사 49재.(사진=도선사)
삼각산 도선사 49재.(사진=도선사)

사찰의 사적으로 남아 있는 당간지주들도 신성한 곳에 표찰을 세워 표시를 했던 우리 고유의 소도나  당집 등의 기원과 결합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지금도 몽골이나 시베리사 샤먼이 제사지내는 장소에 깃대를 세워 표시를 하고 있다). 

온갖 내용들이 버무려져 실체조차 애매한 염라대왕와 미륵신앙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염라대왕과 미륵신앙에 대해 불교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기원과 내용에서는 불교와 거리가 멀다. 염라대왕은 인도 힌두교의 최초의 인간인 야마(기독교의 아담 같은 존재)에서 기원한다. 즉 가장 먼저 태어났기에 가장 먼저 죽어 저승세계를 주관하는 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으로 건너와 도교에서 인생을 주관하는 10왕의 다섯 번째 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다가 권선징악 등의 생각과 결합되어 사후 지옥세계를 주관하는 신이 되었다. 물론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불교의 몇 몇 경전에서 지하세계에서 심판을 받으러 끌려가는 장면 등이 존재하지만, 이를 주관하는 것으로 염라대왕이 등장하는 것은 중국 도교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통일신라에 전해져 시왕신앙(십왕신앙)이 되고, 고려와 조선조에 와서 죽은 사의 명복을 비는 49재와 연결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제주도 등의 무속신앙에는 시왕맞이굿 등이 존재한다.

이런 것을 볼 때, 힌두교에서 출발한 야마가 중국에서 염마가 되어 인명을 주관하는 10왕신의 하나가 되고, 다시 한반도에 전해져 염라대왕으로 굳어진 것으로 판단된다(앞서 이야기한 바리데기공주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무속신앙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게 해준다).

​또 하나 불교적이지 않으면서 완전한 불교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미륵불신앙이다. 즉, 미륵 신앙은 미래를 관장하는 태양신 미트라가 변형된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미륵부처는 부처 사후 56억 7000년 후에 찾아올 미래 부처를 의미한다. 그가 와서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했던 나머지 중생들도 빠짐없이 구제한다는 사상이다. 

이는 "무아"에 입각한 깨달음을 기본으로 하는 붓다에서 "중생구제"의 대승불교로 나아왔는데, 미륵신앙은 이것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것이다. 

불교가 보편화되면서 각 지역과 나라의 토속신앙 속에 들어가 융합적인 토속신앙을 만들기도 했고(무속신의 조상인 바리데기 이야기), 다른 한편으로 불교 속에 토속신앙과 각종 신앙이 결부되어 그 경계를 구분 짓기 어려운 습속들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동남아의 소승불교와 중국 북쪽의 대승불교와 라마교뿐 아니라,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성격이나 습속이 매우 상이한 경우가 많다. 즉 한국식 불교, 중국식 불교, 일본식 불교, 태국식 불교, 티벳, 몽골식 불교 등이 나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