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이야기...학생의 글쓰기와 선생님의 글짓기

[에듀인뉴스] 선생님과 학생들은 교실과 교실 밖에서 하루하루 추억을 쌓아가며 1년을 보내게 된다. 이 추억을 소중히 오래 간직하기 위해 교단일기를 기록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에듀인뉴스>에서는 작년부터 190여편의 교단일기를 써온 최창진 경기 안성 문기초등학교 교사의 교단일기를 연재,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속마음을 그대로...'아이들의 글쓰기'

[에듀인뉴스] 이번 주는 아침 마다 주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먹은 것’, ‘금요일’, ‘공부’ 등의 주제를 주고 자신의 경험과 평소 생각을 써보게 했다. 지난 주는 일회성 도전이었다면 이번 주부터는 우리 반의 특색활동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나는 오늘 아침에 공기를 아주 많이 먹고 왔다. 공기가 너무 맛이 없었다. 밥을 먹고 싶었는데 늦어서 어쩔 수 없이 공기만 엄청 많이 먹었다. 너무 배고프다. 빨리 점심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아이고. 그래서 오자마자 급식 식단표를 확인했던거구나... 공기만 많이 먹고 왔다는 표현이 안쓰러웠다. 밥 더 먹어도 뭐라고 안 해야지...

'금요일'을 주제로 쓴 아이의 글쓰기.(사진=최창진 교사)
'공부'를 주제로 쓴 아이의 글쓰기.(사진=최창진 교사)

“공부를 해야만 똑똑한 사람일까? 굳이 중학교 문제를 초5에 미리 풀고, 알아야 할까?ㅠㅠ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가 많다. 공부를 한 과목으로 단축하면 좋겠다. 굳이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아도 한 과목만 집중해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아,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겠다.”

가슴이 아프다. 이 학생은 요새 미지수가 들어간 방정식을 푼다. 기계적으로 열심히 그리고 잘 푼다. 그런데 그걸 왜 하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아이의 표정은 없다. 한 문제 금방 풀고 다음 문제로 또 그 다음 문제로.

'금요일'을 주제로 쓴 아이의 글쓰기.(사진=최창진 교사)
'금요일'을 주제로 쓴 아이의 글쓰기.(사진=최창진 교사)

“금요일에 학원 끝나고 버스 타고 올 때마다 커피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왜냐하면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놀아도 되니까^^”

글을 읽으며 상상했다. 학교 끝나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 버스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 아주 편한 자세로 누워 유튜브를 보고 쉬는 모습. 학교 밖에서 모습이 궁금했는데 글 하나로 많이 알게 된 모습이다.

흐뭇한 표정으로 글을 읽고 있으니 아이들은 누구 글을 읽는 건지 궁금한 모양이다. 혹시 자기 글은 아닌지 자꾸 내 눈을 쳐다보지만 아이들 궁금하라고 모른척한다. 쓰라고 할 때는 투덜대더니 막상 내 반응이 궁금한가보다. 청개구리들.

꾸밈과 포장..."나는 무엇을 쓴 것일까"

아이들이 떠나고 나도 글을 쓴다. 몇 일 전에 도착한 재외국민학교 근무 신청 공문이다. 재외국민학교란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자녀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계속 관심이 있었지만 워낙 경쟁률이 높아 짐짓 포기만 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도전 하고 싶었다. 바로 교감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교장 선생님께 추천서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갑작스런 요청에도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감사했다.

“싱가포르? 멋진데? 준비 잘해서 도전 잘 해보라고!”

기왕이면 가장 경쟁률이 쎈 곳을 선택했다. 지원서부터 자기소개서, 교육활동실적, 교육계획서 등등 준비해야할 서류가 한무더기다. 깜짝 놀랐다. 글쓰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일단 나는 자기소개서를 써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기가 엄청 힘들었다.

“저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사람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일도 해봤고 저런일도 경험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를 포장하고 꾸미고 있었다. 알맹이는 없는데 껍데기만 화려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교육활동실적도 마찬가지였다. 숫자로 표현되는 수상실적도 없고 내노라하는 연구도 한 적이 없다. 매일 아이들은 웃길 수 있는 건 실적이 아니겠지? 공수표를 남발한 교육계획서까지...

힘들어서 같은 학년 선생님들께 하소연을 했는데, 대답이 명언이었다.

“그건(스펙) 그걸 원하는 사람한테나 필요한 거죠. 매일 아이들과 잘 지내고 나 스스로 행복을 느낀다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 나는 글짓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삶을 가꾸는 솔직한 글쓰기를 요구하면서 정작 교사인 나는 삶을 꾸미는 글짓기를 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썼던 글을 모두 지우고 내 것만 적으려고 노력했다.

뽑는 건 뽑는 사람 마음이고, 쓰는 건 쓰는 사람 마음이니까.

최창진 경기 안성 문기초등학교 교사. 아이들과의 소소한 교실 속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유쾌한 초등교사로 작년부터 ‘6학년 담임해도 괜찮아’ 밴드에 매일 교실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글을 읽은 선생님들이 남긴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는 댓글을 보며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는 최 교사는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하는 교사로 살고 싶다고 한다.
최창진 경기 안성 문기초등학교 교사. 아이들과의 소소한 교실 속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유쾌한 초등교사로 작년부터 ‘6학년 담임해도 괜찮아’ 밴드에 매일 교실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글을 읽은 선생님들이 남긴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는 댓글을 보며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는 최 교사는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하는 교사로 살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