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준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

윤상준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
윤상준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

[에듀인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목표이자 방향으로 ‘혁신’, ‘포용’, ‘공정’, ‘평화’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날 연설에서 발표한 입시 제도 개편안 마련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의 불공정성 해소를 위한 입시 제도 개편안에 정시 비중 확대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는 시기를 기준으로는 수시와 정시로 나눌 수 있고, 그 특성에 따라서는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학생부 종합 전형(이하 학종)은 과정의 평등을 강조하는 전형이다. 반면에 수능은 결과의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수능 중심의 정시가 입시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각자의 개성과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외우고 문제 풀이를 숙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획일화된 입시에 대한 반성으로 수시가 도입되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수시의 비중이 차츰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수시의 확대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우리나라의 교육이 미래 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교육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 일조해 왔다. 특히, 수시의 확대로 학교 교육은 생동감이 넘치고 활동적으로 바뀌었으며, 학교 교육과정도 학생들 각각의 능력을 존중하여 진로 탐색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를 추진했던 정부가 약 2년 만에 교육의 불공정성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정시확대를 발표하였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그렇다면 정시확대는 교육의 불공정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수능이 고소득층에 유리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등에서 실시한 여러 연구와 조사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에도 강남과 목동 출신의 학생들이 서울대학교 정시모집에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수능 확대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이 교육의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애당초 성장배경에 따라 출발선이 다른 학생들에게 공정한 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학생들의 능력(적성이나 잠재력)은 각자 다양한데, 시험이라는 하나의 획일적인 기준으로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것도 모순이다.

결국, 정시확대가 공정성을 높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정시가 확대되면, 그동안 쌓아온 교육 혁신을 위한 노력마저 소용없어지게 되고, 역량중심교육이나 고교학점제 등과 같이 미래지향적인 교육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대입제도에 대한 논의가 학생 선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논의의 초점을 학생 선발에만 맞추게 되면, 입시가 교육현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간과하게 된다. 따라서 대입제도가 교육의 과정이든지, 결과이든지 반드시 교육의 흐름과 연결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미래형 인재가 갖춰야 할 역량으로는 의사소통, 창의성, 비판적 사고, 협력이 강조되고 있다. 한편, 세계 교육개혁의 담론들은 교육에서 ‘존엄(Dignity)’과 ‘행복(Wellbeing)’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표준화 시험이 확대되면, 학교는 창의성이나 비판적 사고보다는 정답에 초점을 맞추는 학습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교는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어렵게 되고 결국, 다시 경쟁과 차별에 내몰린 학생들은 행복이 아닌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또한, 교육정책 간의 연계성도 치밀하게 고려해야 한다. 다른 정책들과 별개로 대입정책만을 보게 되면, 정책 간 충돌이 발생하고 현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진로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 신장을 위해서 과목별 성취기준 제시, 자유학년제, 고교학점제, 과정중심평가, 학생중심(주도)수업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러한 교육정책들은 사실상 학생들의 학습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므로, 수능의 영향력이 커지면 정책 추진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시확대를 추진하려고 한다면, 기존의 정책들과 어떻게 맥을 같이 할 수 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물론, 학종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정시가 확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의 획일화된 기준으로 공정성을 판단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매우 시대착오적인 일이며, 현재 교육 변화의 흐름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입시에 대한 논의가 아닌, 입시 중심의 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논의를 해야 할 때이다. 국가 수준에서 공교육에 대한 우려와 불신의 종식을 위한 책임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여 학생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고교서열화의 근본이 되는 대학의 서열화를 어떻게 해소하여 포용과 평등을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

마침 올해는 건국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이어서, 앞으로 다가올 100년의 소망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의 길을 모색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