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신라와 페르시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사진=jtbc 캡처)

[에듀인뉴스] 지금 서울 강남 한복판에는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딴 '테헤란로'가 가로질러 있다. 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엔 서울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라는 이름을 딴 '서울로'가 존재한다.

이것은 70년대 경제개발을 하면서 한국과 이란이 우의를 다지는 차원에서 각자의 수도에 서로의 이름을 딴 거리를 조성하기로 한 것에서 이름붙여진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지금의 아이돌 그룹과 같이 한류를 주도하던 것이 드라마였던 때가 있었다. 그 중 '대장금'이라는 사극이 가장 인기를 끌었는데, 중동의 대장금 열풍은 이란에서 일어났다. 

이란은 '아리안의 나라'라는 뜻을 갖고 있는 명칭이다. 그리고 아리안족은 신석기 말기와 청동기 초기에 북쪽에서 이란과 인도쪽으로 남하했다. 그들은 인더스 문명을 파괴하고, 인더스 문명의 주인이었던 드라비다족을 인도 남쪽으로 밀어내며 인도 북부지역을 장악했다.

또 메디나 왕국의 속국으로 있던 이란 지역에서 키루스 대왕(키루스2세)이 나와 메디나를 멸망시키고 중동의 전 지역을 장악하는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형성했다. 그 후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 당한 뒤, 부침을 거듭하다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아랍제국에게 멸망당한 후 회교국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와 고려에서 중동과 아랍의 대명사는 페르시아였다. 가야의 김수로왕비였던 허황옥이 가져왔다는 석탑도 파사석탑(파사는 페르시아의 한자어이다)이라고 했고, 괘릉의 수호 석상도 페르시아 무사상으로 알려져 있고, 헌강왕 때 처용의 출신국도 페르시아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에 들어온 아랍 상인들도 페르시아 상인들로 알려져 있다. 고려가요 쌍화점에 알려진 '회회아비'도 페르시아 또는 아랍상인으로 알려져있다. 그처럼 페르시아는 우리나라와 친숙한 관계였던 것이다. 

이것은 페르시아와의 거리를 생각할 때,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만주 등과 관련한 역사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머나먼 중동의 페르시아 이야기가 우리 역사에서 수없이 보이는 것은 특이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더욱이 그 중간에 있던 동남아시아 각 국가와 인도 등의 이야기는 거의 비치지 않는 반면, 유독 중앙아시아 지방의 소그드와 함께 페르시아 관련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는 것은 그만큼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 회교국가로 여성의 활동이 극히 제한된 이란에서 우리의 전통 사극인 대장금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은 대목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즉, 사극은 외국인들에겐 낯선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전통사극으로서 그 분위기나 내용은 외국인들이 보기엔 생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포조차 없는 이란에서 '대장금'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서적 공감대가 바닥에 깔려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

이처럼 수만리  떨어진 페르시아의 이란과 신라의 한국 사이에 흐르는 정서적 공감대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이를 역사적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매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과 페르시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너무도 흡사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와 김유신의 누이이자 문무왕의 어머니인 문희의 결혼이야기, 그리고 이란에서 전해지는 "쿠시나메"가 있을 것이다. 

(사진=재능tv 캡처)

​먼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날 이야기는 신라시대 경문왕에 대한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어느날 경문왕이 잠에서 깨어나보니 귀가 커져있었다.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귀는 자꾸 커지자, 경문왕은 하는 수 없이 의관을 만드는 복두장을 불러 귀를 가릴 수 있는 모자를 만들게 했다. 그렇게 해서 복두장은 경문왕의 당나귀 귀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경문왕은 당나귀 귀가 세상에 알려질까 염려하여 복두장에게 절대 발설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다. 

​사실을 알면서도 말을 할 수 없었던 복두장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이에 의원을 불러 치료할 약을 부탁하니, 의원은 약을 주지 않고 속에 담아놓은 말을 풀어놓으면 나을 수 있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복두장은 의원의 말대로 할 수가 없었다. 

​병세가 더 깊어져 죽을 날만 기다리던 복두장은 죽을 때 죽어도 속시원히 말이나 하고 죽자는 생각에 인적이 없는 대나무 숲으로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는 소리를 연거푸 외쳤다. 그렇게 진실을 풀어놓은 복두장은 10년 묵은 체증이 뚫리듯 가슴이 시원해졌고, 병도 나았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바람이 불때면 대나무숲이 일렁이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는 소리가 울려나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터키지역에 존재했던 프리지아의 미다스 왕 이야기에서부터 전해지고 있다. 미다스는 영어로 마이다스로 디오니소스로부터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는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전해지는 왕이다. 그 왕이 신들과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음악을 듣다가 신들의 음악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아폴론의 노여움을 사서 '당나귀 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폴론에 의해 당나귀 귀가 되었던 프리지아의 왕 미다스. (사진=세계신화연구소)
아폴론에 의해 당나귀 귀가 되었던 프리지아의 왕 미다스. (사진=세계신화연구소)

그래서 복두장을 불러 귀를 가릴 수 있는 두건을 제작하게 하고 발설하지 말 것을 명령했는데, 이 복두장이 참을 수 없어 구덩이를 파고 그속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후 그 자리에 갈대숲이 자라고, 바람에 갈대숲이 일렁일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신라 경문왕과 프리지아 미다스 왕의 당나귀 귀 이야기는 삼국유사와 그리스 신화에서 전하고 있다. 

당나귀 귀 이야기는 유럽에서는 그리스, 루마니아,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전하고 있으며, 아시아권에서는 터키, 투르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몽골과 한국, 그리고 인도에서 전하고 있다. 주로 투르크 계열 유목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프리지아가 부여족이 되었다는 설과 신라 김씨의 조상인 중국의 투후 김일제씨족이 메디아 출신의 투르크 계열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즉, 미다스가 존재했던 프리지아가 메디아왕국이 되고, 다시 키루스 2세에 의해 페르시아 제국이 되면서 스키타이와 투르크 계열의 종족들이 퍼져나간 나라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달되었다는 것이다(인도의 경우 불교 창시자인 붓다의 부족이 샤카족으로 석가모니는 샤카족의 승려라는 뜻이다). 

​이 외에 페르시아와 신라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설화가 또 하나 있다. 다름아닌 김유신의 누이이자 문무왕의 어머니인 문희와 관련한 이야기다.

김유신의 누이에서 언니 보희와 동생 문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언니 보희가 소변을 누었는데, 그 소변이 너무 많아 도시가 물에 잠기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보희는 부끄러워 말을 못하는데, 문희가 비단과 꿈을 바꾸자고 해서 문희에게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 문희가 김춘추와 연분이 닿아 문무왕을 낳았다는 이야기로 삼국사기 문무왕조에 전하고 있다.   

​이같은 이야기가 페르시아에서도 똑같이 전해지고 있다. 바로 헤르도투스가 지은 '역사'에서 전하는 페르시아제국의 키루스2세 탄생 설화이다.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가 무너지고 터키와 시리아 이란 일대를 장악한 왕국은 메디아왕국이었다. 그 왕이 아스티아게스이다.

하루는 아스티아게스가 딸인 만다네가 오줌을 누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오줌이 강을 이루고 도시를 잠기게 하고 아시아 전역을 잠기도록 하는 꿈이었다. 

​이에 점술가를 불러 해몽을 해보니, 만다네가 낳을 아들이 메디아 왕국을 삼킬 것이라는 불길한 꿈이라는 것이다. 이에 위협을 느낀 아스티아게스는 딸 만다네를 궁벽한 시골인 이란지역의 제후국왕인 캄비세스에게 시집을 보낸다. 그러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을 하였다. 만다네가 아들을 낳자 군대를 파견해 죽이려했는데, 이를 눈치챈 만다네가 키루스2세를 목동에 안기고 도망가라고 했다. 이에 목동이 자기의 죽은 아이를 키루스2세라고 속이고 몰래 길렀다. 

​키루스2세가 자라면서 왕의 품격을 보이면서 캄비세스에 이어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후 자신을 죽이려던 아스티아게스의 메디아를 쳐들어가 외할아버지인 아스티아게스를 죽이고, 메디아를 멸망시켰다. 그후 바빌론으로 진격해들어가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구약성경에서 비유대인이면서 유일하게 선지자로 칭송받는 사람이 고레스대왕인데, 그가 바로 키루스2세이다.    

이렇듯 페르시아와 신라에서 공통으로 공유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이야기와 삼국통일을 한 문무왕과 최초의 세계제국을 이룩한 키루스2세의 탄생설화는 너무도 닮아 있다. 

또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쿠시나메"는 신라의 태종무열왕과 문무왕 때를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랍제국에게 멸망당하며 마지막 황태자였던 아부틴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당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마지막 황태자인 아부틴을 쫓던 아랍제국에서 당나라 조정에 강력하게 항의하자, 아랍과 충돌을 우려한 당나라 조정에서는 아부틴에게 더 멀리 동쪽으로 가서 숨어살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아부틴은 신라로 건너와 살게 되면서 문무왕과 함께 삼국통일전쟁에 공을 세우게 된다. 공을 세운 후 태종무열왕의 딸과 결혼시켜줄 것으로 요구하고, 32번째 딸인 파라랑 공주와 결혼을 한 후 고국 페르시아를 향해 떠난다. 페르시아로 가던 배 안에서 아들인 페레이둔을 낳게 되었다. 페르시아에 도착한 후 아부틴은 아랍제국과 전투를 하다 숨지게 되고, 그의 아들 페레이둔이 천신만고 끝에 페르시아제국을 부활시킨다는 이야기다. 

이 "쿠시나메"는 10세기 전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며, 이란의 인기있느 대서사시로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1만 2천 문장이 넘는 방대한 양으로 그 절반 이상이 아부틴의 신라생활 이야기이다. 신라를 사철 꽃이 피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살고 있는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신라의 삼국통일전쟁에 대해서도 곰단(공주인듯)을 쳐들어가는 장면 등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지고 있다.  ​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시나메를 각색한 뮤지컬 '바실라'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시나메를 각색한 뮤지컬 '바실라'

이렇듯 신라와 페르시아 사이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유되고 있다. 미다스 왕과 경문왕 편에서 공통으로 실려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설화와 소변으로 도시를 잠기게 하는 키루스2세 탄생설화와 문무왕 탄생설화가 빼다박은 듯 닮아 있다. 또 10세기 페르시아에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쿠시나메 서사시에서 신라 삼국통일의 전쟁이야기와 신라인들의 생활상이 실증처럼 묘사되고 있다. 또한 울산지역의 처용설화나, 괘릉의 아랍 호위무사상도 전해지고 있다. 

​한국의 전통 악기로 우륵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알려진 '가야금'도 그 기원은 페르시아에 있다. 페르시아의 전통악기인 '창'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쟁'이 되었고, 이것이 파락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달되면서 '속악'과 '가야금'이 된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최치원). 특히 우리나라 음악에서 속악(페르시아 북쪽의 소그드 왕국의 음악)의 영향이 많아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속악'이 유행하였던 것으로 최치원은 전하고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신라의 김씨 왕족이 흉노 김일제를 넘어서서 페르시아 출신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는 연구도 존재한다(투후 김일제 묘에 대해 중국인들은 '미티'라고 지칭하는데, 이것이 "메디아"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신라의 골품제는 인도를 점령한 아리안족(샤카족)의 카스트제도와 비슷할 뿐 아니라, 근친혼을 고집했던 신라 왕실의 문화는 몽골리안과 다른 왕실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추정도 있다(당나라 사신도를 보면 신라의 사신과 백제, 고구려, 왜의 사신이 확연히 구분된다).

신라 지배층의 인골 구조나 DNA유전자는 몽골리안에 쪽에 기운 지금 한국인의 일반적 유전자와는 달리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일대에서 살고 있었던 스키타이족 DNA와 더 가깝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설화와 야사에서 전하는 신라와 페르시아의 관계는 그 팩트를 볼 때, 구체적인 교류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신라시대부터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소그드 등과 어떤 형태로든 밀접히 교류하고 관계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홍보국장, 민관협력포럼 창립 및 운영위원을 거쳐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을 지냈으며 총리실 산하 재한외국인정책위원회 실무위원, 교육과학기술부 다문화 교육정책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김&nbsp;대표는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고자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와 국내 최초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레인보우 합창단은 G20정상회담 특별만찬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 등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 중이다.&nbsp;<br>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홍보국장, 민관협력포럼 창립 및 운영위원을 거쳐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을 지냈으며 총리실 산하 재한외국인정책위원회 실무위원, 교육과학기술부 다문화 교육정책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고자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와 국내 최초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레인보우 합창단은 G20정상회담 특별만찬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 등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