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원의 정책제안] 학종 아래 교사는 '갑, 학생은 ‘볼모’라니...수능확대 논리가 무시한 교육의 진실
[전경원의 정책제안] 학종 아래 교사는 '갑, 학생은 ‘볼모’라니...수능확대 논리가 무시한 교육의 진실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10.31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최근 정부의 수능 확대 정책에 이어 수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의 논거를 살펴보면 수능에 대한 미신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수능 정시의 실상을 분석하며 이야기하려고 한다.

수능이 더 공정하다?

수능시험이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선 전제가 필요하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에게 일체의 사교육을 법으로 금지한 상황에서, 오직 EBS 인터넷 수능특강으로만 공부한 상태로 수능시험을 치르게 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공정한 평가이다.

그러나 한 과목에 월 1000만원짜리 족집게 개인 지도를 받는 학생과 지방 농어촌 소도시에서 오로지 인터넷 특강만으로 3년간 공부한 학생의 수능 점수를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똑같은 날짜에,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똑같은 난이도로,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평가했으니 공정한 시험이다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부모의 경제력이 많이 뒷받침됐으나 어차피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치른 건 부모가 아니라 학생 본인이니 공정한 결과라는 말에 동의하겠는가.

교육격차 해소에 도움이 된다?

특정 지역의 학생에겐 단 1회의 수능시험 응시기회만 준다. 그런데 다른 지역 학생에겐 재수, 삼수, 혹은 그 이상 N 수의 기회를 준다. 그렇다면 이 시험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학교알리미’라는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학교 이름만 검색하면 그 안에는 ‘상세정보’가 있다. ‘상세정보’를 검색하면 ‘졸업생의 진로 현황’이 나온다. 4년제 대학진학률이 공개되어 있다. 올해 기준 전국 고등학교의 4년제 대학진학률 평균은 77%였다.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소재 고등학교 상황은 어떤가.

올해를 기준으로 서초고(서초구/32%), 영동고(강남구/33%), 휘문고(강남구/35%), 언남고(서초구/35%), 경기고(강남구/36%), 청담고(강남구/38%), 상문고(서초구/41%), 서울고(서초구/41%), 현대고(강남구/45%), 숙명여고(강남구/46%), 세화고(서초구/48%) 등 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30% 초반에서 40% 후반까지 분포되어 있다.

무슨 말인가. 나머지 비율만큼이 재수, 삼수 등 N수를 선택한다.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의 기회가 제공된다면 모든 학생에게 기회가 공평했다고 할 수 있는가.

수능시험이야말로 교육격차를 더욱 심화하고 불평등 교육을 조장하는 대입 전형이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정부가 앞장서 수능 확대를 결정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한심할 따름이다. 차라리 학생부교과전형, 기회균형선발과 지역균형선발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수능도 공교육에 도움이 된다?

사교육 출신 인사들이 말한다. 정시를 늘린다고 왜, 어째서 학교 교육이 붕괴하겠냐고. EBS 문제집 대신에 교과서를 가지고 수능 수업하면 되지 않느냐고.

학교 현장과 현실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수능 점수를 올려주려면 수능과 유사한 실전 문제로 공부를 해야 점수가 오른다. 교과서로 공부해서 어느 세월에 수능 유형에 익숙해지겠는가. 학생도 학부모도 바라지 않는다.

현재 적용되는 2015 교육과정은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수업 방식도 교사의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주도적으로 공부하도록 유도한다. 자료를 공부하고 정리해서 발표도 하고, 자기 생각과 다른 친구들과 토론도 하고 모둠별 프로젝트 학습도 하도록 유도한다. 진로교육과 한 학기 한 권 읽기 등의 독서 활동도 해야 한다.

과연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가 이런 교육과정과 일치하는가.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학종 아래서는 교사가 갑이고 학생들은 ‘볼모’?

어떻게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이렇게 파악한단 말인가. 아무리 교육이 무너졌다 해도 이래선 안 된다.

‘볼모’라는 말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 대한 담보가 되어 상대편에게 억류된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삭막해졌다고 해도 어떻게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볼 수 없을망정 계약 관계로 봐야 한단 말인가. 참담한 심정이다.

여론 지지율이 높으니 수능이 대세?

여론 지지율은 수능이 높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질문은 학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관련이 깊다. 쉽게 말해, 우리 사회가 학교에 기대하는 점은 무엇인가.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 키우면 그것으로 학교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믿는가. 만일 그렇다면 지식만 잘 전달하면 된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공부만 잘하면 자격 조건을 갖추게 된다. ‘사람됨’이나 ‘인성’,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배려, 희생 등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 공교육과 사교육은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수능시험에 잘 대비하도록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방법만 잘 가르쳐주면 그것으로 학교의 역할에 만족하겠는가. ‘삶’을 말하지 않고 매일 기계처럼 반복해서 문제 풀이 기술만 가르치면 학교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살아가며 누군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부정한 일에 대해서는 비판할 줄 알고, 침해당한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맞서서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자존감을 길러주고, 타인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할 수 있으며, 타인과 원활한 관계 맺음에 대해 가르쳐주어야 하는 기관이 학교 아닌가.

어찌 보면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러한 역량을 길러주는 학교여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가 미래 세대 아이들을 위해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지점은 정답을 골라내는 문제 풀이 방법이 아니라 이렇듯 ‘삶’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함께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저작권자 © 에듀인뉴스(Eduin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