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건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살아서 지도자는 많다. 그러나 아직 죽어서 말하는 지도자는 드물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죽음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죽어도 차별은 심하다. 그것은 무덤이다.

국립묘지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다. 국립묘지는 국가 유공자들을 묻는 곳이다.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는 자격은 국가유공자라야 한다. 국가유공자의 1순위는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순국한 자들이다. 그러나 군인 가운데도 병사들은 장성들과 차별화된다. 이처럼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확대 해석하면 민간인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민간인들 중에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은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예컨대, 소방관들은 산불을 진화하다가 죽으면 국립묘지에 갈 수 있지만, 민간인은 산불진화를 하다가 죽어도 국립묘지에 갈 수 없다. 장기복무를 하면 하사관이라도 퇴역 후 죽어도 국립묘지에 갈 수 있다. 단기 복무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장군들은 묘역이 따로 있어 죽어도 특별대우를 받는다.

근·현대의 인물로써 국립묘지에 안장 되었어야 할 민간인으로서는 얼핏 생각나는 인물들 가운데 간송 미술관의 전형필,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을 비롯하여 정치인으로서는 김구, 신익희, 조병옥, 법조계에서는 김병로, 유진오, 예술인으로서는 안익태, 백남준, 종교인으로서는 성철, 김수환, 한경직 등이 떠오른다. 그 밖에도 학술원이나 예술원 회원이었거나, 각 분야 단체에서 사회발전에 공헌을 한 사람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된다.

< 사진제공=청와대 >

그러나 이들이 국립묘지에 가려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신청한 사람들도 없었다. 그리고 국무회의는 정치적 집단이며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조봉암 같은 인물은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신청을 했더라도 허가받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역대 대통령 중에 화장을 유언으로 남긴 자가 없다는 점이다. 이젠 그런 사람이 나올 만한 때도 되었건만. 죽어서도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알기로는 기업체의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SK그룹의 창시자 최종현 회장이 화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장성 가운데는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이 장군묘역에 묻히기를 거부하고 화장하여 병사들과 함께 묻혔다고 한다. 그런 인물이야말로 죽어서도 말하는 참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겉치레가 번지르르해도 그 무덤에 침을 뱉을 사람이 묻혀있다면 무슨 소용일까?

고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가리켜 죽어도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직언을 했다지만 글쎄올시다.

윤종건(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한국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