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대학선발·국가선발 장치로 활용되는 입시제도
불가능성의 정리(定理)와 양의성(兩意性) 가설로 정리
대입 보완하고 개선하는 차선 선택...과정은 여론 아닌 증거위주 전문 토론
제도 변경 전 정치 개입과 공정(公正) 담론 합의 먼저 이뤄야

입시제도 문제는 근시안적...학교 교육제도 틀 다시 구상해야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입시정책의 ‘복잡계’ 방정식

[에듀인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청문과 사퇴 정국에서 대통령께서는 지난 9월 1일 교육에서 공정(公正)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 해 달라”는 말씀을 주셨다. 또 현재의 대학입학전형이 공정성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아래 지난 10월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일부에서는 이를 조국 사태를 무마하려는 정치 행위라 해석하기도 했다. 여하튼 교육부로서는 공론화의 절차를 거쳐 지난해 마련했던 대입전형 방식을 변경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동아시아 문화적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에서, 사람들은 교육과 대학 입시가 지닌 국민적 신화(神話)를 바탕으로 공정한 선발을 강조(‘공정 신화’)하는 동시에 입시 성취를 위한 노력이 ‘교육 본래적 가치의 실현‘에 기여하기를 바라 왔다.

한편으로는 공정하게 치러지는 입시를 통해 ‘개천의 용’들이 많아져 사회적 계층 상승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동시에 입시는 교육의 한 과정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이성의 잠재력을 넓히면서 자아를 실현하는 시민이 길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대학입시는 경쟁적 선발(選拔)이자 교육적 가치의 실현 과정이다.

이러한 입시제도는 고등학교 졸업과 그 연장선에서 치러지는 입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단선적(單線的)인 학교제도와 국가 주도 체제 아래, 대학과 보통교육의 관계, 시험 형태로서 고교성취에 대한 객관적 국가 고사와 대학의 개별적 판단 그리고 이에 더하여 학부모의 여론이 투영되면서 여러 차례 변천을 거듭해왔다.

대학별 입시(1945)와 국가연합고사(1954)에서 예비고사(1963)와 대학별 고사의 혼합, 학력고사(1982)와 대학수학능력시험(1994), 대학의 입학사정관제와 학생부종합전형(2013)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학부모(사교육비 해소와 입시 공정), 보통교육(교육 정상화), 대학(선발 자율), 정부(인적자원 배분과 유권자)가 각기 자신의 목표를 지닌 채, 고등학교 성취의 산출 양식, 대학의 선발 방식, 국가의 선발 장치라는 3개의 정책 수단을 혼용하는 것이었다.

요약하면 우리 나라의 대학 입학전형은 <6-3-3-입시-4> 학제 아래서 말 그대로 복잡계의 양상을 띄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앞서 본 것처럼 입시를 치르는 사람이 유권자인 한 어쩔 수 없이 ‘교육의 정치화’ 과정을 수반한다. 과거에도 입시에서 본고사형 논술을 치르겠다는 서울대와 이를 3불 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정부 여당 간에 심각한 전면전 양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부 여당은 서울대에 대해 ‘초동 진압’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는 분위기를 연출하였으며 반면 서울대는 이에 반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생각들을 기반으로 대학입학제도와 관련하여 우리는 몇 가지의 가설적 주장을 펼칠 수 있다.

하나는 언급한 3유형의 정책으로는 신뢰가 없는 4주체의 목표를 결코 만족시킬 없다는 일종의 ‘불가능성의 정리(定理)’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뢰 없는 사회에서 각자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서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죄수의 딜레마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일종의 시소(Seesaw)처럼 한 주체의 요구를 충족하면 다른 주체의 바람은 불만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EBS를 통한 단순한 수능’을 강조하면 수치적 공정성은 높아지지만 ‘학교 수업의 다양성과 창의성’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입시제도가 그 운영과정에서 지닐 수밖에 없는 양의성(兩意性) 가설이다.

입시제도가 바뀌면 이에 먼저 적응하는 집단이 생기면서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 그러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며, 이들은 곧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는 비용과 어려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은 늦게 달라진 제도를 따라잡을 때 즈음에는 그 동안의 불만이 여론으로 표출되면서 정부는 또 다시 새로운 입시제도를 논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의 그 동안의 따라잡기는 허사로 되면서 이들은 또 다시 새로운 따라잡기를 시작해야 한다.

즉, 정보가 부족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은 힘들게 비용을 들이면서 성과없는 추종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는 일면 교육불평등의 가속화 과정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수능 위주의 입시제도 때문에 학교 교육의 위기 담론이 생기고 학부모의 학원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국가는 새로운 입시제도로 학생생활기록부와 입학사정관제도를 고안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입시제도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 새로운 제도를 따라잡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학종에 의한 스팩 쌓기의 공정성과 비용이 문제시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이 제도가 모두에게 익숙해질 이즈음에 우리는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기 시작하였으며, 정치인인 대통령이 먼저 이를 화두로 삼았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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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 ‘차선의 선택’

이처럼 한국 사회의 단선적 학교교육 제도와 입시의 신화 속에서 필자는 두 개의 가설을 제안하였다. 즉, 모든 주체를 만족하는 입학전형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과 새로운 입시제도의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양의성 가설은 교육 불평등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단기적으로 취할 수 있는 최상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선택은 전문적 숙의에 의한 입시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새롭게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보완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에서 증명한 대로 어떤 경우든 관련 당사들의 불만을 불러올 것이며 교육의 불평등을 더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시 제도를 숙의하여 마련하는 과정이나 점진적 개선 과정은 교육과 관련된 전문적 과정이어야 한다.

이는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곳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반인의 여론에 의해 입시제도를 결정할 수는 없다. 대학입시제도의 고안은 그 속성상 대학으로서는 신입생의 선발이지만 고등학교로서는 보통교육의 국가 교육과정 수행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대학입시제도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이수라는 전문적 과정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고교학점제라는 새로운 교육과정과 정시확대는 ‘다양성과 표준화’의 모순을 지닌다.

또 입시제도의 개선은 연구와 증거에 의한 경험자료의 뒷받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시를 10% 늘리면 대학의 신입생 구성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정시 입학자와 수시 입학자의 대학 학사과정 이수 양상과 생활은 어떠한가 ▲수능이 학종보다 중시될 경우 고등학교 수업의 양태는 지금과 달리 어떠한 변화가 있는가 ▲사교육을 포함하여 학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지원 형태에는 어떠한 변화가 예상되는가 ▲이러한 대입 전형 방식의 변화는 교육 정의와 공정 및 교육의 본래적 가치 실현과는 어떤 관계일 것인가 등에 답하지 않고는 입시제도의 구체적 변화를 말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정시확대가 일반고에 불리하다’는 서울대의 2017년 실증 시뮬레이션 자료가 다른 대학에서도 같은 경향으로 증명된다면 정시확대는 경쟁의 공정성은 높이더라도 교육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

대입제도의 변화는 증거위주의 전문 토론이 우선이지 결코 여론적 공론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역시 여론적 결정이 부적합한 중요한 이유의 하나이다.

교육의 정치 개입과 공정(公正)의 담론

이러한 단기적 입시정책 과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의 개입이다. 정치는 태생적으로 대중의 불만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정치가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에 반응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결정은 자칫 대중주의적 경향을 띄게 되어 교육의 속성과 가치가 도외시된 탈교육적 또는 대중 편의적 결정과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바로 잡기까지 오랜 시간 비용을 치르게 하며 때로는 교육계를 정치진영의 지배 경쟁이나 패배의식으로 물들이게 된다.

이에 대응하는 방법의 하나는 정치진영의 개입을 막을 수 있는 국가입시위원회와 같은 정치중립적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교육계가 정치의 개입을 거부하는 관례와 전통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정권)가 입시개혁을 주도하는 한 후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또 하나 짚어야 할 문제는 공정(公正)의 담론이다.

우리 사회의 대학입시에서 공정의 담론은 주로 선발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 흔히 사람들은 말 그대로 공평하고 정당함을 공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비교적 다원화되어 있음을 전제로 생각하면 ‘교육의 기회’라는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 기준과 배분의 정당성에 대한 공정의 기준은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사회에 가장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큰 사람에게 입학기회를 먼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많은 사람들은 엄격한 기준(예를 들어 지필고사)을 만들어 누구든지 경쟁으로 이를 통과하는 사람들을 먼저 선발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누가 어떤 수저를 갖고 태어날지 모르므로(‘무지의 베일’) 우리 사회 내에 가장 약한 사람들을 우선 고려하고 그 다음 능력을 기준으로 선발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선발의 공정성 확대를 위한 정책 전환을 논의하기 전에 우리는 공정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할지 모른다. 이 논의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곧 다른 생각으로 입시정책의 전환을 또 다시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공정한 입시’를 넘어 미래로

그런데 사실은 이제 다른 조건은 묻어둔 채 입시제도 만을 문제 삼을 수 있는 시기가 더 이상 아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인재양성의 관점으로 학교교육제도의 틀을 시급히 바꾸어야 할 때에 이르렀다. 이는 입시제도 구축의 환경이 변화함을 의미한다.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지능정보사회를 일컬어 혹자는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常數)”라 말하기도 한다. 그 만큼 낯선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학습해야 하고 늘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지금처럼 어떤 것을 배워서 시간을 두고 이를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학교제도는 이미 작동을 멈추었다. 오히려 항상 낯선 것에 접하면서 스스로 깨치고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시급하다.

이제 우리의 학교제도도 새 판을 짜야 한다. 대학입시를 보통교육과 고등교육의 핵심통로로 하는 <6-3-3-[대입]-4>의 교육체제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이 체제는 확실성의 근대적 사고를 바탕으로 1946년 교육기본법 제(개)정으로 마련되었지만 이후 70여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는 ‘지금의 학교제도’를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관계 맺음을 해야 할 때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 확실성의 근대를 시급히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차원으로 공정과 교육의 가치실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과거의 틀 속에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도 같은 것이다. 지금은 표준화와 이에서 앞서려는 경쟁이 중심인 사회가 아니다. 오늘날의 핵심 화두는 개인의 인격과 창의의 역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능정보 사회와 인구 급변의 이 시대에, 그 옛날의 체제가 맞을 리 없다. 우리는 “시대와 자신을 진실로 알아야 한다.” 사교육의 병폐나 학교의 혁신이 제자리에 머무는 이유도, 아무리 입시와 평가제도를 바꾸어도 ‘SKY 캐슬’이 만들어지는 것도 시대와 개인이 지닌 지향이 지금의 교육체제가 지닌 특성과 근본적으로 괴리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제도를 혁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쩌면 대부분의 교육주체가 한 동안 만족할 수 있는 입시제도를 고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체제를 지금의 대학 준비학교 기능에서 산업이나 사회와 직접 연계되는 개별 학생의 진로교육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형 학교에서는 대학 입학 전형을 산업이나 직업과도 깊이 연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등학교와 대학진학의 단선적 행로가 무너지면서 대학입시가 고등학교만이 아니라 산업계와도 연계되어 다양화될 것이며, 팽팽한 단선적 경쟁의 틀이 매우 유연화하게 될 것이다.

물론 대학은 이제 평생 학습사회의 모든 이를 위한 교육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대학 정원의 50%는 산업계에서 일하던 분들로 채워질지 모른다. 희망컨대 우리는 이러한 대학입시에서 일시적으로 나마 선발의 공정과 입시의 교육 본래적 가치 추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개인이 자신의 진로에서 자기 성장을 위해 대학에 진학할 것이며, SKY 캐슬은 과거의 성으로 존재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이처럼 보통교육에서 의무교육과 진로교육이 분리되고, 대학과 산업 및 미래형 고등학교가 서로 연계되는 체제를 구축할 때, 우리의 대입 전형은 단선적 경쟁과 공정의 틀을 넘어 학생들의 다양한 성장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이러한 혁신은 우리와 미래 세대 모두를 시대의 낙오에서 구할 수 있는 진실로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