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 수학 여행의 추억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 수학 여행의 추억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11.04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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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에듀인뉴스]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 사과나무를 심는 교사의 이야기.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란 언제나 설레고 즐거운 것이어서 가기 전부터 학생들의 들뜸과 설렘은 보는 이들도 충분히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교실마다 들어가면 수학여행 때 장기자랑을 무엇을 할 것인지 들뜨기도 했지만, 다녀오고 나니 남은 건 약간의 아쉬움과 한 줌의 기억뿐이다.

블랙 자켓, 클러치백과 징 박힌 스니커즈...올해의 트렌드 삼종세트

여행을 떠나기 전 징 박힌 신발을 수학여행용 신발로 장만한 학생은 쉬는 시간마다 먼지라도 묻을 새라 닦고 또 닦곤 했었다.

“좀 주고 장만한 신발이냐?”

“예, 쫌 줬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그 신발이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신발인줄은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 고가의 신발이 학교 안에서 유행이랄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런 신발을 신은 아이들이 한 반에 한두 명씩은 눈에 띄었고, ‘올해의 컨셉’이 블랙 자켓에 징 박힌 스니커즈 그리고 어른들도 잘 들지 않는 클러치 삼종 세트임을 제주도에 도착해서야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대다수 학생들은 후드 티셔츠에 청바지나 면바지 혹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배낭을 메고 왔지만, ‘오직 이날만을 위해 기다렸다!’ 부류는 여지없이 ‘삼종세트’ 패션이었다.

그런듯했다. 사실 남자 어른들 중에는 ‘맨즈 백’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아이들에게는 여행용캐리어 말고 손에 하나씩 태블릿 크기의 클러치가 들려 있었다.

대다수 아이가 그런 차림은 아니었다. 또 고가의 삼종세트를 갖지 못했다고 그걸 들고 있는 부류의 아이들을 배척하거나 질투하는 것 같아보이지도 않았다. 간혹 한두 가지 아이템을 부러워 하긴 했어도 정작 그 물건들에 들여야 하는 비용 대비 그로 인한 만족도가 그다지 높지 않으며 대다수 아이는 ‘가격 대비 부담’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트를 장착한 아이들은 결국 같은 학년 내에서도 같은 부류로 몰려다니는 아이들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티를 내며 다른 아이들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또 유행을 만들고,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며 ‘따로 또 같이’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제주의 마지막 밤, 아쉬운 알콜의 부재

수학여행 마지막 밤. 교사들끼리 점호 전 회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학급학생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고, 20여분 후 나가니 두 녀석이 찾아와 너무나 심각한 얼굴로 드릴 말씀 있다고 했다.

“쌤, 제주의 마지막 밤입니다. 쌤이 알콜을 조금 사 주시면 안 되시겠습니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조심스레 건네는 제안이었다. 리조트 매점은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지 않았고, 도착 직후 가방이 탈탈 털릴 짐 검사를 예고했기에 술을 가져올 수 없던 아이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어디서 술을 살 처지도 못 되었기 때문에 이 진솔한 친구들이 급기야는 담임에게 통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 미안하게도 들어줄 수 없었다. '궁색한' 내 변명이 시작되었다.

첫째, 내 제자들은 믿지만 술이란 놈은 믿을 수 없어서 멈추고자할 때 멈춤이 잘 안 되므로. 

둘째, 그대들이 수능도 다 끝내고 졸업여행을 와 담임 입회하에 시작과 끝을 같이 하고 마무리까지 해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내일 일정도 남아 있고 그대들이 법적 성인이 되기엔 시간이 좀 많이 남아 있으므로.

셋째, 나를 믿고 그대들을 맡기시며 보내신 부모님들의 계획엔 열여덟 살짜리 아들들에게 ‘술 한잔 따라주는 선생’은 없으므로 그대들의 안전을 위임 맡은 내 입장에선 약속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으므로.

넷째, 무엇보다 그대들이 아직 미성년자이므로 어떤 돌발 상황에 대처할 판단력이 미숙할 수 있고 자리가 파하고 난 후에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어서 그 상황까지 대비해야하는 내가 도저히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수학여행 마지막 날 너희들의 기분은 잘 알지만 사줄 수가 없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대신 졸업하고는 얼마든지 술을 받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조용조용 차분하게 설득을 이어가자 납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점호를 하러 갔을 때, 한 방에 다 모인 학급 애들에게 술 이야기를 하자 더러는 방문을 나서는 내가 무척이나 답답하다는 눈길도 있었고 서운해 하는 표정도 읽혔지만 안타깝기는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왜 모르겠나. 제주까지 와 부모님과 야자와 학원 없는 마지막 날 밤, 오롯이 청춘들끼리 허락된 마지막 외박의 밤인 것을! 하지만 마냥 철부지들 편을 들어 줄 수 없어 아이들 기분도 못 맞춰주는 고지식하게 못난 선생은 깊은 고민으로 거의 날밤을 샐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떠들고 노는 소리가 들리더니 새벽 세시가 다가오자 아이들 숙소 쪽은 조용해져 갔다.

과거 미스 금성에 출전한 여장한 아이들.(사진=조윤희 교사)
과거 미스 금성에 출전한 여장한 아이들.(사진=조윤희 교사)

사라진 장기자랑, 미스 금성

역대 미스 금성은 두고두고 회자되곤 했다. 어느 해의 미스 금성이 최고였다 느니 누가 더 나았다느니. 입담과 춤 솜씨, 분장 정도에 따라 아이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남녀공학도 아닌 남학교에 망사스타킹과 빨간색 하이힐과 오렌지색 가발 등이 학생들 소품으로 출몰하는 시기는 장기자랑 때 아니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아이들의 분장을 보며 남자아이들이 생각하는 과장된 여성성은 저런 것이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야동에서 보고 알았는지, 야한 잡지를 보고 배웠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간혹은 아이들의 손에 채찍(?)이 들려 있기도 했다. 여자 분장을 한 아이의 손에.

사춘기 남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눈에 비친 희화화된 여성성을 수학여행이란 울타리 안에서 웃고 즐겼고, 어른들이 보기에 잘못된 여성관이다 싶은 것은 나중에 조곤조곤 타이르고 가르쳤다.

그러나 ‘미스 금성’이 언제부턴가 여성을 상품화 하는 것이고,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왁자하게 웃고 떠들썩한 코스프레가 하나 사라진 것 말고도 한 시대의 성의식이 마감되고 또 새로운 성의식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렇게 수학여행의 유쾌한 코미디는 한 시대를 마감 당했다.

사실 성의 ‘풍자 내지 희화화’와 ‘비하 내지 상품화’와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다. 그러나 무턱대고 대립과 대결, 억압과 분노의 코드로만 이해하는 것은 또 옳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은 삶을 얼마나 팍팍하게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한 해의 수학여행이 막을 내렸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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