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길을 잃은 교육정책
[칼럼]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길을 잃은 교육정책
  • 한치원 기자
  • 승인 2019.11.0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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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범 서울대학교 교수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에듀인뉴스] 9월 초 대통령이 외국으로 가면서 떨어뜨린 ‘대입체제 전면 재검토’라는 숙제는 결국 10월 22일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대통령 스스로 정시확대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끝났다.

대입 이슈는 일단 11월 중으로 한 차례 정리되겠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다. 과거 입학사정관제의 문제는 현재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진화하면서 제도적으로 이미 상당 부분 보완되었다.

제도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재 대부분의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이를 악용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 장관 사태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여 성급하게 정시확대라는 폭탄을 꺼내 든 이번 정무적 판단은 앞으로 2028학년도 이후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질 국민적 갈등과 혼란의 뿌리가 될 것이다.

정부가 추진한다는 새로운 2028학년도 대입 개선안이 거의 모든 초중고 학생과 학부모를 대학입시라는 복마전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2028학년도가 현 초등학교 4학년이 대학입시를 치르는 해이다. 앞으로 학생, 학부모, 학교의 혼란은 고스란히 사교육을 키우는 밑거름으로 변하게 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는 학종이 공정한지 수능이 공정한지를 두고 편을 갈라 투쟁하고 있다. 각각의 입장은 신앙처럼 너무나 확고하여 제 3의 길을 모색할 여유가 없다. 작년 공론화 과정처럼, 이번의 정시확대 결정은 또다시 국민을 소모적인 분열과 투쟁으로 몰아갔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법제화한 대입 4년 예고제는 도입 후 첫 사례부터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그 결과 대학의 자율권은 허공에 흩어졌고, 교육 개혁을 위한 담론도 먼 미래의 공허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에게 뭔가 계획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대입제도의 변화는 미래사회를 위한 교육 개혁이라는 큰 그림의 한 조각으로 작동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실효성과 지속 가능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정시확대 결정에서는 지금의 교육 현실에 대한 고민도, 미래를 위한 철학도 찾을 수 없다.

정시확대가 누구에게 더 유리한지 굳이 입증할 수치가 필요하지도 않을 만큼 국민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정시를 늘리면 일반고보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유리하고, 지방(대구 수성구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보다 서울이 유리하며, 서울 강북지역보다 강남을 비롯한 사교육 특화 지역이 더 유리하며, 고3보다 재수생이 유리하고, 중산층 이하보다 부자에게 유리하다.

재수시킬 경제적 여력이 없는 부모를 둔 아이는 재수를 통해 수능 점수를 올릴 기회가 제약당하기 때문에, 이번 결정이 기회가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에게 미안해서 체념하고 포기할 뿐이고, 부모는 애써 모른 척한다. 과연 사람은 불공정하고 숫자는 공정한가. 선발 과정에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능이 공정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제도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이다. 수치로만 선발해도 얼마든지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정시확대 여론이 높은 현 상황의 원인은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에 있다. 그렇다면 신뢰를 높일 방법을 찾는 게 해법이다. 여론의 요구대로 학교 교육이 망가졌으니, 이제 학교 교육을 포기하고 각자도생하도록 놔두자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책임 방기에 가깝다.

정부의 책무는 학교에 대한 투자를 통해 개인의 환경 차이를 최소화하여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 공정이란 이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하지 않고 개인에게 방기하는 것은 불공정을 용인하고 확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학 자율권은 누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대학 스스로 지켜야 할 권리다.

대통령의 대입 전면 재검토 지시 이후, 9월 26일 교육부는 13개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1월 5일 교육부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 발표 이전에는 이렇게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교육부는 대학들이 학종을 활용해 고교등급제를 편법적으로 적용했고, 회피·제척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학종이 교직원 자녀에게 특혜를 주는 경로로 활용되었다는 결론을 내놓을 것이다.

합격자의 고교 유형에 따른 내신 성적 분포와 교육과정, 특히 일부 자사고와 특목고의 내신 성적 분포가 고교등급제의 증거로 제시되고, 학종을 통한 교직원 자녀의 입학 건수가 다른 전형보다 더 높다는 정황을 보여줄 수도 있다.

가뜩이나 학종에 부정적인 여론은 불공정한 입학전형을 운영했다고 13개 대학을 몰아세울 터이고, 이때를 이용해 정부는 학종 개선안과 정시확대 비율을 “권고”하며 15개 대학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한 손으로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 BK21사업 등 각종 재정지원 사업을 당근으로 흔들고, 다른 손으로 대학종합감사(監査)와 징계라는 채찍을 들고서. 늘 보았던 방식이므로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11월 5일 발표는 곳곳에서 교육부가 고심한 흔적이 묻어난다. 그래서 모호해졌다. 그렇지만 교육부가 정시확대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거스를 수는 없으니, 교육부의 “권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공은 대학에게 넘어 올 것이다. 정부의 당근을 무시하고 채찍을 선택한 대학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대학은 울며 겨자 먹듯이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던 전례에 비춰보았을 때 이번에도 대학들은 교육부의 “권고”를 수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을 교육부의 다른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한다면, 대학의 입장에서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등록금 동결 이후 대학의 재정난은 심각해졌고, 학령인구마저 급격하게 줄기 시작해서 대학의 파산은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자율권을 잃어버리고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대학이 미래사회를 선도할 창의적 지식을 생산하고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대학이 될 수 있겠는가.

돈이 필요하지만, 대학이 정부 보조금에 계속 의존한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그래서 비록 “순진한” 기대겠지만, 얼마 전 포스텍이 그랬듯이,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을 포기하는 대학이 나와야 역설적으로 대학은 존중받게 될 것이다. 대학은 정시확대가 더 나은 고교교육을 만드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시를 늘려서 고교교육을 위해 기여했으니 보조금을 달라고 신청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그래도 돈이 필요해서 신청한다면, 적어도 사업 이름이라도 바꿔달라고 읍소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권은 대학의 자율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대학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대학의 자율권이 정말로 소중하다면, 대학은 자율권을 팔아버리지 않아야 한다. 지금이 정부의 과거 적폐를 끊어야 할 때이다.

앞으로 고교학점제는......

정시확대가 고교학점제와 충돌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면 고교학점제 시범학교와 연구학교는 당장 1학년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가기도 어렵고 여기서 멈추기도 어려우니 그저 곤혹스러울 뿐이다. 정시확대 시정 연설 이후 학교 현장에서는 수능 과목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시확대라는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라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주문형 강좌, 온라인교육과정, 고교대학 연계 교육 등 고교학점제를 위한 정책은 설 자리를 잃었다.

교육부는, 교육청은, 학교는, 앞으로 어떤 논리로 학생들에게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라고 설득할지 궁금하다. 정시확대가 잠깐 지나가는 정책이라고 강변해도, 학교 현장은 정책 입안자들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학교 현장이 고교학점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쩌면 2028학년도 대입개혁을 시도할 동력이 사라져서 2025학년도부터 시행한다고 예고된 고교학점제도 더 미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만큼 정시확대는 심각한 문제다. 앞으로 정부는 어떻게 학교의 신뢰를 얻으려는가. 학교는 정부를 믿지 않고, 학부모는 학교를 믿지 않는다면,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공정성 문제는 대학입시와 학교 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서 생겨났다.

그렇다면 정시확대는 국민이 대학입시와 학교 교육을 신뢰하게 만들 수 있는 대책이 될 수 있는가. 아니다. 정부는 신뢰를 회복할 복안을 갖고 있는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학교의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새로운 논의를 위해

부질없는 줄 알지만, 그나마 지금의 수시-정시 논쟁을 생산적으로 만들려면 이른바 “학종파”는 학종을 비판하는 논거를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전형방안을 찾아야 하고, “수능파”는 수능을 비판하는 논거를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수능을 스스로 고안해야 한다.

학종은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고 비난받는다. 수능은 학교 교육을 해치고 학생의 역량을 키워주지 못한다고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전에 믿음이 너무 강하니 진실이 드러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각 진영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수용하여 기존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서 제시해야 한다.

상대방의 비판을 수용한 새로운 수정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토론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싸움만 이어진다. 그러므로 새로운 논의는 각자 기존의 학종과 수능을 모두 생산적으로 해체하려고 할 때 시작된다. 교육감협의회가 할지, 아니면 교육부가 할지, 아니면 대학 스스로 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야 고교학점제도 살 수 있고 학교도 산다. 그리고 학생 한 명 한 명을 위한 맞춤형 교육으로 학교 현장이 살아야 다시 학부모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의 약속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수능 절대평가, 성취평가제, 고교체제 개편, 고교학점제 등 기대를 모았던 대통령의 공약은 하나씩 사라지고, 오히려 집권 후 교육정책은 공약과 반대 방향으로 갔다. 우리는 길을 잃었다.

현재는 혼란스럽고, 미래는 더욱 아득하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기다리는 초인(超人)은 보이지 않고, 청아한 가을 시름만 하염없이 깊어 간다.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교바사)와 함께 합니다.

김경범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서울대학교 교수

한치원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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